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전성식 국민의힘 인천 남동갑 예비후보, 당직자에서 중앙정치인에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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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전성식 국민의힘 인천 남동갑 예비후보, 당직자에서 중앙정치인에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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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식 국민의힘 인천시 남동구 예비후보 인터뷰 사진

전성식 국민의힘 인천시당 사무처장(직대)에서 중앙 정치인(국회의원)으로 변신하고자 출마했다고 말한다.

그런 그에게 정치권에 대한 생각과 인천과 남동구의 발전과 서민에 대한 생각(정책 등 소신)을 인터뷰 했다. 아래는 그와의 인터뷰 질의응답이다.

Q: 본인의 중앙정치권과 인천지역정치권을 바라보는 개인적 시각(의견)을 말한다면?

A: 서울, 인천, 경기를 수도권으로 묶어서 보지만, 인천 정치권은 지역 발전과 관련해 소외되는 면이 많았습니다. 같은 수도권 안에서도 서울, 경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선 사업에서 밀려난 측면이 많다. 가령 인천에는 서울과 가깝다는 이유로 KBS 인천 방송국이 없다. 주요 언론사의 지사도 대부분 없는 실정이다. 쓰레기매립지는 대표적으로 인천이 서울과 경기도에 그동안 일방적으로 희생당한 사례다.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에 대해서 제도권인 중앙정치인(국회의원)이 된다면 노력해서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 소신이다.

Q: 인천 지역 정치권에 대한 개인적(소신)을 말한다면?

A: 더불어민주당의 송영길 전 대표와 윤관석 의원이 전당대회 때 돈 봉투를 돌린 사건으로 구속됐다. 이성만 의원, 허종식 의원도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송영길 전 대표와 이재명 대표 사이에서 벌어진 계양 지역구 거래는 한국 정치사에 치욕으로 남을 기괴한 일이다. 이 대표는 불체포특권을 방탄 삼아 사법리스크의 위기를 넘기고 있으나, 이로 인해 한국 정치는 너무 혼탁하고 비속해졌다. 저는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뜻을 수용해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서를 당에 제출했다. 총선 때 이런 수준 낮은 정치인들을 퇴출시키지 않는다면, 우리 정치의 부패와 비속함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Q: 인천 또는 남동구의 서민을 위한 정책을 꼽는다면?

A: 인천에는 경제자유구역 송도와 청라, 영종 등과 검단신도시의 대규모 택지 개발에 따른 인구 유입 팽창하고 성장하는 곳이 있다. 하지만 남동, 부평, 주안 공단의 노쇠화와 공동화, 구도심의 전반적인 낙후와 침체도 진행 중이며, 이런 불균형으로 인해 인천시민의 전반적인 삶의 질은 향상되지 못하고 있다.

남동산단을 활성화하는 게 급한 일이고, 일자리와 복지 분야에서 주민이 변화를 체감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다.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대응한 복지도 세밀하게 살펴 챙기도록 하겠다. 노인 정책 예산을 늘려 어르신들의 여가시설과 일자리를 확대하고,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현재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할 수 없는 저출산 문제 해법을 재검토해 불필요한 예산을 줄이고, 안심 육아나 교육비 절감 등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

특히, 20여 가구가 모여 사는 구월동의 마지막 판자촌인 아랫말처럼 우리 주변에는 소외된 이웃이 많이 존재한다. 그들의 주거 안전과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살피는 정책을 만들고 실현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본다.

Q: 인하대학을 나와 정치조직에서 일하기전 아픔이 있어 서민에 대한 정책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는데 사회생활 경험과 서민에 대한 생각을 말한다면?

A: 저는 인하대학시절 학생회장을 역임했고 운동권으로 활동했다. 그런 후 군대에 입대하려 했으나 코에 만곡증상으로 인해 해병대에서 단기사병(2사단 복지근무지원단)으로 근무했다.

이후 인하대학교대학원에서 규제행정을 전공했으며 수료 2년 후인 98년에 학과 조교를 시작했다. 이즈음, 대학원 후반에 결혼을 했으나 당시는 공부도 해야 하고 돈도 벌어야하는 처지여서 본교에서 조교를 하게 됐다.

왼쪽부터 전성식 예비후보 박종효 남동구청장

당시 인하대 조교는 교직원으로 되어 있어 처우나 급여가 좋았지만, 대부분 여성이 많고 학생들을 상대하다보니 답답하게 느껴져 2년 후 2000학번 입학업무를 마지막으로 사직했다. 이후부터 고단한 삶이 도래했고 인생 공부를 하게 됐다.

사회생활의 첫 경험으로 대학재직 당시 후배들과 부평구 십정동에 조그마한 IT회사(‘이라넷’)를 차렸는데 당시 대학원은 아직 수료 상태로 재학 중이고, 전공은 복지로 변경했었다.

사업은 사회경험이 없어 영업을 몰라 1년 만에 폐업하고 다른 회사와 합병해 창업지원센터(인천테크노파크)에 들어가게 됐다. 당시에 투자를 받기위해 절친한 선배를 만나 “너는 왜 사업을 하냐?”란 질문에 “돈을 벌려고 한다.”다고 말했다가 선배에게 따끔하게 혼이 났다.

그 선배의 말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기업인이 돈을 벌려는 목적도 중요하지만 사회기여(기업이익의 사회 환원)를 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며 투자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를 생각하면 부끄러워 도망치듯 빠져나와 ‘내가 철학이 없어 사업을 몰랐구나!’라는 반성을 하게 됐다.

사업실패 후 생계를 위해 보험회사에 다니기도 했고 여동생이 운영하던 폐션 제조업체(청계천)에서 여성 구두, 핸드백 등 악세서리류를 OEM 생산을 하는데 일손 부족을 충족하기 위해 미싱, 제봉, 제단, 수선 등 기술을 익혀 일했었다.

당시 생산 공장은 대부분 가정주택 지하(성남, 잠실 등)에 있는 영세 업체로 낮에는 정상제품을 생산하고 밤에는 이미테이션 등 불법제품을 만드는 곳이 많았다. 이때 틈틈이 전문적인 소프트웨어교육을 직업학교에 다니며 공부도 했다.

동생과 사업을 하는 중에 2번의 부도(약 2억5천)를 맞았는데, 워낙 영세하다보니 경영이나 자금운영에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됐어 함께하는 걸 포기했다.

다시 보험회사에 취업해 일하다. 영업 중 IT회사에 취업해 영업직을 맡았는데 첫해 3억 다음해 6억의 매출을 달성했으나 대표가 수익의 대부분을 채무를 변제하는데 사용한 끝에 직원들 급여가 밀리는 등 문제가 있어 이에 항의하다 결국 사직했다.

이후, 프리랜서 기술영업(밴더사 제품을 영업하고 매출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받음)과 보험영업을 병행하다, 2009년 한나라당에 입사하게 됐다. 그래서 정치인을 보조하기 위해 지원하고 관리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정치에 대한 이해도가 생겨 아직은 부족하나 당과 주권자인 인천남동구에 선택을 기대하고 있다.

질문에 대해 굳이 지난 아픔을 길게 말하는 것은 어려운 서민의 고단한 삶을 몸소 겪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그래서 서민정책에 대해 관심이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다는 것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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