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즈음'엔 나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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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즈음'엔 나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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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무렵 나에겐 아름다움만 남아있기를

쉰. ‘오십이라는 나이’는 아직은 찾아오지는 않은, 그리고 아직은 상당히 여유가 있게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또 하나의 삶의 고개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서른을 넘을 때보다 마흔을 넘길 때가 훨씬 힘들었던 것처럼, 쉰을 넘길 때 나는 또 만만치 않은 홍역을 치를 것이란 것을.

‘그땐 또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될까?’ 벌써부터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그때의 일들이 상상이 된다. 최근 나보다 대 여섯 살 많은 형님뻘 되는 분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부쩍 느끼게 되는 의문이다.

그분들이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내게 무언가 이야기를 하려다가, 슬쩍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릴 때 그분들의 얼굴에 스쳐가는 표정에서 나는 잘은 알 수 없는 무엇인가를 느낀다.

그래. 그 무렵. 쉰이란 나이가 찾아올 무렵엔, 또 다른 무언가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나는 민감하게 그런 징조들을 그분들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다. 마흔이란 나이를 이제 겨우 힘들게 넘겨온 나에게, 그것은 미리부터 준비해야 할 또 하나의 만만치 않은 고개라는 느낌이 드는 숙제이다.

‘내가 쉰이라는 나이가 될 때, 제일 마음에 걸리는 일이 무얼까? 그때는 뭐가 제일 힘이 들까?’하고 가만히 생각을 해본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같이 공유하는 느낌도 있겠지만, 살아온 삶의 여정에 따라 사뭇 다른 것도 많을 것이란 생각이 우선 든다.

‘무엇을 공통적으로 느끼게 되고, 또 나는 무엇을 가장 힘들게 느끼게 될까?’ 나는 마흔을 넘기면서 욕심을 많이 버렸었다. 그전까지는 노력만 하면 제법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이 생각했었다. 그래서 마흔을 넘을 때 그토록 아둥바둥 몸부림을 쳤던가 보다. 그리고 이제 그 욕심을 다 비우고, 이토록 한가롭게 글이나 쓰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쉰. 그때가 오면, 아마도 또 다른 많은 것들을 버려야 할 것 같다. 명예는 이미 버렸다. 그러나 아직은 지난날들에 못다 이룬 것들에 대한, 미련이나 아쉬움 같은 것들이 어딘가 마음 한 구석에 숨어있는 것 같다. 요즘 나는 그것들을 찾아서 하나씩 지우고 있다. 지금 내가 글을 쓰는 것이 바로 그것을 버리는 작업이다. 한편의 글을 쓰면서, 하나의 미련과, 하나의 아쉬움을 버리고, 하나씩 아름다웠던 추억들만을 모아가고 있다.

그래서. 마침내 쉰이란 나이가 찾아왔을 때. 아직 내 곁에 머물러 있는 모든 미련을 말끔히 벗어버리고, 아름답고 좋은 추억만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기억의 상자를 만들면, 나는 한결 편안할 수 있을 것 같다. 남아있는 상념의 편린들을 버리면서 나는 그것들을 다시 한번씩 반추해본다. 그리고 남아있는 미련이 사라지면, 흐르는 세월에 하나씩 띄워 흘려보낸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오는 날들, 아직 남은 날들을 오직 따뜻함만으로, 사람과 우주와 신에 대한 사색과, 사랑으로 채워가야 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쉰이란 고개를 한결 가벼운 걸음으로 지나갈 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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