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천후 신발' 고무신 - 전성기 다시올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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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천후 신발' 고무신 - 전성기 다시올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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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스님과 나이든 농부가 고객의 전부, 요즘엔 검정보다는 흰 고무신이 ...

^^^▲ 한대수의 '고무신'“과거같은 고무신 전성기가 다시 올 수는 없을 것”^^^

남자가 군대간 사이 변심하는 여성이 예전보다 드물어져서 가 아니라 고무신 신는 여자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고무신을 구두,운동화,샌들같은 말로 바꾸어야 마땅하다. 정말 여자든 남자든 요즘 고무신 신는 이들을 보기가 어렵다. 절간,상가(喪家) 그리고 한복 입는 명절날에나 볼 수 있다 보니 고무신은 특수화(特殊靴) 중의 특수화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70년대까지만 해도 시골 등교길의 초등학생들은 거의 다 ‘고무신족’이었다. 어쩌다 ‘운동화’ 신은 아이가 한 명이라도 나타나면 선망의 대상이었다. 어른들은 더해 모두가 고무신 신발차림으로 논밭에 일하러 나다녔다.

농촌인구가 지금보다 최소한 1,000만명이 많던 그 시절 어른,아이 모두에게 필수품이다 보니 고무신 제조업은 큰 산업 이었다. 국내 신발 산업의 요람인 부산지역의 경우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제상사나 진양고무 등 대규모 회사들은 물론 군소 회사 10여 곳에서 고무신을 생산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영 딴판이다. 신발가게에 가도 고무신을 진열장에서 만나기 힘들 정도다.
찾는 사람들이 제한적이다 보니 물건을 아예 창고에 보관하기 일쑤다. 즘 가격은 켤레 당 3,000∼4000원 선.

사이즈도 다양하지 않다. 2살∼5살배기 아이들용(125∼170㎜)에 바로 성인용(230㎜ 이상)이 이어진다. 어린이용 중간사이즈는 아예 생산되지도 않는다.

대구 재래시장에서 20년째 신발가게를 하고있는 이춘자씨(48·여)는 “시작할 당시만 해도 고무신 찾는 손님들이 많아 고무신이 진열장 한 쪽을 버젓이 차지했으나 요즘은 가끔 상가(喪家)에서 한꺼번에 10∼20켤레씩 주문하는 일 외엔 일부 스님과 나이든 농부가 고객의 전부”라면서 “과거와 달리
요즘엔 검정보다는 흰 고무신이 더 많이 나간다”고 말했다.

고무신의 어제와 오늘은 정부의 물가조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동안 물가조사 필수품목이던 고무신은 지난 1985년 흑백TV와 함께 조사 대상 품목에서 빠지는 운명을 맞았다. 대신 이 자리는 외국어학원비와 햄이 채웠다. 잘 나가던 부산 지역 고무신 생산업체가 상당수 문을 닫거나 생산품목을 바꾸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고무신 소요량이 크게 줄어든 데다 높은 기술을 요하는 인력도 부족해 요즘엔 부산지역의 제조업체 2곳이 국내의 전체 내수물량을 겨우겨우 맞춰가고 있다.

이들 2곳 가운데 한 업체인 부산 동국고무의 임종성 사장 은 “20여년전만 해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애용되던 고무신이 요즘은 특별한 때 특별한 곳에서 쓰는 것으로 인식될 만큼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면서 “과거같은 고무신 전성기가 다시 올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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