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남참전 용사들 | ||
1964년 세계의 불씨를 안고 동-서 양대 진영의 냉전이 불꽃을 튀기는 열전장으로 변한 월남, 지난날 쓰라린 한국 6.25동란과 일란성 쌍둥이 같다는 월남의 내전은 세계의 이목을 폭양이 작렬하는 동남아의 한 모퉁이 정글 속에 집중 시킨체 점점 격렬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전화에 휩싸인 월남에서 베트공과 고전을 거듭하는 정부군을 도와 군사 고문단이라는 이름으로 실질적인 월남 내전의 작전을 도맡고 있는 미국은 세계의 어떠한 여론이나 비난에도 월남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세계 정세와 여론 때문에 전투 부대의 대규모 파견만은 할 수없어 미국의 고민은 심각했고 거기에 따르는 타격과 손실이 막대한 것이었다. 그레서 미국은 혼자 담당하기에 벅찬 월남전에 미국의 원조를 받고 있는 우방국들의 도움을 요청하여 비등하는 세계 여론을 미국의 월남전 개입의 북가피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이끌면서 한국에도 파병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전화로 휩싸인 월남에 비전투요원인 1개 야전 이동의과 병원을 파견한 바 있는 한국에 대하여 월남은 다시 공병과 수송병과를 중심으로 자체 방위를 위한 경비병을 포함한 정규군 1천여명의 파견을 요청해 왔고, 미국은 월남 파병 한국군의 봉급과 보급의 담당과 함께 월남전에 소요되는 군수품 중에서 국내생산 가능품목에 대한 한국에서의 구매 등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며 적극적인 월남전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따라 한국은 6.25당시 수많은 인명과 물자의 희생을 무릅쓰고 한국을 공산 침략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자유 우방국의 참전과 지원을 상기 하더라도 미국의 월남전 지원 요구를 의리상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입장에 있을 뿐만 아니라 비대한 한국군의 유지와 장비 현대화 및 보강을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고 있었던 한국의 처지로서도 미국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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