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동장 시켜주면 생활보호대상자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으로 동장이 되었다는 사람이 있다. 동장도 봉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권력인 것인가? 과연 그같은 말이 있었다 해도 이제와서 발설하는 사람도 똑 같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이 바로 패거리이다. 정치권은 패거리들의 눈치를 보면서 끌려갈 수밖에 없는 실정이고, 또 그 패거리를 악용하기 위해 동장시켜 주면 생활 보호대상자 시켜주겠다고 했으니 얼마나 기가 막힌 현실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가?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책임은 정치권이나 지도급 인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 국민 또는 유권자의 의식에도 문제가 있다. 무슨 일에서건 몇몇이 모이면 어떻게 해서든 뭔가 그들만의 이익을 얻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이래 가지고야 뭐가 되겠는가? 그런데도 뭔가 잘못되었다 하면 그 패거리들은 선량한 국민을 팔아 먹는다. 국민의 여론이 그렇다는 식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론이라는 것은 솔직히 믿을 것이 못된다. 어디서 어떻게 조성된 여론인 것도 사실상 모르는 체 막연하게 여론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제는 이런 행태가 좀 없어져야 한다. 동네 동장은 그야말로 국민 생활과 가장 가까이 있는 일꾼으로 자기 이익 보다는 봉사 정신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요즘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 어째 뭔가가 한참 잘못된 것같다.
동네 동장 뽑는데 동네 사람도 아닌 힘있는 사람이 옆에 딱 버티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도대체 이래서 개혁이라는 것이 이루어지기는 지는 것인가?
개혁 할려면 이런것 부터 개혁해야 한다. 동장 선거에도 뭔가 거래가 있고, 큰 동네에는 돈 얼마를 썼다는 말들이 분분한데, 꼭 동네 동장도 선거를 해야 되는지? 이런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이르면, 민주주의라지만 지방자치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자치 민주주의가 공익보다는 일부 개인의 이익에 집착하는 사람들 때문에 이용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다수결의 원칙을 내세워서 너무 많은 문제가 야기되고 있으며 그 다수의 횡포 앞에 소수의 양심은 줄어든다. 그러나 양심적인 소리가 없어진다는 것은 사회의 산소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 진주의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 진주가 필요하지, 진주의 가치도 모르는 돼지에게 진주가 과연 필요하겠는가?
대중이란 비굴하기 짝이 없는 존재라고 한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실제로 김종필 자민련 총재도 국민들을 들쥐에다 비유했다. 김종필총재의 그같은 말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현대 정몽헌 회장의 죽음 앞에 현대 사장들의 눈물 ! 바로 참된 인간의 눈물이다.
서로 존경하고 믿음을 주고 믿음을 받는 인간관계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자기에게 불리하면 말 뒤집는 걸 후라이팬에 부침개 뒤집듯이 뒤집는 세상이니, 현대 사장들의 눈물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옛날 박대통령 죽음을 알리면서 김성진 문공부 장관이 쉴새없이 눈물을 닦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더 많이 눈물을 흘렸다.
바로 그와 같은 인간관계가 형성되면은 아직은 살만한 사회라고 위로 받을 수 있다. 산소같은 양심 세력들이 있어야 한다. 이제 소수의 양심에 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옳지 못한 다수의 함성에 소수의 양심의 소리를 묻어 버린다면, 희망이 없어 진다. 옳은 건 옳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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