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태극기를 내걸어 스스로 태극기 마을이 된 곳은
대한민국에서 하천리가 유일할 것이다.

여기에는 집집마다 태극기가 걸려있다. 오늘은 삼일절이나 광복절이 아니다. 평일임에도 태극기는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그렇다고 마을에 특별한 행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무슨 국가 유공자라거나 무슨 훈장을 받은 사람들도 아니다. 그저 농사를 짓거나 직장에 다니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다.
이 동네에서 태극기는 1년 365일 바람에 펄럭인다. 그것도 집집마다 그렇다. 여기는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하천리(下川里), 제주도 동남쪽 끄트머리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옆에는 천미천(川尾川)이라는 하천이 있다. 하천 옆에 있는 마을이라서 이름이 하천리가 되었다.
이 마을에 태극기를 달기 시작한 것은 십수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2년 표선면(면장 강금화)에서는 삼일절이 다가오자 29일부터 3. 1일까지 2일간 표선면 주요 도로변에 866개의 태극기를 게양하였다. 그러자 하천리 청년회와 세화1리 청년회에서도 이 운동에 적극 동참하여 마을 주민들에게 태극기 달기 운동을 독려하였다.

하천리 집집마다에 태극기가 달린 것은 이때부터였다. 당시 하천리 청년회장은 강윤배였다. 하천리 청년회에서는 이 운동을 일회용 운동으로 치부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래서 하천리에는 365일 태극기가 게양될 수 있었다. 청년회에서는 집집마다 태극기를 나눠주고 태극기가 훼손되면 정기적으로 태극기를 교체해 주고 있다. 물론 모든 비용은 마을 청년회에서 부담하고 있다.
하천리에는 650여 세대에 1,400여 명이 살고 있다. 인구수로 보면 제주도 자연부락치고는 그리 작은 편은 아니다. 이웃 마을들은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데 다행히 하천리는 불어나고 있다고 한다. 하천초등학교가 있었지만, 학생 수가 줄어들며 2001년 폐교되었고, 지금은 다른 이웃 마을들과 통합하여 하천리에 한마음초등학교가 세워져 있다.
마을 옆의 천미천은 해안가에서 한라산 기슭까지 30km 정도 이어지고 있다. 제주도 하천은 거의 전부 건천이라서 비가 내릴 때를 제외하고는 물이 흐르지 않는다. 하천리는 제주도 다른 자연부락들과 형태가 다르다. 다른 자연부락들이 둥근 모양으로 형성되어 있다면 하천리는 천미천을 따라 길게 형성되어 있다.
하천리에는 세 개의 마을이 있다. 천미천 하류 바닷가에는 하동(下洞), 상류로 올라가면 중동(中洞), 더 올라가서 상동(上洞)이 있다. 하동은 바닷가에 접한 마을이라 농업과 수산업의 마을이라면, 중동과 상동은 농업을 중점으로 하고 있다. 하동에는 빌라와 펜션들이 들어서 있어 시골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지만, 상동은 전형적인 제주도 중산간 마을로 고적한 제주도 분위기를 담고 있는 마을이다.

이제 지어진 빌라와 펜션들에는 태극기가 없지만, 특히 상동 마을에는 태극기가 많이 세워져 있다. 골목에도 태극기는 휘날리고 있다. 골목 안쪽에 태극기가 없는 집들은 아마도 청년회의 예산 문제 때문일 것이다. 골목마다 집 앞에는 깃대가 세워져 있고 깃대 위에는 여지없이 태극기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하천리 상동에는 그 흔한 빌라나 타운하우스가 보이지 않아서 좋다. 오래된 돌집에는 조용한 카페도 보이고 아담하게 리모델링한 민박집도 보인다. 8월의 뜨거운 태양이 쏟아지는 골목길에는 검은 현무암의 돌담이 이어지고 돌담 위에서는 청귤이 익어가고 있었다. 청귤이 매달린 검푸른 귤나무 가지 위에서도 태극기는 휘날리고 있었다.
국내에는 태극기 특화 거리로 지정된 태극기 마을이 서너 개 있다. 그러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태극기를 내걸어 스스로 태극기 마을이 된 곳은 대한민국에서 하천리가 유일할 것이다. 하천리 하늘에 나부끼는 태극기는, 태극기가 천대받는 시대에, 혈세를 받는 고위 공직자들이 태극기 배지를 거꾸로 달고서도 부끄러워 않는 시대를 향해서 하천리 주민들이 대성일갈하는 소리 없는 포효로 들린다.
제주도에 가게 되면 하천리 민박에서 일박하고 하천리 거리를 걸어보자. 하천리사무소는 중동에 있다. 주소는 ‘표선면 하천로 59’이다. 여기에 주차하고 상동으로 산책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태극기 거리를 걷다가 이름 없는 이쁜 카페라도 만난다면 거기에서 마셔보는 커피 맛 또한 특별할 것이다.
365일 태극기를 사랑하고 게시하는 하천리 주민들이야말로 태극기 유공자다. 하천리 마을에 태극기가 더욱 많아지기를 소망해 본다. 어떤 독지가가 있어서 후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하천리 도로마다 더욱 태극기가 무성해지고 골목마다 태극기 펄럭이는 소리가 가득하기를 소망해 본다.
뉴스타운
뉴스타운TV 구독 및 시청료 후원하기
뉴스타운T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