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퍼드 사건과 MBC PD 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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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퍼드 사건과 MBC PD 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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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를 예단(豫斷)하는 보도는 삼가야 하는 법

 
   
     
 

1960년대에 우리나라 TV에 방영된 외화 연속극 ‘도망자’(The Fugitive)는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도망자’가 수립한 시청률 기록은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에 방영된 ‘댈라스’에 의해 비로소 깨졌다. ‘도망자’는 1993년에 해리슨 포드와 토미 리 존스가 주연한 영화로 다시 선보였다. ‘도망자’는 아내를 죽인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으로 가던 중 교통사고가 나서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킴블이란 의사가 자기 아내를 죽인 외팔이 사나이를 쫓는 내용이다. ‘도망자’는 1954년에 오하이오 주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소재로 만든 픽션이다.

1954년 가을,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근교에 살던 의사 샘 새퍼드는 한밤중에 자기의 아내를 죽인 혐의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다. 샘 세퍼드는 범행을 부인하고 오히려 자기도 괴한한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언론은 이 살인 사건을 연일 상세하게 다루면서 세퍼드가 간호사와 내연관계여서 임신한 부인을 죽였다고 몰아 붙였다. 그 해 연말 배심은 세퍼드를 유죄로 평결하고 종신징역을 선고했다. 1961년, 이 사건을 맡게 된 F. 리 베일리 변호사는 세퍼드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기회를 박탈당했다면서 연방법원에 인신보호영장을 청구했다.

연방법원은 베일리 변호사의 청원을 받아들였다. 1966년 연방대법원은 세퍼드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판단해서 주 법원이 다시 재판하라고 명령했고, 세퍼드는 결국 석방되었다. 유죄판결을 파기한 연방대법원은 세퍼드가 적대적 환경에서 재판을 받았고, 특히 그가 유죄라고 단정하는 보도를 판사가 배심으로부터 차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Sheppard v. Maxwell, 384 U.S. 333) 세퍼드는 자기가 무고하다고 주장하다가 1970년에 사망했다. 그 후 세퍼드의 아내의 시신을 발굴해서 다시 부검한 결과 원래의 부검에서 의문점이 발견되어 범인이 다른 사람일 것으로 추정되는 등 아직도 진실은 베일에 가려있다. 베일리 변호사는 이 사건으로 명성을 얻었다.

세퍼드 사건은 아무리 보도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해도 계류 중인 형사사건에 대한 보도는 신중해야 함을 깨닫게 해주었다. 당시 지역 방송과 신문은 세퍼드가 진범이라는 식으로 연일 선정적인 보도를 했다. 신문과 방송은 검찰이 넘겨주는 정보를 여과 없이 사실인양 그대로 보도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언론은 보도의 자유가 중요하더라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피고인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미국의 재판은 배심재판이기 때문에 재판하는 곳의 분위기가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부득이 재판지(venue)를 다른 곳으로 옮기기도 한다. 1979년 12월, 마이애미에서 모터사이클을 과속으로 몰던 흑인이 백인 경찰관들에게 폭행당하고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관들이 마이애미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되어 이들에 대한 재판은 탬파 시에서 열렸다. 다음 해 5월에 배심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자 마이애미에서 폭동이 일어나서 렌탈 카를 타고 가던 외지인 가족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렌탈 카에 있던 렌탈 카 회사 표시가 없어졌다.) 1992년에 일어난 로스앤젤레스 폭동도 현대 차를 과속으로 몰던 흑인 운전자를 백인 경찰관들이 폭행해서 비롯되었는데, 흑인들이 많이 사는 LA 카운티에선 경찰관들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LA 서북쪽 벤추라 카운티에서 재판을 했다. 주로 백인으로 구성된 배심이 경찰관들에게 무죄 평결을 내리자 LA의 코리아타운 남쪽에서 폭동이 일어나서 우리 교민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재판지를 옮긴 것은 적대적 여론으로부터 자유로운 재판을 하기 위함이었으나, 결과적으로 폭동을 초래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준다.

억만장자 유산상속인인 아내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은 클라우스 반뷸로우(Claus von Bulow)에 대한 재판(1984-85년 : 제러미 아이런스가 주연한 ‘행운의 번복’이 이 사건을 그린 영화다), 그리고 이혼한 아내와 그의 남자 친구를 살해한 혐의를 받은 오제이 심슨(O. J. Simpson)에 대한 재판(1995년)은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면서 진행됐다. 그러나 어떠한 신문 방송도 클라우스 반뷸로우와 오제이 심슨이 유죄라는 예단을 갖고 보도하지는 않았다. 또 어떠한 신문 방송도 검찰로부터 얻은 정보를 진실인양 전파하지 않았다. 두 사건에서 검찰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beyond reasonable doubt’)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배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반뷸로우 재판은 앨런 더쇼비츠(하버드 로스쿨 형법 교수)를, 그리고 심슨 재판은 자니 코크란 변호사를 스타로 만들었다. 반뷸로우 사건과 심슨 사건의 진실은 아직도 구름에 가려져 있다.

이렇게 장황하게 미국의 예를 드는 이유를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알 것이다. 나는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다룬 'PD 수첩'은 전반적으로 볼 때 성급하게 제작됐고 또 과장을 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 새로 들어선 이명박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서둘렀기 때문에 그것을 비판하기 위해 프로를 만들었다는 주장 역시 도외시할 수 없다. 2008년 여름에 검찰이 'PD 수첩'을 수사한다고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법적 불가능성에 대한 도전’이라고 썼다. 나는 “언론은 악의나 중대한 과실로 허위사실을 보도하지 않는 한 명예훼손 책임을 지지 않아야 한다”는 1964년 미국 대법원 판결(New York Times v. Sullivan, 376 U.S. 254)이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근간이기에 그렇게 썼을 뿐이다. 나는 그 판결이 있었기에 1971년에 뉴욕타임스가 국방부 비밀문서를 보도할 수 있었고, 1973년에 워싱턴포스트가 워터게이트를 파헤칠 수 있었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그렇게 썼을 뿐이다. 그러나 이른바 ‘보수신문’과 ‘보수진영’은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설리번 판결은 물론이고 세퍼드 판결도 안중(眼中)에 없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는 미국과는 달리 법관이 사실 판단을 한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법률전문가인 법관은 신문 방송이 유죄를 예단하는 보도를 해도 영향을 받지 않고 재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계류 중인 형사재판에 있어 다툼이 있는 사실관계에 대한 보도는 신중해야 하며, 특히 유죄를 예단(豫斷)하는 보도는 삼가야 하는 법이다. 'PD 수첩' 재판 과정에 있었던 몇몇 신문의 보도는 그 점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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