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음악을 매만지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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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음악을 매만지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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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금을 배우며 우리 음악에 푹 빠지다

^^^▲ 학창 시절에 샀던 대금과 오죽단소. 가장 아끼는 보물 1호다
ⓒ 이성훈^^^


백여 개의 테잎 중에 약 서른 개 정도는 우리음악이다. 대금산조부터 시작하여 여러 종류의 산조, 사물놀이, 시나위가락, 살풀이 등 대부분 민속음악 중심의 앨범들이 있다. 헤비메탈을 들으면서 한번쯤은 우리음악을 배워보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언제부터 인지 갖게 되었다. 드디어 그 꿈은 휴학중이던 95년 가을이 되어서야 실천할 수가 있었다.

배웠던 악기는 대금이다. 사극에서나 한두번쯤 들어본 처량한 음색의 대금을 처음으로 직접 들을 수가 있었다. 대나무를 싹둑 잘라놓은 것에서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 인간의 심성을 닮아서 한없이 슬프고 애절함이 가득 묻어있다. 또한 양반의 건들거림을 소리로써 빗대기도 한다. 나는 이 처절함을 이기지 못하고 대금을 배우기 시작했다.

리코오더나 하모니카는 그냥 불면 소리는 난다. 그러나 대금만큼은 쉰소리 하나만 내려해도 엄청난 연습이 필요하다. 아랫입술과 윗입술, 그리고 대금의 취구와 각도가 알맞아야 하고 입안의 공기가 아닌 뱃심으로 불어야 소리가 나온다. 팔은 또 얼마나 아픈가? 1분 이상만 들고 있어도 팔이 저리고 저절로 밑으로 내려온다. 자세또한 바르지 않으면 제대로 소리나오기가 힘들다.

대금의 은은한 소리에 비하면 배운다는 고통은 생각외로 크다. 대부분 그 소리에 반해서 많이 배우려고 하지만 일년도 못되서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진짜 대금이 아닌 플라스틱 관을 잘라서 만든 연습용 대금으로 부지런히 연습을 하였다. 그러나 쉰소리만 빽빽 나는 것을 누가 반가워 할 사람이 없었다. 같이 자취하던 친구들은 그만좀 하라며 대단한 구박을 하였으며 눈치를 보며 집에서는 제대로 연습할 수가 없었다.

파이프 대금을 잡고 일주일이 넘어서 드디어 아리랑 한곡을 연주(?)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한오백년, 밀양 아리랑 등 민요를 한곡 한곡 배워나갔다. 그리고 하루빨리 대금을 사야겠다는 결심을 하며 부지런히 용돈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배운지 3개월 후 드디어 원하던 꿈을 이루게 되었다.

아르바이트 하고 용돈을 조금씩 모아서 60여만원을 주고 대금을 품에 넣은 날. 그것은 이미 보물 1호가 되어있었다. 진한 갈색을 띄고 자르르 윤기가 흐르는 그것을 하루에도 수십번씩 품에 넣었다. 가방에 담겨 벽에 걸려있는 것을 보면 그렇게 흐뭇할 수 가 없었다.

한참 배우고 있던 어느날 선생님과 일행은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다. 술이 몇 순배 돌자 선생님은 한곡 연주하였고 술집 사장님은 화답가로 가야금을 연주하였다.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그날 술이 아닌 음악과 분위기에 흠뻑 취했었다. 대금을 배운 뒤로 나는 어느새 죽림칠현이 되어있었다. 한손엔 소주를, 한손엔 대금을, 그리고 어깨에는 바둑판을 짊어지고 입산하리라는 묘한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복학후 대금동아리에 뒤늦게 가입하여 대금산조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악보 자체가 없어서 가르치는 선배들이 보여주는 자세와 가락을 하나하나 외우고 익혀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테잎을 늘어지게 듣고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방학때는 일주일 동안 전기도 전화도 없는 지리산 자락으로 들어가서 합숙도 했다.

^^^▲ 우리음악에 흠뻑 빠지게 되었던 대금 산조
ⓒ 이성훈^^^


당시 나는 우리음악에 흠뻑 빠져서 다른 것을 도대체 할 수가 없었다. 삐삐에도 대금 가락을 집어넣었고 레코드 점에 가면 우리음악 코너를 먼저 둘러보고 구입하였다. 그러나 음반시장에서 국악이 받는 설움은 혹독하다. 매장 맨 구석지에 자리잡고 있고 7, 80년대에 판매했던 앨범을 그대로 파는 경우도 많다. 우선 우리음악이 어디있느냐고 물어보는 것도 쑥쓰러울 정도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것은 국악을 듣고 있으면 칙칙하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듣다보면 너무나 좋다고 아무리 설득하여도 시큰둥한 반응이다. 최근에야 현대음악과 접목시켜서 많이 대중화 되어있지만 소수 마니아들을 제외하고는 우리음악에 대한 지식은 부족한 것이 실정이다.

일년 반의 기간동안 드디어 짧은 산조 가락 하나를 다 배웠다. 책거리를 할때 선배는 취구만 빼놓고 대금의 구멍(총 9개)을 모두 막은 다음 소주를 부어주었다. 종이컵 3분의 2가량 채워진 술을 마시는 그 순간 나는 인간문화재가 된 기분이었다.

그 후 2,3년동안 부지런히 연습을 하였고 가끔 달밤에 야외로 나가서 불어보기도 하였다. 특히 요양원에 봉사하러 가서 어르신들에게 조금이나마 즐거움을 전해주었을 때 가장 큰 보람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낭만의 시간은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면서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머리속에는 늘 사물놀이나 산조 가락이 맴돌았지만 매만져 보기는 쉽지가 않았다. 가끔씩 대금을 불어보면 호흡은 매우 거칠고 2분이상 들고 있는것이 너무 힘들었다. 예전에 한창 연습했던 소리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씩 동료들과 술 한 잔 할 때면 옛멋에 취해서 한곡조씩 연주해본다. 동료들이야 잘 몰라서 잘한다고 박수치지만 나는 어디가 틀리고 어색한지 뻔히 알고 있기 때문에 쑥스럽기도 하다.

지금도 한쪽 벽에는 대금과 단소가 걸려 있다. 전에는 몰랐지만 우리음악 역시 세계시장에 내놓아도 전혀 뒤지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아쟁의 뼈를 깎는듯한 선율과 거문고의 둔탁하면서 장중한 소리. 세계 어느 음악보다 신이 나는 풍물 등 우리 음악의 다양성과 발전가능성은 무한히 존재한다.

대금가락과 헤비메탈.. 전혀 다른 성향의 음악을 모두 접해본 지금 나는 지금 음악보다는 라디오를 더많이 듣는다. 라디오에 들려오는 여러음악을 들으며 오늘 하루도 비교적 여유롭게 생활해 나간다. 오랜만에 대금에 입을 갖다 대어 본다.

^^^▲ 여러 산조및 살풀이, 시나위 앨범
ⓒ 이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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