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한 20 사단 "
"김종철 101보"
"신정하 103 보"
"20 사단으로 갈 사람들은 앞으로"
나를 포함하여 120 여명쯤이 앞으로 나왔다.
사단이라면 으레 껏 1,3,8,9,사단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20 사단이라니, 의아심이 발동했다. 옆에 있던 총검술 중사 교관에게 슬쩍 물어봤다.
"전방입니까, 후방입니까 ?" 라고
"임마, 후방이야"
휴 ~ 살았다 라는 생각을 할 찰나,
"니네 들 고생 좀 할거야 " 라며 덧붙이는 그 중사 교관님,
후방인데, 고생 좀 하면 어때, 야호 ! 머리 속에 빠르게 계산되던 그 순간들,
반대로 101보, 103보로 가는 동료들은 사색이 되어 얼굴색이 새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따불빽을 둘러메고 야간 열차에 올라탔다. 밤새를 달리고, 달린 뒤 아침에 용문 역이라는 곳에 도착을 하게 되었다. 호루라기 소리, 헌병완장, 조교완장을 찬 내무반장들이 어지럽게 왔다 갔다. 아 ~ 이제 진짜 군대 생활하는구나 !
눈에 힘을 잔뜩 준 내무반장 인솔 하에 따불백을 둘러메고 구보가 시작되었다. 10여분을 못가서 대열이 흐트러지고 낙오자가 생기자, 그 내무반장은 우리들을 보리밭에다 집어넣고, 좌로 굴러, 우로 굴러를 외쳐됐다.
3월의 보리 밭. 윤용하의 가곡 중에 보리밭이 나의 애창곡이었지만, 그때만은 절대로 그게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보리밭에는 인분들이 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냄새 한번 고약했지만, 그 누구도 피할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새로 지급받아 입은 동정복에다, 야전 잠바, A 1급 워카, 이 모두가 Brand new 인데,내 맘을 몰라주는 저놈의 하사를 그냥....
그와중에도 휴지로 사용된 신문지,교과서 종이등,똥 묻은 종이들을 피하느라 요리조리 잔머리를 굴려봤지만, 모든게 허사였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곳은 광탄리에 있는 신병훈련소, 이리하여 자대훈련 4주가 또 시작되었다. 자대 훈련 4주를 거친뒤 옥천에있는 61연대 X 대대에 배치되었다. 군대 생활이 다 이런건지 우린 눈만 뜨면 사격장에 나가 산다. 무슨 놈의 측정이 그리도 많은지, 뻑하면 측정이요, 뻑하면 검열이요, ATT, BCT 는 또 뭣이고,RCT,CPX는 또 무언가?
도하훈련,동계훈련, 벙커작업, 등등 소변을 보고나서, 어디 고추가 잘 자라고나 있는지 ,한번 내려다 볼 시간 조차없이 바쁘다.
다른 부대 병사들은 때가 되면 자동적으로 정기 휴가를 갔지만, 우리들은 휴가측정이라는 요상한 측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격, 야간사격, 구보, 수류탄 던지기, 총검술, 태권도 등 측정에 통과한 사람만 휴가를 갔다. 아니, 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연대장이 휴가비를 빼돌려 고리 이자놀이를 한다는 둥, PX 매상을 올리 고 사병들을 괴롭힌다는 등 원성이 자자했다. 씨바 ! 지금도 욕이 다 나온다.
봄이면 공수훈련, 가을이면 유격훈련, 차라리 해병대나 공수부대가 더 편했으리라. 박대통령이 공수교육장에 다 나타나고.....미8군 Forest 군단장도 시찰을 나와 돌아다녔다. 정말 괴로 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 와중에,79년 봄에 있은 한미 팀스피리트 훈련은 20 사단의 진면목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3일 낮 밤을 눈도 붙이지 못한 체 걸어서 춘천 소양강 상류까지 진출했다가, 다시 행군으로 양평의 부대까지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때 마지막으로 진출했던 소양강 상류의 마을 이름이 참 독특했다. 삭다리 [삽다리] 마을 일주일에 한두 번 꼴로 있던 완전군장 10Km 구보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나중에는 25Km 산악구보 까지.....결국에는 열 한명의 희생자를 내고서야 중지되었다.
8.15일 광복절, 중복 염천에 실시된 25Km의 산악구보는 연대장이란 자가 제 정신이 아님을 입증하고도 남았다. 사고의 책임으로 B 연대장이 어디론가 전출되었다.
사실, 이런 연대장은 즉각 해임과 동시에, 제대, 구속 조치가 됐어야 했다. 그런데 제대를 하고 나서, 81년에 있은 국군의 날 행사를 TV로 지켜보던 나에게 [20 사단은 국군의 날의 단골 출연객 ] 뜻밖의 이 인간의 이름을 다시 듣게 된다.
중계방송 아나운서 왈 "동해경비사령부의 B대령을 선두로 하여" 어쩌구! 저쩌구! 허걱 ! B 대령이라고 ? 쌍시옷 욕이 터져 나왔다. 시발 놈 ! 연대장이 바뀌었다.
육사 17기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미 조지 타운대 석사출신 K 대령, 3군에서 엘리트 중에 엘리트라나 뭐라나....당연히 영어도 끝내주게 잘했다. 나중에 김영삼 정권 때 육참총장, 국방부장관을 엮임 했던 그분, 인간미가 좀 없어 보이기는 했지만, 사병들을 생각하고, 위하는 마음은 정말로 대단했다.
얘기가 한참 빗나갔다. 박대통령이 서거했다. 밤 9 시 점호를 시작하려고 준비하는 순간에 [20 시 40분 정도] 비상이 걸렸다. 에이 구, 이놈의 부대는 맨 날 이 지랄이야 ! 순간 짜증이 났다. 추운 겨울 밤 초저녁에 비상이라니..... 나 참, 안 당해본 사람들은 모른다. 사단 60 트럭이 속속들이 도착하였다. 탑승을 마치자 트럭들은 달렸다.
어디, 전쟁이라도 났나? 헌데, 태능 육사 교정이 눈앞에 들어왔다. 아침이 밝아오자 그때서야 박대통령이 서거했다는 게 알려졌다. 10.26,과 12.12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된 2월, 어느 날,
박대통령 시해사범들이 갇혀 있던 남한산성 외곽 경비를 끝으로
우리들은 자대로 원대 복귀했다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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