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경우에는 연주자들이 선배를 알아보고 무대위로 청하기도 하고, 선배를 잘 모르는 곳에서는 선배가 주인에게 노래를 불러도 되냐고 묻기도 했다. 손님이 무대에 올라오는 것을 고까워하던 주인도, 선배가 한두 소절 노래를 시작하면 금세 표정이 달라지곤 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는 재미로, 당시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술 고문을 당하면서까지 선배를 따라 여기저기 끌려 다녔다.
선배는 노래솜씨도 좋았지만 다양한 레파토리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 단연 내가 좋아하던 곡은 ‘비가오도다’였다. 그 짧은 노랫말이 선배의 입을 통해 흘러나올 때, 나는 어찌나 좋았던지 멍하니 듣고 있다가 ‘앵콜’을 불러대는 박수부대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좋은 노래, 좋은 만남은 그렇게 사람을 흥분하게 만드는가 보다. 지칠 줄 모르는 선배의 술 고문을 지겨워하면서도 그의 노래만큼은 참 좋아했던 것 같다.
나는 노래엔 소질이 없다. 그렇지만 워낙 여러 번 선배의 노래를 듣다보니, 선배가 자주 부르는 노래를 거의 외우게 되었다. 그래서 어쩌다 선배와 노래방이라도 가게 되어 선배가 나에게 노래를 부르도록 청하기라도 하면, 내가 부르는 노래는 거의가 선배가 즐겨 부르는 곡이다.
선배는 그래도 싫은 기색하나 하지 않는다. 오히려 “김 선생-, 그 노래는 이 부분을 강조해야해, 여기서 숨을 끊었다가 감정을 치켜 올리는 게 좋아!” 하면서 기꺼이 노래강사 역을 자청한다. 자신의 레파토리를 하나씩 나에게 전수해 주는 게 그렇게 즐거우신가 보다. 덕분에 지금 내가 마지못해 노래를 부르게 될 때, 택하는 곳들은 거의가 그 선배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보면 된다.
선배는 노래만 좋아한 게 아니다. 즐겨 부르던 ‘비가 오도다.’ 란 노래제목처럼 선배는 비가 내리는 걸 무척 좋아했다. 비만 오면 전화를 해서 “김 선생 비도 오는데....” 라며 말꼬리를 흘렸다. 그러다 보니 나도 싫은 척 하면서도 비만 오면, ‘선배가 전화할 때가 됐는데...’ 라며, 은근히 선배의 전화가 기다려졌다.
그렇듯 자주 만나는 만남이 노래만으로 빼곡히 채워질 리는 없다. 선배는 나와함께 자신의 가정 이야기에서부터, 자신의 취미인 ‘수석’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의견을 함께 나누었다. 때론 귀찮기도 했지만 선배의 그 인간적인 매력 때문인지, 선배의 질문에 외람되게 이런저런 충고를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다보면 자정을 넘는 경우가 많았다.
나도 택시 탈 돈은 있다고 거절해도, 선배는 꼭 차창 너머로 택시비를 던져 넣어주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그런 선배의 곁을 떠나면서, 이제는 편히 쉬겠구나 싶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 섭섭하기도 했다. 나는 그 선배를 형이나, 작은 아버지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나는 그 선배 곁을 멀리 떠나 이사를 왔다. 한때는 피곤하기도 했던 그 선배가 비가 오기만 하면 자꾸 생각이 난다. 비가 오면 선배가 즐겨 부르던 그 노래 ‘비가오도다’가 나도 모르게 흥얼거려진다. 사람은 그렇게 사람을 좋아하게 되나보다. 한때는 귀찮아서 벗어나고 싶어 하기도 했었는데, 그러면서 길들여지고, 정이 들고, 서로 마음이 통하나 보다. 그리움이란 것은 그런 식으로 생겨나는 것일까.
비가 오는 날.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간다. 그러나 무엇보다 마음속에서 강하게 꿈틀거리는 것은 바로 지난날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한사람이 나를 좋아했던 만큼, 진정으로 그를 좋아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스럽다. 언젠가 다시 그 선배를 만나면, 그 선배가 나를 만나면 항상 그랬듯이 선배의 손을 꽉 부여잡고 싶다. 그리고 말하고 싶다. “선배님...”
선배의 곁을 떠나고 몇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나도 세월을 겪고 인생을 겪으면서 이젠 그가 그토록 나를 좋아하고 술과 음악을 좋아하던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왜 사람은 조금 더 일찍 철이 들지 못하는 것일까?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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