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순천 반란사건 진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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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순천 반란사건 진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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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바다가 된 여수 순천

^^^▲ (자료사진) 여순반란사건
ⓒ SBS^^^
피바다가 된 여수.순천

경찰은 파죽지세로 허물어지고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자가 수십명이 넘었다. 피를 본 이리때 같이 그들은 자기들의 세상이 된 듯이 날뛰었다. 순천도 어느새 그들의 천하가 되었다.

여수처럼 수라장이 된 양 도시는 폭도들의 세상이 되고 보니 대한민국 전체가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다.

야만스런 방법으로 자기들 세상이 되었으니 다음에 오는 것은 우후죽순 격으로 아무도 가리지 않고 자행하는 무차별 살육이었다.

이미 야만인이 되어버린 폭도들은 아무나 붙잡고 시비를 걸면서 반항하는 자에게는 마구 총 뿌리를 겨냥했다. 아무 집에나 방화를 하고 닥치는 대로 재산을 불태우고 긴장감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뿐만 아니라 마음에 드는 물건이나 재산은 그들 마음대로 차지할 수 있었다. 학살, 방화, 능욕 등이 그들의 유일한 일과인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발생한 이 나라 이 민족의 참변임을 어찌하랴! 그들의 눈에는 부모 형제도 없었다. 여자라면 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10대에서 50대까지의 모든 여자들이 그들의 소유물에 지나지 않았다. 항거하는 자는 생명을 보존하지 못했다. 난행을 일삼다가 쓰러진 여자는 생매장을 하고, 살려고 발버둥치는 자를 죽이면서 재미로 여겼다. 순식간에 이처럼 어마어마한 대학살 사건이 전라남도에서 일어났다.

이와 같은 사건 발생을 접한 정부는 국군으로 하여금 이들을 토벌할 것을 결의하고 광주에 머물고 있던 3개 중대를 현지에 급파시켰다. 그러나 국군이라 해도 차단된 길을 뚫고 들어가기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모든 길은 반란군의 손아귀에 있었으므로 쉽사리 여수나 순천에 발을 붙이기가 어려웠다.

국군의 도착이 늦어지자 반란군의 세상은 그만큼 연장되고 양민과 관리들의 시체, 그리고 아무 죄 없는 부녀자들은 더욱 희생의 제물이 되어야만 했다. 한편 20일 오후 1시에 광주에 집결되어 있던 국군 지휘부대에서는 참모들이 반란군의 실정을 알기 위해 비행기로 답사하여 정확한 실황을 포착하기에 이르렀다.

사태가 급박해진 것을 알고 지휘참모부에서는 대책을 강구하기에 바빴다. 이대로 가다가는 점점 번져서 대한민국의 남단 지역이 온통 반란군의 손아귀에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섰다. 진압을 도저히 게을리 할 수 없는 처지였음을 알아차렸다.

드디어 광주, 남원, 이리(익산), 군산 등지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을 징발하여야 할 것을 의논하고 각 주둔지에 긴급 연락을 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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