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 드셨습니까?”
“진지 잡수셨어요?”
“밥 먹었니?”
“식사 하셨슈?” 물으며 인사 나누던 때가 얼마 전 일이다.
밥 한 번 잘 먹고 “어~ 잘 묵었다.” 트림을 하며 옆 사람을 거북하게도 한다. ‘밥숟가락 놓다’는 말은 죽음을 의미한다.
밥에 대해 간단히 분류해 보았다.
주재료인 쌀로 만든 쌀밥, 현미밥, 7분도밥, 5분도밥에 메밥, 이밥이 있고 찰벼인 찹쌀로 찹쌀밥을 짓는다. 보리쌀로 만든 보리밥과 꽁보리밥도 빼놓을 수 없다.
잡곡 등 섞는 재료에 따라 콩밥, 팥밥, 조밥, 수수밥, 옥수수밥, 무밥, 감자밥, 여러 잡곡을 섞은 잡곡밥, 오곡밥, 콩나물밥, 송이밥, 굴밥을 모르는 사람 드물다.
생김새와 상태에 따라 누룽지, 깜밥, 따순밥, 더운밥, 찬밥, 식은 밥, 삼층밥, 고봉밥, 공기밥으로 나뉘고 용도에 따라 떡밥과 술밥을 들 수 있다. 활용측면에서 국밥, 덮밥, 비빔밥, 헛제삿밥, 주먹밥, 김밥, 초밥, 약밥은 물론 먹는 시기에 따라 아침밥, 점심, 저녁밥, 샛밥, 밤밥으로 불린다.
각기 불리는 이름에 따라 신분과 삶의 무게를 짐작케도 한다. 눈물을 머금고 길가에서 동냥해서 먹는 밥, 훔쳐먹는 밥, 열흘을 굶다가 먹게되는 밥, 옥살이하며 먹는 밥, 생활고에 야반도주를 목적으로 몰래 먹는 밥, 소년소녀 가장이 설익은 생쌀로 간장 한 종지에 비벼 먹는 밥도 있다.
수라는 임금님이 드셨던 밥이다. 진지는 어른이 드시는 밥이다. 식사(食事)는 일제 시대 이후 널리 쓰였는데 밥을 통칭하기도 한다. 밥은 한국인에겐 주식이다. 그 다음이 국이고 김치다. 식사하면 으레 밥이 생각난다. 면(麵)을 아무리 먹어도 간식(間食)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아직 꽤 있다.
그렇다면 대체 우리 민족에게 밥은 무엇인가? 밥을 소중히 여기는 우리에게는 한 끼를 때우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살림의 척도가 밥에 있다. 건강함의 기준이기도 하다. 안방이나 거실 식탁에 걸게 차려 놓고 즐기는 밥. 고급 한(韓)식당에서는 한끼에 10만원을 넘는 경우도 있다.
쌀의 가치는 다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다. 쌀은 곧 생명이다. 어른들은 밥상머리 예절을 가르칠 때 늘 무릎을 꿇고 한 톨도 흘리지 말고 먹으라고 하셨다. 떨어진 밥도 다시 주워 먹게 가르치셨다. 그만큼 소중하고 감사히 먹으라는 뜻일 게다.
밥에는 서양사람들에게 빵 한 조각 이상의 깊은 뜻이 베어 있다. 어머니의 정성이 절절 녹아 있는 밥은 오븐에 손쉽게 구워 갖고 다니며 먹는 빵이나 빵 가게에서 사다주는 그것과는 다르다. 그들이 빵을 건조해서 만든 것과 달리 밥은 오히려 물을 부어 부풀려서 먹었다.
밥은 쌀을 재료로 밥을 짓는다. 밥하고 남으면 강정도 만들고 유과도 만들어 군것질거리를 만들기도 한다. 식혜를 만들어 조청을 고와 입을 즐겁게도 한다. 떡을 만들어 조상님께 감사의 제를 지내기도 한다.
하루 밥 세끼 챙겨 먹는 게 내 생활 신조다. 한 끼라도 거르면 상반신에서 열이 나기 시작한다. 급기야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온다. 그러니 한끼라도 먹지 않으면 온몸에 힘이 쭉 빠지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이 정도라면 생활신조라기보다 밥 먹는 것은 내 생명을 지키는 일이다.
어떤 밥이 가장 맛있을까? 밥맛이야 여주나 이천 등 경기미를 최고로 친다. 초가을 누렇게 익은 나락을 베어 얼른 방아 찧어 만든 햅쌀밥이 으뜸이다. 경기미 햅쌀을 가마솥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게 함치르르 밥을 지으면 반찬 없어도 입안에 쫀득쫀득 혀를 감아주며 달짝지근하게 입맛을 돋군다. 시레기된장국 한 그릇과 무생채면 족하다. 얼마나 맛있을까?
이런 밥도 혼자서 먹으면 정말이지 맛이 없다. 제 아무리 배가 고파도 물 한 사발 마시고 밥 먹을 시간을 자꾸 늦추고 만다. 그러니 하루 세 끼를 찾아 먹는 건 쉽지 않다. 혼자 먹는 것은 맛이 있어서 먹는 것이 아니다. 마지못해 굶어죽지 않고 최소한의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먹는다.
혼자서 밥을 1년 이상 먹어본 사람은 그 처량함을 안다. 벽을 쳐다보며 먹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밥그릇에 눈물이 “주루루룩” “또옥 똑” 비 오듯 떨어진다. 궁상맞은 자신을 나무랐던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혼자서 밥을 먹지 않으려면 어찌 해야 하는가?
먼저, 마음을 곱게 써야 한다. 내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상대를 언제고 받아들일 자세를 갖춰야 한다. 남녀노소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 노인에게 한 술 대접하면 손녀나 손자를 소개시켜 줄 수도 있다. 남자가 남자와 친해지면 누이를, 여자가 여자와 맘을 툭 터 놓으면 오빠나 남동생을 소개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다음으로, 한적한 주말에는 밥을 싸서 들이나 공원으로 나간다. 조금 푸짐하게 준비해서 말이다. 지나가는 누구에게라도 한 그릇 내놓으면 다들 친구가 된다.
이리해도 안되면 단단히 맘을 먹어야 한다. 당분간은 혼자서 먹을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다. 육체적 노동과 운동을 하고 나서 먹어보자. 똑같은 반찬에 어제와 다름없는 밥이지만 맛이 다르다.
그런데 이보다 더 맛난 밥이 있다. 쇠고기국을 따로 끓이지 않아도 된다. 돈을 들일 필요도 없다. 어머니, 아버지 상에 앉으시고 코흘리개 형제들 옹기종기 모여 앉아 “후후” 불며 국물 “후루룩” 떠먹는 소리에 덩달아 내 손이 움직일 때가 제일 맛이 좋다.
사랑하는 사람과 먹는 밥맛이 혀끝이 느끼는 감이 다르고 소화도 잘 된다. 사랑의 묘약이란 이렇게 오묘하다. 밥 맛 까지 좋게 하니 말이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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