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군이 인민군 포로가 되었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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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이 인민군 포로가 되었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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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호국보훈의 달, 인천자유공원 맥아더동상 앞에서

대한민국 보훈가족과 무명용사 무공수훈자들을 생각한다.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6,25발발 58주년 장마 비 속에 시가행진하던 날이 엊그제 같다.

이제는 80대의노인들이 된 그날의 용사들 노후를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이름 없이 죽어간 무명용사와 무공수훈유공자들 물론호국보훈차원의 보훈행정이 펼쳐지고 있다. 용사들의 얘기와 국가 사회적 보훈문제는 한량없을 것이다.

국민생활의 수준정도에 따라 보훈의수준성격도 달라져야 하겠기 때문이다.

“훈장 받은 우리들은 십삼만 원이라는 돈이라도 받지만 이름 없는 역전의 용사들은 쓸쓸하게 6월을 맞고 있을 것"이라는 대한무공수훈자회 인천지회 남구지부관계자의 말을 인용할 때 짐작이 간다. 그러나 고령의 수훈자회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고 했다.

국가를 위해 목숨 걸었던 이들이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지금은 한 달에 한번 충혼탑 참배마치고 주변 환경정비와 지역에서 필요한 봉사를 하고 있다. 단체를 조직하여 공동체의식과 사회참여로 노후를 보람 있게 보내고 있는 참전용사들이다.

6월을 맞아 더 많은 사람들이 자유공원을 찾을 것이다. 인천자유공원맥아더 동상 앞에서 6,25를 기억하다가 인민군에 포로가 됐던 인민군포로 기억이 난다.

인민군이 인민군에게 포로 되었던 사연

국가역사의 증인들... 커다란 소용돌이속의 역사 속에 묻히고 마는 사실들이 수없이 많다고 생각한다.

맥아더동상앞에서 목숨을 지켜준 은인이라며 “동상을 철거하다니?”하며 6,25때 인민군에 끌려가던 중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풀려났다던 영감님 기억이 난다.

동상 옆 동쪽계단에 쭈그리고 앉아있던 부평에서 왔다는 영감님 모습은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많은 사연들의 공통점이 있겠지만 이 영감님은 남 다르다. 인민군으로 남하했다가 낙오가 되어 국방군에게 포로가 됐다.

맛있는 건빵과 군복을 입혀주며 따듯하게 대해주던 국방군에게 귀순의사를 밝혔고 다시 전투에 투입되어 인민군에게 붙잡혔다.

이북으로 끌려가던 중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성공으로 목숨을 건졌다.

남과 북으로 왔다 갔다 하다가 생존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한참 동상철거운운 하던 때 동상 옆에서 만난 영감님의 얘기가 갑자기 생각난다.

“나처럼 살아난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 누가 뭐래도 맥아더는 영웅이야!” 겨우 걸을 정도의 힘든 발걸음을 옮겨 동상 옆에 쭈그리고 앉아 지난 인생을 반추하던 영감님의 모습을 기억하며 자유공원에서 맥아더동상을 바라본다.

6월 보훈의 달에 기억나는 한 순간 기억이다. 동상 앞 이름 모를 꽃다발 꽃송이가 초여름햇빛에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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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008-06-13 17:56:40
훈장달고 으시대는 공훈자들보소? 지금껏 참전수훈하고도 별볼일없는 참전용사로만 남아있는분들이 부지기수요, 그당시 참혹한전장에서주는 표장이없다하여(분실)수훈을 무시당하고만 있다오,국가에선 당연히 이들의 공훈을 되돌려줘야하거늘 물증부재핑게로 되돌리다니 참으로억울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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