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유감(同居遺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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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유감(同居遺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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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후 두 달만에 호주를 다녀왔다. 외국에 나가면 시골 주유소에서도 한국인을 만날 수 있다고 했던가. 그 곳에서 꽤나 많은 한국인들과 안면을 트고 지냈다. 그 중에 태규(가명)랑 민정(가명)이도 있었다.

근처에 살던 우리는 자연스레 자주 어울렸다. 얼마후 태규랑 민정이가 사귄다는 소문을 들었다. 또 얼마 후에는 그네 둘이 같이 산다는 소문도 들었다. 그 사실을 전해준 누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이었다. 보수적이라고 생각했던 민정이를 떠올리며 한참동안 얼떨떨했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동거가 하나의 하위문화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아니, 자리를 잡는 정도가 아니라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다닌다. 인기의 가장 큰 이유는 '상대를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 이란다.

그것도 그냥 아는 게 아니라 '살아봐야 더 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넓고 이성은 많다는데 내 님이 누군지 꼼꼼히 따져봐야하지 않겠냐는 말씀이다.

그런데 같이 살면 서로를 정말 잘 알 수 있을까. 아니, 그런 불확실한 의문일랑 일단 접어두고 애매한 점 몇 가지부터 짚어보자. 그러니까, 서로를 잘 알면 그때 결혼을 하는 건가. 알고 봤더니 둘이 잘 안 맞으면 그냥 헤어지면 되는 건가.

결혼을 전제로 동거를 한다는데 둘이 잘 맞으면 전제였던 결혼에 골인하는 거고, 안 맞으면 그 전제는 '없던 일로 합시다'로 되는 건가. 여기서 전제는 약속과 어감이 비슷한 것도 같은데, 지켜지지 않을 확률이 절반인 전제를 약속으로 했었다니 이게 약속인지 조건인지 뭐가 뭔지 헛갈린다.

인생이 저녁 노을에 걸린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황혼이혼이 급증하는 것을 보면 같이 산다고 해서 서로를 속속들이 알 수 있는 것만도 아닌 것 같다. 머리 속은 점점 더 혼란에 혼돈을 거듭한다.

황혼이혼의 증가는 동거 반대론자 뿐만 아니라 동거를 찬성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말밥이 된다. '그렇게 오래 살고도 어느 순간 헤어지게 되는데 그냥 덜컥 결혼만 하면 어떻게 되겠냐'는 것이다. 다음 레퍼토리는 자연스럽게 '그러니 살아보고 결혼해야 한다'로 이어진다.

불확실한 미래에 모험을 걸게 아니라 예행연습을 갖자는 마음가짐은 미덕이라 할 만하다. 신중함이라고 바꿔 말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동거론자들의 신중함은 많이 배타적이다. 동거를 찬성하는 대다수의 젊은 남녀들은 '결혼 상대의 동거 경력도 수용할 수 있냐'는 질문에 80%이상이 고개를 젖는다. 그러니까, 난 바담풍해도 넌 바람풍하라는 말인가?

오판(誤判)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구나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콩깍지가 씌면 상대가 뭘해도 이뻐보인다지 않는가. 하지만 콩깍지는 그닥 단단하지 않다. 결혼생활이 현실이 되었을 때 스스로의 선택에 후회하고 땅을 치며 통곡할 일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차마 헤어지지 못해 억지로 산다'는 어른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그래서 이혼이란 제도가 있다. 물론 이혼이 전가의 보도는 아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이혼은 은장도라 하겠다. 진정 최선을 다하고도 함께 할 수 없다면 은장도를 꺼내드는 게 현명하다. 이혼이 흠이 되던 시절도 다 지나간다.

귀국후 태규는 서울에서 취업을 했고 나이가 좀 더 어린 민정이는 부산에서 계속 대학을 다녀야했다. 우리는 종종 같이 만났다. 반년 후 태규랑 민정이가 헤어졌다는 소문을 들었다. 나중에 태규는 '거리가 멀어 만날 기회가 적어졌고 그러다 갈등이 생겼고 결국에는 헤어지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아웃 오브 사이트, 아웃 오브 마인드(Out of sight, out of mind). '차라리 거기서 사귀다가 한국 들어와서 결혼하는게 어떨까' 나는 그 말을 예전부터 하고 싶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결혼을 할 수 있었더라면 적어도 물리적인 거리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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