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사회의 모습을 갖춘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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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사회의 모습을 갖춘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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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의 기도, 꿈꾸며 준비한 것이 8년이 지나 첫 걸음

^^^▲ 야베스 공동체 오픈식을 마치고
ⓒ 벧엘의 집 홈페이지^^^

다음은 1998년 12월경 대전역을 중심으로 실직 노숙자와 인근 빈곤지역(쪽방지역)에 대한 문제해결을 위해,

1999년 5월 감리교남부연회 산하기구로 사회선교센터를 창립된 ‘벧엘의 집’ 산하기관으로 의료서비스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대전역 인근의 노숙자와 쪽방생활자 그리고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진료를 위해 인도주의 실천의사협의회, 충남대의대 낮은울타리, 을지의대 동아리 나누리, 하이델 자원봉사 동호회의 자원봉사(100여명)를 통하여 주2회 수요일과 토요일에 무료진료를 하고 있으며,

치료약을 배분하고 좀 더 정밀한 진단이 필요할 시 인도주의 실천의사협의회 회원들의 도움으로 외래진료를 지원하고 있는 ‘희망진료소’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원용철 목사의 “야베스 기도”라는 제하의 기고문이다.<편집자 주>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역대상 4장)

야베스의 어머니가 아주 고통스런 산고를 겪으면서 야베스를 낳았듯이 대안사회 건설을 목표로 출발한 야베스 공동체도 참 어렵게 시작하였다.

1998년 벧엘의집을 시작하면서 대안사회의 모습을 갖춘 공동체를 꿈꾸며 준비한 것이 8년이 지나서야 구체적인 첫 걸음을 떼게 된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공동체를 꿈꾸고 실현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무한 경쟁으로 함축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는 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절대빈곤층을 양산하게 되고 사회안전망이 촘촘하지 않은 상황에서 당연히 노숙자와 같이 가족을 잃고 거리에서 지내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복지정책이 있지만 복지정책이라는 것도 뜯어보면 단순 시혜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구조 자체가 바뀌어야 하지만 그것도 몇몇 사람의 의지나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사회구조의 당연한 결과라고 외면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사회복지적 접근을 통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끝내 예산은 많이 들고 효과는 없다는 사회적 공격에 직면하게 된다.

이런 딜레마가 바로 빈곤문제 해결의 가장 큰 장애 요소이다. 더욱이 빈곤층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노숙인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거리에서 생활한다고 당장 잠자리, 먹거리를 해결할 수 있는 쉼터나 드롭인센타와 같은 복지시설들이 생겨나지만 8년이 지난 현재에도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또한 노숙인 자활을 위한 많은 시도를 하지만 그것도 뾰족한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문제 해결의 가장 유일한 대안은 대안사회의 실험이다. 자본주의 구조가 아닌 새로운 사회 구조를 통한 실험만이 노숙인 문제 해결의 희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실험도 사정이 여의치 않다. 먼저 경제적 문제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구조에서 다른 사회를 실험한다는 것은 막대한 자본이 소요되지만 대안사회 실험주체들이 영세하거나 소규모여서 사회적 기업을 시도하다가 중도에서 그만 두게 된다. 지금까지 사회적 일자리나 자활사업 참여를 통해 실시된 많은 사회적 기업들이 공적자금의 투입이 끝나면 하나같이 문을 닫는 것도 자생적인 능력을 갖출 재원 마련이 어렵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경험부족으로 인해 사업 노하우가 없다는 것이다. 경쟁구조에서는 적자생존이라는 시장경제시스템이 냉혹하게 적용된다. 그러므로 그 구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업성을 보다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자본주의적 경영 시스템이 적용되어야 하지만 사회적 기업이라는 것이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서 제시되고 시도되는 방식이기에 자본주의적 경영 마인드를 적용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대안사회 건설을 위한 노력이 외적인 장애요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사람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문제점도 있다. 즉 자본주의적 사고방식과 그 구조에 훈련된 사람들이 함께 나누고 열심히 일하며 내 기업이라는 주인의식이 부족하다 보니 적당히 일하고 조금만 힘들면 무책임하게 그만두는 등 함께 세워가는 것에 대한 훈련이 안되었다는 것이다. 야베스공동체도 그런 문제를 읽고 있기에 혼자 열걸음이 아닌 열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공동체가 되자고 창립선언에서 밝혔던 것이다.

야베스공동체의 출발도 이런 난관을 예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도해야 하는 당위성이 있기에 시작했던 것이다. 야베스공동체가 넘어야 하는 산은 안팎으로 많이 있다. 아니 출발부터가 무모한지도 모른다. 불가능한 상황에서 의지만 가지고 출발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야베스의 기도를 다시 묵상하며 하나님께 기도한다.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우리는 오늘도 야베스공동체를 통한 사회의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것이 무모한 행동이어도 좋다. 아니 실패할 수밖에 없는 출발이어도 좋다. 그저 출발 그 자체에 만족하면서 그러나 꼭 이루어내겠다는 다짐과 함께 야베스 기도를 드린다.

벧엘의 집 원용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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