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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몇몇 기자들로부터 콜푸 해협 사건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콜푸 해협 사건을 인용한 중앙일보 칼럼이 사실에서는 잘못되었더라도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의해 희생되었다면 그것이 선례가 될 수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만일에 북한이 천안함을 격침시켰다면, 그것은 콜푸 해협 사건에 비할 바가 아니다. 다만 북한의 소행으로 확인된다고 해도 북한에게 국제법적 책임을 지울 마땅한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만일에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하면 그것은 콜푸 해협 사건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대단히 심각한 사안이라는 사실이다. 그 점에서 볼 때, 콜푸 해협 사건은 당초부터 적절한 비교대상이 아닌 것이다.
콜푸 해협 사건은 영국 군함이 콜푸 해협은 국제해협(‘international strait’)이라면서 무해통항권(‘innocent passage’)이 있다면서 항해를 감행했고, 이에 대해 알바니아는 콜푸 해협을 자국의 허가가 없이 항해할 수 없다고 해서 발생했다. 알바니아는 자신의 영해에 기뢰를 부설했고, 이를 무시하고 통행한 영국 함정이 기뢰를 접촉해서 손상을 입은 것이다.
1988년 4월 페르시아만(灣)에서 일어난 미 해군함정 새무엘 로버츠(號) 사건도 비슷한 경우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폐쇄하려고 하자 미 해군은 쿠웨이트 등 페르시아 연안국의 원유를 수송하는 유조선을 호위하는 작전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프리게이트함(艦) 로버츠호가 이란이 부설한 기뢰를 접촉해서 선저가 심하게 파손되었다. 미국은 소해함을 보내 기뢰를 제거하고, 사건 발생 4일이 되는 날에 부근의 이란 해군기지를 공격해서 이란 해군 함정과 기지 시설을 폭파했다. 단 하루 동안에 미 해군과 이란 해군은 함대함 미사일과 전폭기를 동원해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 이란은 미군을 상대할 수 없었다. 레이건 대통령이 군 총사령관의 권한에 입각해서 지시한 이 작전은 의회의 사전동의를 얻거나 유엔안보이사회의 동의를 얻지는 않았다.
따라서, 만일에 북한이 천암함을 어뢰로 공격해서 침몰시켰다면, 그것은 1946년의 콜푸 해협 사건이나 1988년의 호르무즈 해협 사건 보다 훨씬 더 심각한 사안이다. 1967년에 동해에서 북한의 해안포에 의해 격침된 당포함(56함) 사건보다 더 큰 사건이다. 당포함은 북방어로한계선을 넘어드는 우리 어선단을 저지하려다가 북한의 해안포에 희생됐는데, 북한은 당포함이 자신들의 영해를 침범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천안함의 경우는 북한 잠수함/잠수정이 우리 영해에 은밀하게 침투해서 공격한 것이기에, 그 공격성은 당포함 사건의 경우보다 훨씬 크다.
북한이 천안함을 침몰시킨 것으로 판명되면,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공식적으로 개입하는 계기를 조성한 통킨 만(灣) 사건보다도 더 큰 사건이다. 1964년 8월 2일, 베트남 북부 통킨 만 공해(公海)상에서 정보수집활동을 하던 미 구축함 매독스호(號)(2000톤급)가 북베트남 어뢰정 3척으로부터 어뢰공격을 받고 반격에 나섰으며, 인근에 있던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미 해군기 4대가 이에 가담했다. 매독스호와 함재기의 반격으로 북베트남 어뢰정은 격침되거나 대파됐다. 존슨 대통령은 공해상에서 미국 함정이 공격을 당했다는 담화를 발표했고, 의회는 대통령이 베트남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결의를 통과시켰다. 이렇게 해서 미국은 베트남에 대규모로 군사개입을 하게 됐다.
그러나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매독스호가 야간에 공해상에서 공연히 포격을 시작했고, 그러자 북베트남의 어뢰정이 나타나서 전투가 벌어졌음이 밝혀졌다. 실제로 매독스호에 대한 어뢰 공격이 있었는지도 불분명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런 사정은 1971년에 뉴욕타임스가 폭로해서 처음 알려졌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만일에 북한이 천안함을 어뢰로 격침시켰다면 그것은 콜푸 해협 사건처럼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갈 문제도 아니고, 호르무즈 해협 사건처럼 국지적 보복공격으로 끝날 문제도 아니다. 우리 영해에 잠수정/잠수함을 보내서 어뢰 한방으로 함정을 침몰시켜 장병 수십 명을 사망하게 했다면 그것은 해상에서 조우(遭遇)해서 전투를 벌인 두 차례 연평해전이나 작년 말 대청도 근해 교전과도 차원이 다르고, 선박이 다니는 수역에 기뢰를 부설해서 사고가 난 콜푸 해협이나 호르무즈 해협 사건의 경우와도 엄연히 다르다. 말하자면, 전쟁을 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어뢰로 인한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는 국방부와 ‘보수신문’들은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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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어두운 바닷속에서 북한 소행의 물증이 떠오르면, 국가와 국민은 깊은 고뇌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유엔헌장 51조는 명백히 자위(自衛)권을 인정하고 있다. 무장단체 하마스가 로켓공격을 계속하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으로 쳐들어가 하마스 근거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미국은 테러로 무너진 건물마다 정확히 한 개씩 정권을 무너뜨렸다. 과다(過多)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도발에 응징하지 않고 선진국이 된 나라는 없다. 한국이 제대로 된 나라라면 원칙적으로는 북한의 잠수함 기지를 부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이 미국이나 이스라엘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미국은 일방적으로 강하고 이스라엘은 전면전에 익숙하다. 반면 압도적으로 강하지 못한 한국은 고민거리가 많다. 제한적 보복이 국지전이나 전면전으로 커지지는 않을지, 전면전은 감당할 수 있을지, 한국이 각오한다고 미국이 동의할지, 북한 핵무기에 대한 국민의 각오는 어떤지, 60년 전처럼 중국이 참전할지, 통일은 어떻게 될지… 한국은 숙고(熟考)해야 할 게 많다. 참으로 어렵고 실존적이며 두려운 문제다. 두렵다고 피할 수 없어 더 고민스럽다.
많은 역사가 보여주듯 인간이나 국가는 미래를 도면(圖面)처럼 그려놓고 현재에 대처할 수는 없다. 원칙과 정도(正道)로 현재를 대처하면 대개 그리 나쁘지 않은 방향으로 미래가 만들어지곤 한다. 적의 공격으로 군함이 침몰하고 장병 40여 명이 죽거나 실종됐다. 그런데 이런 도발이 한두 번이 아니며 또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의식이 있는 국가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군은 정치적인 고려에 끌려다녀선 안 된다. 그들의 임무는 잠수함 기지를 어떻게 폭격하며 북한이 확전(擴戰)으로 도발하면 한·미 연합군이 어떻게 제압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선택은 대통령의 몫이다. 한·미 간 작전권 합의에 따라 한국군의 대북 무력사용은 미군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대통령은 군의 건의를 수용해 미국을 설득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선에서 무력응징 대신 유엔안보리 회부를 택할 것인지, 고뇌해야 한다. 어떤 선택이든 대통령은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최종 선택이 무엇이든 대통령과 국민에게는 ‘한국은 전쟁을 결심할 수 있는 나라’라는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무력도발이나 테러에 대해 국가가 전쟁을 결심한 후 행동에 옮긴 적은 딱 한 번 있었다. 1976년 8월 18일 판문점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유엔군을 북한군이 공격했다. 북한군은 미군 장교 2명을 도끼로 찍어 죽였다. 다음날 새벽 김일성은 북한군에 전투태세 돌입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물러서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다시 도발하면 개성을 탈환하고 연백평야까지 진군하자고 미군과 합의했다. 그러고는 21일 미루나무 완전 절단 작전을 감행했다. 북한은 도발하지 못했다. 김일성은 휴전 이후 처음으로 사태에 유감을 표명하는 굴욕적인 메시지를 유엔군사령관에게 보내왔다.
혹자는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어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핵 사용은 북한정권의 자멸(自滅)을 뜻하므로 북한이 쉽게 핵을 쓰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남한이 언제까지나 ‘핵 인질’로 살아갈 수는 없다. 눈알 찌르기가 특기인 깡패가 있다고 치자. 그가 아름다운 애인을 빼앗으려는데 눈알 잃을 게 두려워 한강백사장 결투를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피해를 각오하고라도 결심해야 할 전쟁이 있다. 전쟁을 결심해야 전쟁이 없다. 34년 전 판문점에서 벌어진 일이 웅변하고 있질 않는가. 설사 응징을 포기해도 대통령은 국민적 고뇌와 합의를 이끌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전쟁을 결심하지 못하는 나라여서가 아니라 더 나은 선택을 위해서라는 고통스러운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영혼이 있는 국가다.
김진 기자 /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