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먼 길을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 친구들이 모여 앉아 이렇게 지나온 가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한 잔의 술을 마실 때, 더 이상 술값에 대해 신경을 쓸 필요도 큰 부담을 가질 필요도 없는 정도는 되었다고 하며 만족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구석에서 연신 술잔만 비우던 후배가 이야기를 한다.
“형이 가난을 알아?” 그는 아직도 자기가 벗어나온 그 가난의 터널이 너무나 생생하고 지긋지긋한가 보다. 내가 겪어온 가난이 아니라, 내가 일을 하면서 주변에서 내가 겪어보지 못한 진짜 가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도 그는 곧잘 흥분을 한다. “가난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거야.”
나와 단짝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허물이 없는 그 후배는, 언젠가 자신이 겪었던 가난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의 어느 날 아버지는 채무자를 피해 집을 떠났고, 자신이 학교를 마치고 나오면 낮선 아저씨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험상 굳은 얼굴로 “너 네 아버지 어디 있어?”라고 묻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는 것이다.
같은 모임의 한 여자후배는 역시 자신 나름의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학교를 다니기 위해 서울에 동생과 함께 올라와서, 모두가 기말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도서관에 가는 그 시간에 부엌에 쪼그리고 않아 김치뿐인 도시락을 싸기 위해 쭈그리고 있던 참담한 기억에 대해. 그리고 눈앞에 닥친 자신의 공부도 아직 부족한데도, 공부할 마음이 전혀 없는 고등학생을 가르치기 위해 도서관을 나와야 할 때의 슬픔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다.
모임의 좌장격인 선배는 또 말한다. 강원도 하고도 두메산골인 정선에서 학교까지의 먼 길을 터벅터벅 걸어 다녀야 했던 그는, 그 시절 그의 등에 내리쬐던 따갑기만 했던 햇살의 기억을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것만 같았다. 마침내 ‘대처’로 탈출해 나왔을 때 그가 느끼던 그 감격과 감회에 대해 말하곤 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가난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궁핍한 시절 어려운 고난의 터널을 뚫고 나와, 이제 나름대로 자식에게는 가난을 물려주지 않을 정도는 노력을 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곳곳에 널려 있는 가난을 본다. 이제는 너무 지겨워서 벗어나고 싶은 그곳. 무심코 잊어버리고 지나가는 그곳에 가난은 아직도 또아리를 틀고 자리 잡고 있다.
우리가 그렇게 겨우 빠져나왔던 그 길고 힘들었던 터널에, 아직도 남아서 하루하루의 삶을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을 이제는 더 이상 보고 싶지도 않을 것일까. 내 눈에는 자꾸만 더 높은 곳, 더 좋은 것이 바라다 보인다. 지난날 어려움들을 이겨 나오는 과정에서, 결코 이 모든 것들을 하나도 잊지 않으리라 맹서했던 기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한때 풍요에 넘치는 듯 했던 사회에도 여전히 그늘은 있었다. 번영을 자축하며 많은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잔치를 벌이던 바로 그때, 우리사회의 그늘에서 많은 사람들이 소리죽여 흐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사회에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누구보다 더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 또한 그 사람들이다.
실직이다. 감봉이다. 잔치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 때. 그들은 묵묵히 또 하루의 고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삶은 좀처럼 남들의 눈에 띄지도 않기 때문이다. 남들이 어떻게 외면하든, 그들은 또 하루분의 삶을 살아야 한다. 하루의 저녁이 찾아오면 지친 어께로 그들의 보금자리를 찾아가고, 또 하루의 해가 뜨면 어딘가로 향해 발걸음을 향한다.
나와 친구들이 힘들었지만 결국은 빠져나오고야 말았던 그 고통의 터널을, 그들도 언젠가 빠져나올 수 있을까? 우리가 고통을 딛고 오늘의 자리에 서기까지, 오랜 기간동안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부모님과 우리의 약간의 노력과 행운이 그들에게도 돌아갈 수 있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운이 좋았던 것이다.’ ‘가난의 진짜 매운맛을 보지는 못했던 것이다.’라고.
살다가 몸이 아플 때. 가난이나 그 무엇으로 인해 마음에 큰 아픔이 찾아올 때. 이 정도까지만 노력하면 될 것이라는 계획이 틀어져 버릴 때. 경제적 전망이 춤을 추며 그들의 힘든 노력에 의한 저축을 비웃을 때. 그리고 당장 하루의 끼니가 어려울 때. 그들에게 그 힘든 터널을 빠져나올 힘이 남아있을까.
언젠가 그들도 우리처럼 지난날의 아픔에 대해 허허 웃으면서, 지나간 추억으로 회상할 그런 여유로운 날들을 누릴 수 있을까. 오늘은 어쩐지 지나간 날들이 아름답게만 느껴지지가 않는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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