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민족 청년단 출신인 백동기, 김정례, 김창남, 황병호 등은 1961년 8월 15일경 서울 성북구 수유동 산 22번지 소재 황병호의 집에 모여 5.16 군사혁명 후 민정 이양시 정권 인수 형태에 대한 논의를 하던 끝에 족청계의 정권 장악을 위하여 군 1개 사단의 동원 또는 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을 암살하고 군부내의 족청계 출신 장교들의 호응을 받아 족청의 지도자 이범석을 추대하여 그들이 집권할 것을 모의하였다.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기의 모든 권력을 장악, 그 전성을 자랑하던 족청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제거 명령으로 쇠퇴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재기의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그들은 군사 혁명에 의한 과도기를 틈타 일부에서는 암살 내지 무력 쿠데타로 군사 혁명의 주동 세력의 제거와 현 혁명정부를 전복하고 그들의 집권을 획책하기 시작한 것이다.
8월 중순경 서울 성북구 돈암동 김정례 집에서 백동기와 함께 쿠데타를 위한 모의를 계속, 경기도 양주군 동두천에 주둔하고 있는 제8사단을 동원할 것을 합의하고 족청계 출신인 제8사단장 최주종 소장과 참모장 김용휴 대령 등을 포섭하여 쿠데타를 위해 병력을 출동시키도록 지시했다.
한편 김창남은 동해안 지구 육군 첩보대장으로 근무하다가 예편한 김동석 예비역 대령의 포섭을 위하여 김정례로부터 자금을 받아 김동석의 집을 방문하여 의견을 타진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돌아왔으므로 제8사단 동원에 주력을 기울이기로 하였다.
8월 24일 백동기, 황병호는 제8사단 정문 노상에서 참모장 김용휴 대령을 만났으나 사단 훈련관계로 구체적인 의사 교환을 하지 못하고 27일 일요일 김대령이 서울 외출시 명동 나일구 다방에서 상면을 약속했으나 김 대령이 나오지 않아 실패한 이들은 28일 다시 제8사단으로 찾아가 동 사단 참모장 숙소에서 그의 의견을 타진하였다.
한편 김정례는 그가 경영하던 여성주보 편집장으로 있던 이운형에게 혁명 정부의 시책이 다분히 용공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이들을 제거 실각시키기 위한 반대 투쟁을 생명을 걸고 적극적으로 전개할 것을 요구, 이운형의 승낙을 받자 용공분자라고 그들이 지목한 황용주, 이종율, 유병묵 등의 성분에 대한 각종 정보를 수집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
9월 12일 다시 이운형에게 황병호, 김시홍 등과 같이 서울 주변의 1개 사단 병력을 동원하여 쿠데타를 일으키기로 하였으며 혁명 정부에 반기를 들고 데모를 할 수 있는 학생 조직을 전개하도록 지시하였다.
그리고 김정례는 이와 같은 쿠데타 계획을 진행시키기 위한 자금 조달을 위하여 서울 성동구 신당동에 있는 강인화의 집에서 부채 청산 등의 구실로 강 여인으로부터 보증수표 10매로 된 1백만환을 차용하여 자금으로 활용하면서 그들의 쿠데타 계획에 박차를 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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