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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사상륙작전참전용사 합동 위령제 ⓒ 이화자^^^ | ||
제24회 장사상륙작전 참전용사 합동 위령제가 장사해수욕장내 장사대대에서 19일 오전 11시에 거행됐다. 생존 참전용사 50여명과 지역주민, 남정초,중등학교 학생들과 장사대대 재향군인회 인사들, 김우연 영덕군수, 백창기 경주보훈지청장, 이상열 군의장 등 300여명이 모인 가운데 거행됐다.
약간 흐린 날이었지만 매년 빠지지 않고 참전 생존용사들은 관광버스 1대에 탑승, 오전 10시 경 도착했다. 손수 가지고 온 유격대대 깃발과 태극기를 게양하는 모습에는 국가를 위해 희생된 참전 용사에 대한 애틋함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듯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고개가 숙여지며 마음이 숙연해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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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전용사에 대한 분향 ⓒ 이화자^^^ | ||
강성관 유격동지회 회장과 백창기 경주보훈지청이 먼저 분향하면서 영덕군수와 그 뒤를 이어역전의 용사와 그 부인들 일렬로 도열한 모습에는 그옛날 씩씩한 기상을 엿볼 수 있었다.
한 분 한 분 분향할 때마다 도열해 있는 역전의 용사들은 국화꽃 한송이씩을 들려주며 질서 정연하게 애도의 뜻을 표했다.그 못 다한 인생에 대한 회한으로 너무나도 정성들이는 모습에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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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병들의 애국가 제창 모습 ⓒ 이화자^^^ | ||
6.26 당시 9.15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맥아더 장군은 9.14 장사상륙작전을 하루 일찍 감행했다. 그 당시 인민군 2군단이 포항에 주둔해 있었으므로 인민군을 속이는 작전이었고, 이승만 대통령이 대구까지 피난해 오면서 낙동강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짐으로써 소개령(대구를 비우라는 명령)이 떨어지면서 학생들도 긴급 조직된 육본 직할 유격대대를 만들었다.
영국군의 함대 LST를 타고 장사 앞바다에 상륙을 시도하던 중 장사 앞산에 매복해 있던 인민군의 집중 포격을 받아서 배가 좌초되면서 수많은 학도병들이 희생되었다. LST로 무사히 귀환한 사람들은 살 수 있었지만 배문이 닫히는 바람에 총탄세례에 죽고 인민군 포로로 끌려가다가 무사히 탈출한 사람도 있었다.
포로로 끌려가다 탈출에 성공한 이재근 씨(당시 대구능인고등학교 학생)는 "육본 직할유격대대장(당시 대대장 이명흠)은 40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으나 희생자가 많으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전사자를 줄여 보고했다.그 당시 학도병들은 식량 3일분과 실탄 3일분만 지급받아 총도 쏠 줄 모르는 상태에서 전쟁터에 자원해 나왔다"고 전했다.
이들은 그 당시 17.8세밖에 안 되는 소년병으로서 장사 앞바다에서 희생된 전사자들에게 애틋한 감정을 품고 여생을 산다고 했다. 생존자 50여명은 부부동반 할 수 있는 분들은 꼭 동반해서 온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희생된 분들은 이미 부모님들이 작고해 넋이라도 위로해줄 수 있는 후손이 없다는 것이다.
국가를 위해서 원혼으로 떠도는 전사자들을 위해 매년 참석한다는 부산에 살고 있는 최공윤 씨는 "원혼이라도 달래주기 위해 해마다 부부가 같이 와서 이 행사에 참석한다"고 말했다. 부인되는 이용선 씨는 "너무도 불쌍한 영혼들, 우리라도 넋을 달래 주어야 되지 않느냐"면서 꽃다운 청춘의 희생을 안타까이 생각했다.
휴전 후 맥아더 장군은 학도병의 희생에 대한 감사 비석을 장사군부대 안에 세워주었다. 이분들은 이렇게 억울하게 죽은 사람도 있지만 국가에서는 생존자에게도 어떤 보상이 없는 데 대해 매우 억울하다고 토로했으며 그래도 죽은 사람보다는 산 사람이 낫지 않느냐며 손수 가져온 유격대대 깃발을 달고 태국기도 직접 다는 정성을 보여 마음이 숙연해졌다.
지역 주민들의 말에 빌리면 그 당시 얼마나 전투가 치열했으면 경북고 뱃지 바클 등이 즐비했으며 장사 앞바다가 시뻘겋게 피로 물들었다는 증언을 할 정도였다. 고인들이여, 편히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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