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 밤 전격적으로 선포된 대한민국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지 155분에 만에 국회에서 계엄령 해제 요구안이 통과되면서 윤석열의 계엄령은 무효가 됐다.
법에서 정해진 것처럼 국회에서 계엄령 해제 요구안이 통과되면 “지체없이”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거쳐 계엄령을 해제하도록 되어 있다. 계엄령 선포에서 해제까지 약 6시간이 걸렸다. 즉 국회 해제안 통과 이후 약 3시간 남짓의 시간이 걸렸다. 이 시간이 ‘지체없이’ 처리해야 한다는 조항에 어떻게 해석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여하튼 윤석열 대통령의 무모하고도 어이없는 비상계엄령 선포는 한국의 최근 역사의 어두운 역사를 반추하기에 충분하다. 대통령의 도박 실패는 K-팝, K-드라마 등 한국의 선진국 위상이 곤두박질치며 ‘국제적인 망신’을 사기에 충분하다.
“어떻게 이룩해온 대한민국인데 무능하기 그지없는 대통령 한 사람 때문에, 우리 한국이 이런 꼴을 보여야 하는지 분통이 터진다”는 많은 시민들의 목소리가 처량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우여곡절이 있을 때마다 대한국인은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결의가 대단’, 난국을 극복해오곤 했다.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도 윤석열의 비상계엄령 실패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평소의 성격처럼 ‘충동성’에다 ‘철저한 준비 부족’ 그리고 한국인들의 높은 수준의 시민의식과 민주주의 수호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과소평가하는 버릇이 도박의 실패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보수성향이라는 노년층은 계엄령이라는 과거의 아픈 상처가 뚜렷하다. 1979년 5.18, 12.12사태 등을 거치면서, 수난의 역사를 몸소 체험한 노년층의 계엄령이라는 유령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역사적인 기억이다.
1970년대 박정희 유신정권은 물론 1980년 광주 항쟁을 잔혹하게 진압한 전두환의 독재 정권 등 한국의 과거 권위주의 정권은 국가적 정신에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치유가 쉽지 않은 상처들이 역사를 장식하고 있다.
이후 한국인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으며,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세계 민주주의 본보기로서의 위상은 아무리 자랑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높은 수준의 지식과 빠르고 정확한 정보 획득능력 등은 어설픈 정치지도자들을 비웃을 정도이다.
날로그 시대의 지식과 압박과 권력을 일삼아 살아온 지도자는 디지털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 보통이지만, 아날로그의 한 물간 지식으로 급변하는 디지털을 이겨보겠다는 오만과 아집이 대통령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국민들의 울화통을 터뜨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계엄 쿠데타(?)를 지켜본 사람들은 윤석열이 군대와 경찰의 계획과 조율이 부족, 쿠데타 도박이 빠르게 무산되는 결과를 낳았다. 아마도 비밀유지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조직적이고 일사불란한 군대 동원이 실패했다고 보는 것 같다.
윤석열은 충동성이 심하고, 고집이 세며, 남의 조언을 따르지 않는 안하무인 격으로, 지적 능력은 떨어지고 부인에 의존하는 성향을 보인다. 특히 사내가 마누라한테 꼼짝하지 못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보수 성향의 어르신들의 지적도 적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윤석열은 2024년 12월 3일 밤 무모한 도박에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걸어, 결과는 비참한 실패로 막을 내렸다. 일부에서는 기회를 봐서 또다시 계엄령을 선포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섞인 말도 있다. 윤석열의 충동적이고 돌발적인 행동을 익히 보아온 일부 시민들의 우려이다. 의식 있는 국내 일부 언론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인들의 회복력(복원력)과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을 너무나 과소평가했다”는 진단이 설득력을 갖는다.
윤석열의 이 같은 부정적인 면이 있으면 음과 양이 있듯이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이번 위기는 윤석열의 장기적인 정치적 불안정을 보다 빨리 종식시키고, 당초 예상보다 일찍 질서를 회복시킬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3일 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안으로 진입한 계엄군은 약 280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무장한 계엄군(특수부대)은 의사당을 습격, 의원들의 계엄령 선언을 무효화 하려는 것을 차단하려 헀다. 그들은 자동소총과 야간투시경으로 무장하고 본회의장 등을 진입하려 했지만, 의원 보좌진 등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다. 동시에 이 부대원들 역시 무차별적이고 잔인할 정도의 진입 행동을 하지 않았다. 무슨 이유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국회는 만장일치로 계엄령 해제 요구안을 통과시켰고, 사전 통보를 받지 못했다는 워싱턴의 평화적 해결 요구 등 국제 사회의 압박 속에서 윤석열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1980년 광주 항쟁 당시의 완전 무장을 한 계엄 진압군의 무차별적이고 잔혹한 학살 행위 등이 나중 조사를 통해서 드러났다. 12.3의 여의도 계엄 쿠데타에서는 광주 항쟁 당시와는 상황이 아주 달랐다. 권력의 편에 선 군대의 입장에서 보면, 일사불란하고 강력한 진압 작전을 펼쳤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마 계엄군 자신들도 광주 항쟁에 대한 부담이 댔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조국혁신당의 김준형 의원은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CMP)에 “이번 쿠데타를 성급하게 계획하고 형편없이 실행했다”고 표현할 정도이다. 김 의원은 “이번 쿠데타는 윤석열 대통령, 김용현 국방부 장관, 계엄사령관이 관련된 음모”였다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우리는 충격과 공포에 사로잡혔다. 윤 대통령은 터무니없는 계엄령 선언으로 돌이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대통령 탄핵 논의는 불가피해졌다”고 했다. 또 보수지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이 사건을 세계 10대 민주주의 국가의 국가적 수치”라고 말했다. 사설은 이어 “윤 대통령은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지 국민에게 대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SCMP는 서울에서 만난 “64세의 최 모씨는 1960~80년대 군사독재 시절 계엄령 이 선포됐던 때를 기억한다”면서 “이렇게 나라를 제대로 운영하는 게 어려운 일인가?"라며, ”한국은 단순히 구멍 가게가 아니다. 이건 국제적인 수치“라고 덧붙였다고 전했다.
전남대 윤성석 교수는 쿠데타 시도를 ”충동적이고 서투른 것“으로 묘사했다. 그는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런 무모한 행동, 특히 국민의 지지가 부족한 대통령에 의해 무너질 만큼이 아니다. 회복력이 매우 강하다. 윤석열의 사임이나 탄핵을 요구하는 다음 시위는 더욱 강해질 뿐“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한국 석좌인 빅터 차와 그의 동료들은 4일 이른 아침에 계엄령을 해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의 정치적 생존은 지금으로선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CSIS 웹사이트는 ”윤이 정치적 불안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강력하고 단호한 움직임을 취한 것으로 보이지만, 계엄령 선언을 뒤집기 위한 의회의 신속한 동원과 지지율이 10%대에 달하는 대통령에 대한 거리 시위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윤의 몰락을 의미할 수 있다“고 적었다.
또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최진 소장은 ”윤 대통령이 점차 정치적 고립에 직면하고 있다“면서 ”자신과 그의 아내와 관련된 부패 혐의에 대한 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그는 이 극단적인 조치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것은 엄청나게 역효과를 냈고, 그의 대통령직은 엉망이 됐다“고 말했다.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야당은 지난 11월 윤석열의 아내 김건희에 대한 주식 시장 조작 혐의와 선거 간섭에 대한 특별검사 조사를 의무화하는 세 번째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윤은 이러한 움직임을 거듭 거부해 왔다. 윤은 또 권력 남용과 국회 및 지방 정부 선거 간섭 혐의를 받고 있다.
최진 소장은 ”한국이 그 여파를 헤쳐 나가는 동안 계엄령 사건은 민주주의 제도의 지속적인 힘과 이를 보호하려는 국민의 변함없는 결의를 강조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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