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으로 기억하는데, 오층 석탑을 찾으려다 못 찾고 그냥 간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시간도 없었고, 또 구석 구석 들어가는 길목마다 아무런 표식이 없어서 그냥 돌아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갈림길마다 간판이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습니다.
먼저 '오층석탑'을 만나러 갔습니다. '오층석탑'은 강화도에 있는 유일한 고려시대의 탑인데, 원래는 이 곳에 '봉은사'라고 하는 절이 세워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겨울에 내린 눈을 찾아볼 수 없는 것처럼, 지금은 사라진지 오래된 역사입니다. 대신 근방에 축대를 쌓은 흔적과 계단들이 좀 남아 있기는 합니다. 워낙 오래된 탑이라 그런지 여기 저기 떨어져 나간 부분도 있었고 많이도 닳아 있었습니다.
탑의 원래 크기는 5-6미터 되었다고 하는데, 나이든 노인네들처럼 작게 오그라든 모양이었습니다. 탑에 대한 설명을 안내판에서 읽었지만 도대채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기단, 탑신, 상륜, 옥개석, 갑석, 도괴 등이 있었는데 너무나 낯설었습니다. 차라리 옆에 있는 영어 설명을 읽는게 훨씬 쉬웠습니다. '원래 도괴 되었던 것을' 이라는 귀절이 있었는데 '도괴'란 말이 생소했습니다.
처음엔 '누가 도둑질해갔다'는 뜻인가 했습니다. 문화재를 잘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초등학생들이 와서 읽어도 알 수 있는 쉬운 말로 풀어 써 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한 번 와서 사진이나 찍고 갈거라면 의미가 없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강화에 관한 책을 뒤적이며 석탑과 여래입상에 대한 내용을 다시 정리했습니다.
석탑이 발견된 것은 1960년대라고 합니다. 발견 당시, 석탑은 쓰러져 있었고, 또 어떤 못된 사람들이 탑을 해체해 놓았다고 합니다. 이게 '도괴'란 뜻입니다. 그후 탑이 복원되었지만 온전한 모습은 아님니다.
탑의 세부 명칭은 높이에 따라서 달라짐니다. 맨 아래 쪽은 기단부, 중간(탑의 몸부분)은 탑신부 그리고 탑의 맨 윗부분을 상륜부라고 합니다. 기단부는 네모난 돌을 먼저 올려놓고 그 위에 넙쩍한 돌(갑돌)을 올려 놓은 형상입니다. 그리고 그 위부터 탑신석(일명 몸돌)과 옥개석이 있습니다. 옥개석은 지붕처럼 생긴 것 있지요? 그런 겁니다.
탑의 층수는 옥개석이 몇 개냐 하는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리고 탑신석은 옥개석과 옥개석 사이 사이에 들어가는 돌을 말합니다. 상륜부는 탑의 맨 위를 보면 뽀족하게 올라간 부분 있지요? 그걸 말합니다. 그런데 '오층석탑'에는 상륜부가 없습니다. 분실되었거든요.
비록 볼 품은 없었지만 외갓집에 가면 만갑게 맞아 주시던 할머니처럼 편안하고 부담없는 석탑이었습니다. 석탑을 둘러보고 나서 아이들은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한참을 놀았습니다. 계곡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아서 '도랑'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더위를 쫒아내기에는 그만입니다. 아주 차고 시원하거든요.
물에 젖은 발을 대충 닦고 나서 이번에는 '석조여래입상'을 보러 갔습니다. 여래입상도 봉은사에 속한 것입니다. 봉은사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습니다.
고려 예종 1년(1106년), 한 노파가 장정리 벌판 연못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는데 연못 속에서 돌 상자가 떠올랐답니다.할머니가 돌판을 열어 보았더니 그 속에 잘생긴 옥동자가 웃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그 아이를 왕에게 보냈고, 왕은 아이에게 '봉(奉)'이란 성을 내리고 이름을 '우(佑)'라고 지어 주었습니다.
그후 봉우는 과거에 급제하고 나라에 큰 공을 세워 하음백(河陰伯)에 봉해졌다고 합니다. 봉우의 5대손 봉천우는 할머니의 은공을 갚는다는 뜻에서 봉은사를 지었습니다.그리고 봉은사 안에 '오층석탑'과 '석조여래입상'을 세운 겁니다.
여래입상은 '부조'입니다. 두꺼운 돌위에 평면으로 새겨놓았습니다. 불상의 모델은 할머니였습니다. 얼굴과 눈이 크고, 어깨는 좁고 손과 발이 매우 큽니다. 키는 3미터 정도 되고요. '여래'는 현세의 부처님입니다. 부처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 을 의미합니다.
부처는 일체의 고뇌와 번민 그리고 윤회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중생들을 구제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깨달음은 '무엇을 아는 것'이 아니라, '불쌍한 인생을 죽음의 바다에서 건져내는 자비'입니다. 강화도 할머니는 봉우의 목숨을 구해준 현세의 부처님 같은 분이었습니다.
할머니에 대한 '따뜻한 소문'을 들어서 일까요. '오층석탑'과 '석조여래입상'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감사의 편지'로 보였습니다. 비록 종이가 닳고 헤어져서 몇 군데 지워진 글도 있었지만 전체 내용을 파악하기에 어려움이 없는 그런 편지 말입니다.
여래입상은 '석상각' 안에 모셔져 있고 주변에는 돌로 쌓은 울타리가 쳐져있었습니다. 그 곳 800년 전의 전설을 배경으로 해서 가족 사진을 한 방 찍고 내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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