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탐방] 1966년 대한민국 역사에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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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 1966년 대한민국 역사에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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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비 서거 (1)

 
   
  ▲ 작고하기 수년 전의 윤비  
 

1966년 2월 3일 조선 왕조의 마지막 임금 순종비 윤씨가 73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어지럽구나...."

말 한마디를 남기고 심장마비로 쓰러진 윤비는 1893년 조선 왕조의 명문인 윤택영의 맏딸로 태어나 13세의 어린 나이로 동궁인 순종의 계비로 입궁 하던 그날부터 윤비는 난세 속에서 한국 여인상의 산 표본이 된 것이다.

"궁녀 수백의 들러리에 금잠이 무겁던 그 날" 이렇게 늘 대례가 있던 지난날을 회상하던 윤비는 이날 오후 목욕재계하고 창덕궁 낙선재에서 고요히 눈을 감으니 이로써 조선 왕조의 사직을 마지막까지 지키던 유일한 왕족의 생존자가 사라진 것이다.

윤택영은 구한말 해풍부원군을 지낸 뼈대 있는 집안으로 맏딸 윤비를 애지중지 키워왔다.

어릴 때부터 윤비는 머리가 총명했고 재색을 겸비한 앳된 소녀로, 주위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녀가 방년 13세 되던 고종 10년(병오) 1906년 12월, 동궁이던 순종의 비인 민비가 운명하자 궁중에서는 계비를 맞아들이기 위해 동궁비를 간택하기에 여념이 없던 중 윤택영의 딸이 결정되어 궁중으로 입궁하게 된 것이다.

"모든 궁중법도가 사가와 다르니 몸가짐과 언행에 조심하여라" "비록 몸은 궁중으로 들어가오나 저를 낳아 길러 주신 부모님의 은공을 어찌 저버리겠사오며 궁중법도가 아무리 지엄하나 인지상도와 다를 바 있겠사옵니까?" 실로 13세 소녀로서 경탄할 만한 모녀간의 대화였다.

윤비가 입궁할 때 동궁의 나이는 23세로 윤비보다 10살이나 많았다.

입궁할 때 윤비와 같은 나이로 함께 궁중으로 들어와 평생을 윤비 곁에서 지내온 김상궁은 윤비의 평소의 생활을 이렇게 말했다.

"그분이 13세에 함께 입궁하여 73세로 운명할 때까지 궁 밖을 나와보기는 단 두 번 뿐이었읍니다. 6.25때 홀로 낙선재를 빠져나와 운현궁까지 걸어가신 일과 친할머니 환갑 때 2시간 동안 외출한 것 뿐입니다.

평소 텔레비전을 무척 좋아하셨지만 현대 젊은이들이 광란하는 모습이 비칠 때마다 "요즘 젊은이들은 모두 저러니 ... 이해를 해줘야지" 하시며 두 눈을 감으시고 회상에 잠기셨습니다. "윤비는 천성이 어질고 온후하여 모두 주위에서 추앙을 받았으며 궁궐에서는 특히 상왕인 고종황제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다.

윤비가 고종의 총애를 받게 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비록 13세의 어린 나이에 동궁비에 올랐으나 윤비는 정치문제에는 초연한 듯 하면서도 항상 부왕인 순종을 격려하여 난세를 극복하는 데에 숨은 공로가 컸으며, 임기웅변의 기지를 보였기 때문이다.

윤비의 일생은 파란만장의 생애였다. 입궐한 지 4년만에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는 슬픔을 맛보아야 했으니 실로 통탄할 일이었다. 비록 사가의 여인으로 지아비만을 모시면 그만이었으나 윤비는 이 나라의 국모가 되어 모든 국민의 추앙을 받아야 할 위치가 아니었던가,

나라를 잃은 슬픔이 어찌 윤비 혼자만의 슬픔이었을까마는 부왕인 순종이 조선 왕조의 마지막 임금이 되었다는 슬픔에 윤비의 나이어린 가슴은 미어지는 듯했으리라, 윤비가 17세 되던 어느날이었다.

부왕인 순종이 참석한 창덕궁 어전회의에서 한일합방 문제로 중신들의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일본인 궁내부 차관이 참석해 있었고 친일을 주장하는 대신들이 순종에게 한일합방서에 서명하도록 강요하여 국가의 존망이 위급할 순간이었다. 나이 어린 윤비는 병풍 뒤에서 어전 회의를 엿듣고 있다가 별안간 달려나왔다.

어전회의에 참석한 대신들이 잠시 당황하는 틈을 타 옥새를 비단 치마폭에 감싸쥐고 "이 같은 중대한 문제는 덕수궁에 계신 상지(당시 고종)에게 여쭙고 결정해야 한다"고 또렷또렷이 말하는 것이었다.

옥새를 거머쥔 채 윤비는 위풍도 당당히 걸어나가는 것이었다. 일국의 국모인 황후의 치마폭에 어느 누가 감히 손을 댈수 있을 것인가!

일본인들과 친일파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이날 어전회의는 산회 되었고 한일합방을 노리던 일본의 마수는 잠시나마 거두어졌다.

뒤에 백부인 윤덕영의 손에 의해 다시 옥새는 반납되었지만 당시 난국의 위기를 일시적이나마 모면하게 한 윤비의 비상한 기지에 누구나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윤비는 순종을 보필하는 데 있어 그의 총명한 머리로 재치있게 위기를 극복하기도 하고 순종을 격려하여 정책을 강력하게 밀고 나가도록 했으나 윤비가 33세 되던 해 부왕 순종이 승하하니 다시 한번 아픈 슬픔을 삼켜야 했다.

<이어 2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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