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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추왕릉 가는 길 팻말 ⓒ 이종찬^^^ | ||
"미추왕이 경주 김씨로서는 처음으로 왕위에 올랐다면서요? 또 그때부터 경주 김씨가 38명이나 왕위에 올랐고."
"그렇니더. 미추왕은 경주 김씨 시조였던 김알지의 7대 손이자 석탈해의 자손이라고 하니더."
"미추왕이 성군은 성군이었던 모양이군요? 다른 고분들과는 달리 능을 이렇게 특별히 보호하고 있는 걸 보면."
"아, 미추왕 때문에 이곳 이름이 대릉원이라고 지어졌으니까 더 이상 말을 할 필요가 오데 있겠능교?"
푸름아 그리고 빛나야!
이곳 경주에는 참으로 오랜만에 따가운 햇살이 띄엄 띄엄 비치고 있어.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할 것만 같아. 왜냐구? 하늘 저 편에서 제법 진한 회색을 띤 구름들이 잔뜩 몰려오고 있거든. 그래도 아빠는 기분이 몹시 상쾌해. 이게 얼마 만에 보는 햇살이야. 참! 그곳 창원은 어때? 그곳에도 유리잔처럼 투명한 햇살이 비치고 있니?
근데 신 선생이 또 슬슬 꾀가 나기 시작하나 봐. 이마에 땀방울 하나 솟은 흔적이 없는데도 더워 죽겠다며 손수건을 꺼내고 있어. 오랜만에 햇살이 비치니까 또 막걸리 생각이 슬슬 나나 봐. 하여간 신 선생도 못 말려. 막상 막걸리집에 가면 많이 마시지도 못하면서 웬 막걸리 타령은 그리 많이 하는지.
"이런! 아예 들어갈 수가 없잖아?"
"당장 너머로 대충 살펴보모 되지, 뭘 그리 자세히 살펴볼라 카능교?"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능을 훔쳐보듯이 그렇게 보고 간다는 게 어찌 좀 그렇네요."
"우짜겠능교? 태극문을 자물쇠로 꽁꽁 잠궈놓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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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멀리서 바라본 미추왕릉 입구 ⓒ 이종찬^^^ | ||
그래. 이곳 대능원 안에 있는 다른 고분들은 모두 담장이 없었어. 근데 이곳 미추왕릉(사적 제175호)만은 유독 담장을 둘러치고 태극모양이 그려진 문까지 달려 있어. 그 문에는 오래 버려두었던 것 같은 자물쇠가 단단하게 채워져 있고. 하긴 다른 고분들은 주인을 모르니까 길가에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미추왕은 신라 제13대 왕이야. 경주 김씨로서는 제일 처음으로 왕위에 오른 분이기도 하고. 또한 미추왕은 나라를 아주 잘 다스렸나봐. <삼국사기>를 살펴보면 '미추왕은 백성에 대한 정성이 높아 다섯 사람의 신하를 각지에 파견하여 백성의 애환을 듣게 하였다'라고 나와 있거든. 그리고 '재위 23년만에 돌아가시니 대릉에 장사를 지냈다'는 기록도 나와 있대.
그래서 그때부터 여기를 대릉(竹陵)이라고 불렀대. 또 미추왕릉은 죽현릉(竹現陵), 죽장릉(竹長陵)이라고도 부른대. 왜냐구? 여기에 대해서는 지난 번 대능원과 검총에 갔을 때 아빠가 잠시 설명한 적이 있었지? 이 능에서 대나무잎을 귀에 꽂은 죽엽군(竹葉軍)이 나와 외적의 침입을 막아줬었다고?
근데 미추왕릉과 관련된 이야기는 그것뿐만이 아니야. 삼국통일을 한 김유신 장군과 얽힌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어. 어떤 얘기냐구? 아빠가 또 전래동화를 한 꼭지 쓰는 기분으로 글을 써야 되겠구나. 한번 읽어보렴. 얼마나 재미가 있는지. 그리고 이만하면 아빠가 동화작가로 나서도 되겠는지 한번 평가해 봐.
신라 제36대 혜공왕 때의 일이었어. 그 해 봄, 그러니까 진달래가 온 산천을 발갛게 물들이던 4월의 따스한 봄날이었어. 그런데 난데없이 김유신 장군의 무덤에서 회오리 바람이 일기 시작한 거야.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이 그 회오리바람 속을 자세히 살펴보니, 의관을 멋지게 갖춘 장군이 한 사람 서 있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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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추왕릉 ⓒ 경상북도 ^^^ | ||
그리고 그 장군 주위에는 갑옷을 입고 무기를 가진 병사들도 40여 명 정도 서 있었다는 거야. 그러더니 그 장군과 병사들이 이내 미추왕릉으로 줄을 서서 들어갔대. 잠시 후 미추왕릉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어디선가 슬피 우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근데 그 소리를 자세히 들어보니 우는 소리가 아니라 김유신 장군이 하소연하는 소리였대.
"신은 평생동안 나라를 위해서 어려운 일을 많이 해냈고, 삼국을 통일한 공까지 있사옵나이다. 그리고 이제 신은 죽어 혼백이 되었지만 나라를 보호하고 재앙을 막는 일을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았나이다."
"그래, 무슨 연유인지 어서 말해 보거라."
"지난 경술년에 신의 자손이 죄없이 죽임을 당하였나이다. 이는 지금의 임금이나 신하들이 신의 공을 조금도 생각치 않는 것이라고 여겨지나이다. 그래서 이제부터 신은 먼 곳으로 옮겨가서 다시는 나라를 위해서 일하지 않을까 하옵니다. 원하옵건대 대왕께서는 이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나와 공이 이 나라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대체 누가 이 나라와 백성들을 보호한단 말이오? 공은 다시 예전과 같이 나랏일에 계속 힘쓰도록 하오."
하지만 김유신 장군은 미추왕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세 번이나 그렇게 청했대. 그러나 왕은 세 번 다 허락하지 않았다는 거야. 그러자 김유신 장군의 혼백은 다시 회오리 바람을 타고 자신의 무덤 속으로 사라져 버렸대.
이 말을 전해 들은 혜공왕은 크게 두려워했어. 그리고 즉시 대신이었던 김경신을 보내 김유신 장군의 능에 가서 사과하게 했대. 또 취선사에 여러가지 진귀한 물건을 내려 김유신 장군의 명복을 빌게 했대. 왜냐구? 취선사는 김유신 장군이 평양을 쳐서 평정한 후에 복을 빌기 위해 세웠던 절이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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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추왕릉 입구에는 녹슨 자물쇠가 굳게 채워져 있다 ⓒ 이종찬^^^ | ||
그 일로 인해 혜공왕과 여러 신하들은 미추왕에게 크게 감사했다는 거야. 만약 미추왕의 혼령이 아니었더라면 김유신 장군의 노여움을 막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그리고 그때부터 나랏사람들이 김유신 장군의 덕을 기려 해마다 제사를 지내고, 능의 서열 또한 오릉의 위에 두어 '대묘'라고 부르기 시작한 거래.
푸름아 그리고 빛나야!
서기 262년에 왕위에 오른 미추왕은 22년 동안이나 왕위에 있었대. 꽤 오랫동안 왕위에 머물러 있었던 셈이지. 그래서 그런지 이 미추왕릉 또한 엄청나게 커. 자료에 보면 미추왕릉은 밑지름이 56.7m, 높이가 12.4m이며, 이 능이 차지하고 있는 면적만 해도 6만1036평방미터라고 나와 있구나.
그리고 미추왕릉 앞에는 혼유석(魂遊石)이 자리잡고 있어. 한번 더 말하지만 혼유석은 봉분 앞에 놓는 직사각형의 돌이야. 근데 담장이 빙 둘러쳐져 있어서 어디 볼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아빠가 혼유석과 미추왕릉의 전체 모습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담장 아래서 발돋움을 했어. 하지만 그래도 잘 보이지 않는 거야.
그래서 아빠가 땅을 박차며 사슴처럼 한번 펄쩍 뛰었어. 그때 신 선생이 아빠더러 뭐랬는 줄 아니? 영 맛이 갔대. 그리고 검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 주변을 빙빙 돌리는 거야. 머리가 어찌된 게 아니냐는 투로 말이야. 하지만 궁금한 걸 어쩌겠어. 그렇게 해서라도 아빠 눈으로 직접 한번 보는 것이 낫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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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장 너머로 바라본 미추왕릉 ⓒ 이종찬^^^ | ||
자료에 보면 미추왕릉의 내부구조 또한 돌무지덧널무덤이래. 돌무지덧널무덤은 또 뭐냐구? 돌무지덧널무덤은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의 순 우리 말이야. 이 또한 지난 번에도 설명했지? 무덤 내부의 지하에 무덤광을 파고 상자형 나무덧널을 넣은 뒤 그 주변을 돌로 덮었다는 그런 무덤 구조 말이야. 봉분은 그 위에 덮은 흙이고. 그러니까 돌무지덧널무덤은 신라 귀족들의 특수한 무덤이라고 생각하면 돼.
근데, 한가지 재미있는 게 있어. 그게 뭐냐구? 미추왕릉 주변에 진짜로 대나무숲이 우거져 있는 거야. 마치 대나무 잎사귀를 귀에 꽂고 나타난 그 죽릉군처럼 말이야. 그래서 아빠도 그 대나무 잎사귀 하나를 떼냈어. 그리고 아빠 귀에 꽂았지. 그러자 신 선생이 또 한번 검지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 주변을 빙빙 돌렸어.
"내가 막걸리나 뺏어묵는 날 도적으로 보이요? 자꾸 죽엽군 행세로 해쌓구로?"
"체! 말꼬리마다 그 놈의 막걸리 타령은 절대 빠지지 않는다니깐."
"탁주 반 되는 밥 한그릇이란 말을 알기는 아능교?"
"에헤! 인제 그만 대릉원을 떠납시다. 제사도 다 지냈으니, 음복을 해야지."
"누가 보모 나더러 제사에는 관심없고 음복에만 관심 있다 카것네."
"그 말이 아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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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추왕릉 출토 유물, 보물 제633호 ⓒ 영남대박물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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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추왕릉 출토유물, 금제감정보검 보물 제635호 ⓒ 국립경주박물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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