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흰닭이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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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흰닭이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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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두 딸에게 보내는 편지>계림

 
   
  ^^^▲ 멀리서 바라본 계림
ⓒ 이종찬^^^
 
 

"계림(鷄林)을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닭숲', 즉 '닭이 울었던 숲'이란 그런 뜻이네요?"
"그렇니더. 김알지가 흰닭이 우는 숲속의 금궤짝 안에 들어있었다고 했으니, 계림은 경주 김씨 시조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니더."
"아기가 금궤짝 안에 들어있었다고 성을 김(金)으로 했군요."

푸름아 그리고 빛나야!

아빠는 지금 계림으로 걸어가고 있어. 근데 또 신 선생이 투덜거리기 시작했어. 대릉원 근처에 있는 가게에 가서 시원한 막걸리를 혼자서 두 병이나 드시고도 말이야. 왜 그러느냐고? 아빠가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볼려고 한다나, 어쨌다나. 하여간 신 선생은 아는 것도 많지만 잔소리도 참 많아.

계림으로 가는 길목 주변에는 언뜻 보면 골프장으로 착각할 정도로 잡풀 하나 없이 잘 자란 잔디밭이 초원처럼 펼쳐져 있어. 그 파아란 잔디밭에는 마치 잔디밭을 지키는 파수꾼이라도 되는 양 야산만한 크기의 능들이 여기 저기 솟아나 있고. 근데 안달박사(척척박사) 신 선생도 저 능들이 누구의 능인지 잘 모르겠대.

"경주 시내에 있는 능들이 어디 한두 개라야 말이지."
"맨 처음 능을 만들었을 때 비석 같은 것을 세웠을 것 아닙니까. 능이 저렇게 큰 걸 보면 분명 왕이나 왕비의 무덤이었을 텐데."
"그기 다 왜놈들 짓 아인교. 왜놈들이 저 능들을 모두 도굴한 뒤에 흔적을 없앨라꼬 비석을 모두 빼내 어디론가에 버렸다고 하니더."
"하여튼 쪽바리들은 못 말린다니깐."

 

 
   
  ^^^▲ 계림 주변엔 주인 잃은 고분들만 남아
ⓒ 이종찬^^^
 
 

푸름아 그리고 빛나야!

사적 제19호로 지정된 계림은 경주 교동에 있는 경주 김씨 시조 김알지의 발상지야. 김알지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 대충은 알아도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다고? 그래. 그러면 지금부터 아빠가 너희들을 위한 전래동화를 한 편 써야겠구나. 재미가 있는지 찬찬히 한번 읽어보렴.

서기 65년, 탈해왕이 왕위에 오른 지 9년째가 되는 해였어. 그때 탈해왕이 살았던 금성의 서쪽에는 태양이 제일 먼저 비춘다는 신비한 숲이 있었지. 사람들은 그 숲을 성스러운 숲이라 하여 시림(始林)이라고 불렀어.

"꼬꼬 꼭꼬~ 꼬꼬 꼭꼬~"

탈해왕이 마악 잠자리에 들 때였어. 그때 갑자기 시림 숲속에서 닭이 우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어. 새벽이 아니라 한밤중이었는데도 말이야. 탈해왕도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 헛소리를 들은 줄 알고. 그런데 계속해서 닭울음 소리가 들리는 거야. 그래서 탈해왕은 그 다음날 이른 새벽에 신하를 불렀어.

"어젯밤 시림에서 닭이 우는 소리가 짐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는 속히 달려가서 시림 숲에 무엇이 있는지 잘 살펴보고 오너라."
"분부 받자와 즉시 거행하겠나이다."

탈해왕의 명령을 받은 신하는 단숨에 시림으로 달려갔어. 그리고 시림 숲속을 이 잡듯이 샅샅히 뒤졌지. 그런데 신하가 아무리 숲속을 샅샅히 뒤져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거야. 신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렇게 중얼거렸어. 이상하다, 어젯밤에 왕께서 헛소리를 들으셨나?

 

 
   
  ^^^▲ 고목들이 울창한 계림
ⓒ 이종찬^^^
 
 

그때 어느 나무 아래서 노오란 금빛이 환하게 비치더니, 갑자기 닭울음 소리가 들리는 거야. 어, 저게 무어지? 이상하게 여긴 신하는 이내 그 나무로 다가가 금빛이 비치는 나뭇가지를 올려다 봤어. 그 나뭇가지 위에는 조그만 금궤짝이 하나 있었어. 흰 닭은 그 금궤짝 아래에서 날개를 퍼득이며 울고 있었고.

이 모습을 본 신하는 죽을 힘을 다해 금성으로 마구 내달렸어. 그리고 숨을 헐떡이며 탈해왕에게 자신이 본 그대로 아뢰었어. 그러자 탈해왕은 친히 시림으로 행차했어. 그리고 신하들에게 그 금궤짝을 열어보라고 명령했어. 신하가 그 금궤짝을 내려 조심스레 열자 그 속에는 아주 총명하게 생긴 아기가 방글방글 웃고 있었어.

금궤짝 속의 아기를 본 탈해왕은 크게 기뻐했어. 그리고 그 아기를 대궐로 데리고 가서 왕자로 삼아 귀하게 키웠어. 왕자는 자라면서 점점 더 총명하고 지혜로워지기 시작했지. 그래서 탈해왕은 왕자의 이름을 알지(閼智)라고 지었어. 금궤짝에서 나왔다고 해서 성은 김(金)씨로 짓고.

그때부터 탈해왕은 시림을 계림(鷄林)으로 고쳐 부르게 했대. 그리고 나라 이름도 계림국이라고 고쳤대. 그 뒤 탈해왕이 돌아가시자, 김알지는 3대 유리왕의 아들인 '파사'에게 왕위를 양보했대. 그때 김알지는 가만히 입을 닫고 있었으면 왕위에 오를 수가 있었는데도 말이야.

 

 
   
  ^^^▲ 가슴이 환하게 패인 고목
ⓒ 이종찬^^^
 
 

재미 있니? 이게 계림에 서려 있는 이야기의 모두야. 지금 계림에는 느티나무와 물푸레나무, 싸리나무 같은 고목들이 100여 그루쯤 있어. 나무마다 이름표 같은 고유번호를 달고 하늘을 빼곡히 가린 채 말이야. 어떤 나무는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밑둥이 아예 반쯤 썩어가고 있는 것들도 있어.

"그렇다면 김알지의 후손들이 언제부터 왕이 되었는가요?"
"김알지의 7대손이자 신라의 13대왕인 '미추'가 김씨로서는 처음으로 왕이 되었니더. 그리고 17대 내물왕 때부터는 신라가 망할 때까지 김씨가 계속 왕위를 이어가니더."

푸름아 그리고 빛나야!

사실, 계림 안에는 오래된 고목 외에는 크게 볼 것은 없어.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가 이곳에서 발견되었다는 신비스러움을 빼고는. 그리고 숲속 한가운데에는 비를 세워 놓은 조그만 기왓집(비각)이 한 채 있어. 그 속에 비석도 하나 서있고. 이 비각과 비석은 1803년 조선 순조 3년에 세운 거래.

아빠가 비석에 씌어진 글씨를 자세히 보려고 다가서니까 화살촉 모양의 문이 가로막았어. 아마도 그 비석에는 김알지와 관련된 전설을 새겨놓았겠지? 그리고 내물왕릉으로 가는 길 왼 편에도 시비 같은 것이 하나 세워져 있어. 이 비에는 '찬기파랑가'라는 신라 향가가 새겨져 있어.

'찬기파랑가'는 우리말로 '기파랑노래'라고 한대, 기파랑 노래가 뭐냐고? 기파랑이란 사람의 죽음을 서러워하는 그런 노래야. 기파랑은 또 누구냐고? 기파랑은 신라시대 뛰어난 화랑이었대. 학자들은 기파랑이 김기(金耆)라는 신라시대의 실존인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그럼 이 노래를 소리 내어 한번 읽어볼까.

 

 
   
  ^^^▲ 계림비각
ⓒ 이종찬^^^
 
 

울어지침에
나타난 달이
흰구름 좇아 떠가는 어디쯤
모래 가른 나루터에
기랑의 모습같은 숲이여
수모냇가 조약돌에
낭이 지니시던
마음 한끝이라도 따르렵니다.
아아, 잣나무 가지 높아
서리 모르실 화랑이시여!

이 노래는 동국대 국문과 교수였던 이임수란 분이 풀어쓴 거야. 아빠가 시인이니까 이 노래를 시처럼 읊어볼게. 그리고 천천히 내물왕릉 쪽으로 발길을 옮길게.

울다 지쳐 하늘을 바라보니
둥근 달이 흰구름을 좇아 어디론가 떠가는구나
은빛 모래 펼쳐진 나루터에
님의 그림자로 서 있는 숲이여
수모냇가 조약돌을 만지작거리며
님께서 지니시던
마음 한자락이라도 따르오리다
아아, 잣나무 가지처럼 높고 높은 님이시여
서리조차 님을 비껴가시는구료

 

 
   
  ^^^▲ 신라향가가 새겨진 노래비
ⓒ 경상북도^^^
 
 

경주(慶州)란 이름의 유래와 경주 김씨
- 경주 김씨, 587년 동안 38명의 왕 배출

경주는 경북 남동부에 위치하고 있는 신라 천년 고도(古都)이다. 신라는 기원전 57년에 6촌(村)이 연합하여 형성한 고대 국가였다. 신라의 국호는 처음에는 서라벌(徐羅伐) 또는 사로(斯盧), 사라(斯羅)라 불렀으며, 수도를 금성(金城)이라 하여 나라 이름처럼 불렀다.

서기 65년 시림(始林), 그러니까 지금의 계림에서 김씨의 시조 김알지(金謁智)가 탄생하여 국호를 계림(鷄林)으로 고쳤다가 307년에 신라로 바꾸었다. 경주라는 이름은 935년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에게 나라를 내준 뒤, 처음으로 불리워지기 시작했다.

987년에는 경주를 동경(東京)으로 바꾸었다가 1008년에는 별칭으로 낙랑군이라고 불렀다. 또한 1030년에 삼경(三京) 제도가 실시되자 다시 동경(東京)으로 불렀으며, 고려 충렬왕 때 계림부로 부르는 등 이름의 변화가 많았다. 그 뒤1413년에 다시 경주부라고 불렀다.

경주 김씨는 김알지의 7세손 '미추'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시작으로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까지 모두 587년 동안 38명의 왕을 배출했다. 경주 김씨는 알지계통의 김씨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혈족으로 경순왕의 셋째 아들인 명종과 넷째 아들 은열을 1세조로 모시고 있다.

이후 확실하지는 않으나 경순왕의 후예로 전하는 장유(將有 : 판도판서공파), 인관(仁琯 : 태사공파), 순웅(順雄 : 대장군공파)을 1세조로 하는 계통 등 크게 5파로 갈라졌다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10여개의 지파로 나뉘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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