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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문사 도량 전경 ⓒ 운문사제공^^^ | ||
운문사는 일주문이 따로 없다. 그래서 늘어선 솔숲이 일주문을 대신하고 있으며 그 솔숲 길을 지나면 바로 절집이다. 가파르고 높은 산 속에 위치한 다른 어떤 사찰에 비해 운문사는 1500년 역사를 가진 대가람, 지리산 실상사와 마찬가지로 낮은 평지에 터를 잡고 있다. 찾는 이의 발걸음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도 그야말로 편안함과 아늑함에서 마음을 빼앗긴다. 그것이 운문사를 찾는 이유다. 가을 속 운문사는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어느 사찰 어디든 그 수려함과 운치가 남지 않는 곳이 없겠지만 운문사에서 느끼는 그 정취만 따라올 수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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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걸리 공양 받는 500년 된 처진 소나무 ⓒ 오병석^^^ | ||
운문사 여기저기를 마음 놓고 다니다 보면 가끔 스님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너무 소박해 아름답고 너무 단호해 감탄을 한다. 곳곳에 흐트러짐 하나 없는 단아함이 배어 있다. 낭랑한 비구니들의 예불소리가 마음속까지 경건함을 만들고, 운문사 옆 흐르는 계곡물 소리와 산새소리가 더해져 이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듯하다. 그리고 절 내 한 곳에서는 비구니들의 울력이 한창이다. 계절마다 울력의 차이는 있지만 무엇이든 혼자 하는 법 없이 함께 힘을 합쳐 행한다. 힘든 밭일에서부터 어쨌든 흐트러짐 없이 조용하면서도 분주하게 울력을 하고 있다. 그 모습이 아름답다. 불교에서의 울력은 수행의 한 방편으로 중요한 일과(日課)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그런지 스님들의 몸가짐도 평소 예불할 때와 다름없이 아주 단아하다. 그래서 더 아름다운 것 같다.
절 내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 그 모습 하나하나에 담긴 얼굴의 표정에서 말로도 형언할 수 없는 무언의 감동을 엿볼 수 있어서 좋다. 아무런 말도 필요 없이 사람들은 그 순간만큼은 속세의 번민을 잊어버린다. 그래서 운문사를 찾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운문사에서 마음을 놓는다. 어쩜 자연이 전해주는 최고의 선물이라면 그런 순간마다 마음을 가다듬으며 살아있음에 고마움을 안고 가는 것은 아닐까.
운문사는 조화된 절집들의 배치와 이를 배경으로 흐르는 계곡의 수려함에 찾는 이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곳이지만 진흥왕 18년 한 신승이 북대암 옆 금수동에 작은 암자를 짓고, 3년 동안 수도하여 도를 깨닫고 도인 10여명의 도움을 받아 7년 동안 동쪽에 가슬갑사, 서쪽에 대비갑사(현 대비사), 천문갑사(현 운문사), 북쪽에 소보갑사를 짓고 중앙에 대작갑사를 창건하였으나 현재 남아 있는 곳은 운문사와 대비사 뿐이라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후, 원광국사가 중창하여 대작갑사와 가슬갑사에 머물면서 점찰법회를 열고, 화랑도인 추항과 귀산에서 세속오계를 내려줌으로써 화랑정신의 발원지가 된 곳이 바로 운문사인데 이런 전해오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 시대 화랑정신이 마치 우리의 몸속에 살아나는 듯한 착각에 더욱 마음가짐이 정갈해짐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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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문사스님들의 울력 ⓒ 오병석^^^ | ||
운문사하면 딸린 암자로도 유명하다. 암자로 가는 숲길은 깊고 그윽하다. 걸어서 30분 거리의 이 길에는 수백 년의 고목들이 우거져 있고 전나무와 소나무, 참나무가 어우러진 자연림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 사이로 오솔길이 놓여 있고, 기둥부터 가지까지 휘어짐 없이 직선으로 뻗은 전나무와 구불구불한 소나무가 대조를 이룬다. 문수선원, 내원암, 청신암, 북대암, 사리암은 운문사가 자랑하는 암자 중에 암자다. 그 중에서도 사리암은 너무나 유명해진 암자인데 북대암과 함께 운문사에서 가장 효험 있는 기도 도량으로 알려져 있으며, 석가 열반 후 미륵불이 출현하기 전까지 중생을 구제한다는 나반존자상을 모신 암자다. 사리암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은 기도를 하기 위해 찾는 신도들의 발길로 항상 끓이지 않는다. 어른과 아이 할 것 없 계절마다 찾는 이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 사이엔 사리암을 세 번 오르면 원하는 대로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래서 일까? 유독 힘들고 험난한 사리암을 말없이 사람들은 오른다.
돌계단의 중간 중간에서 느껴보는 자연의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기암절벽 같은 가파른 능선을 거의 올라 사리암 입구에 다다르면 제일 눈에 띄는 것이 있는데 일렬로 나란히 줄을 지어 정리해 놓은 장독대가 유난히 반짝인다. 그리고 사리굴(邪離窟)은 운문산에 있는 네 곳의 굴 중 하나이다. 즉 동쪽은 사리굴(邪離窟), 남쪽은 호암굴(虎巖窟), 서쪽은 화방굴(火防窟), 북쪽은 묵방굴(墨房窟)로서 옛날에는 이 굴에서 쌀이 나왔는데 한 사람이 살면 한 사람 먹을 만틈의 쌀이, 두 사람이 살면 두 사람 몫의 쌀이 나왔다고 한다. 하루는 공양주 스님이 더 많은 쌀을 얻으려고 욕심을 내어 구멍을 넓히고 부터 쌀이 나오지 아니하고 물이 나오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그 장소는 나반존자(那般尊者)상이 모셔진 바로 아래다.
아래에서 보면 왼쪽굴이 그곳이고 지나쳐보면 어딘지 분간이 가지 않을 곳으로 특별히 굴 같지는 않다. 또한 사리암은 고려초 보양국사(寶壤國師)가 930년에 초창하였고, 조선 헌종 11년(1845)에 정암당(靜庵堂) 효원대사가 중창하였으며 1924년 증축, 1935년에 중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리암의 천태각 왼쪽에 굴이 하나 있는데, 굴의 모양을 하고 있으나 사람이 그 굴에서 기도를 하게끔 돌로 바닥을 깔았다. 그 안쪽에 샘이 있어 물이 나오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그 옛날 쌀이 나오던 곳이라 한다. 그 한 계단 아래 관음전이 있고 관은전 좌측으로 한 계단 아래 자인실이 있으며, 자인실 앞으로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왼편에 3층의 요사가 있다. 특히 이 요사의 지붕이 관음전 앞마당이다. 그래서 사리암은 입구 삭도가 있는 곳의 다리에서부터 약 1천보(계단포함) 정도 올라와서 층암절벽 위에 세워진 암자로 이름 있는 나반존자의 기도처로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신도이건 등산객이건 식사 때가 아니라도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간다. 배고픈 사람은 요기를 해야 한다며 그 누구도 그것을 탓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무상보시며 중생을 사랑하는 마음인가 보다. 산사에서 먹는 절밥, 그 맛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감흥을 느끼게 한다.
운문사, 분명 그곳은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이 계절, 이 가을에 운문사엔 뭔가 특별한 것이 분명 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은 없다. 누구나 들러 마음 놓고 쉴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래서 운문사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 어떤 충만함이 남아 있다. 천년의 숨결이라고 할 만큼 아주 넉넉한 그리고 아주 편안함을 안고 사람들은 운문사로 향한다. 오늘 오는 사람이 다르고 내일 찾는 이가 달라도 공유하는 건 언제나 한 길임을 우린 너무나도 잘 안다.
운문사를 내려오면서 마음은 어느새 가을하늘만큼이나 맑다. 많은 생각과 일상에서의 소중한 앎을 통해 넉넉함을 담아본다. 그리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가벼운 발걸음을 재촉한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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