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빈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장, '명량대첩과 이순신의 리더십' 주제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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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빈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장, '명량대첩과 이순신의 리더십' 주제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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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전 장소와 승리요인에 대한 학계의 연구 성과를 종합한 명량해전 새로운 정론 제시

▲ 임원빈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장 ⓒ뉴스타운

그동안 논란이 되어왔던 명량해전 장소와 승리요인에 대한 학계의 연구 성과를 종합한 명량해전에 대한 새로운 정론이 제시됐다.

임원빈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장은 오는 3일 전남 해남군에 위치한 해남 우수영 유스호스텔에서 열리는 「2016 명량대첩축제 심포지움」에서, “명량대첩과 이순신의 리더십”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서 이 같이 밝힌다.

임원빈 소장은 “이제까지 명량해전 장소는 현재 진도대교가 놓여 있는 ‘명량의 물목’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이순신의 『난중일기』의 기록을 토대로 추정해 보면 양도(羊島)와 문내면 학동리 사이의 좁은 해협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그동안 초기 연구자들은 현재, 진도대교가 놓여 있는 좁은 물목을 해전 장소로 추정해 왔는데 최근의 연구자들은 명량의 빠른 조류 때문에 그 곳은 대규모의 해전을 치를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는데 대부분 동의한다.

임 소장은 “명량해전의 장소를 추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자료는 『난중일기』의 정유년 9월 16일자 기록으로 여기에 명량해전의 장소를 추정할 수 있는 여러 정황들이 꽤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며 “명량해전의 장소 추정은 이순신이 친히 기록한 일기를 토대로 살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명량해전 장소를 양도(羊島)와 학동리 사이의 우수영 앞 바다로 주장하는 근거에 대해 임 소장은 가장 먼저 이순신의 병법을 들었다.

이순신은 명량해전이 벌어지기 하루 전인 9월 15일, 여러 부하 장수들을 불러 모아 놓고 명량 인근의 물목을 해전 장소로 택한 이유를 설명한다.

임 소장은 이순신은 그 이유를 <일부당경, 족구천부(一夫當逕, 足懼千夫)>라는 병법의 원리를 들어 설명, ‘한 사내가 길목을 지키면 천 사내라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뜻인데, 바로 명량해전의 장소는 이 병법의 원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장소여야 한다는 것.

그는 이 병법의 원리를 외나무다리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외나무다리에 관우나 장비 같은 힘센 장수가 서 있으면 적군이 100명이라 하더라도 외나무다리를 타고 공격해 올 수 있는 적은 1명일 수밖에 없고 외나무다리라는 지형적 이점을 활용하면 1:100의 열세 상황을 1:1의 상황으로 변화시켜 외나무다리와 비슷한 좁은 해협을 차단하고 13척 대 133척의 절대 열세를 완화시킨다는 것이 이순신의 계산이었다.

이런 병법 원리를 구사할 수 있는 장소는 기존의 진도대교가 있는 명량의 물목과 양도(羊島)와 학동리 사이의 좁은 해협인데, 진도대교 밑의 명량의 물목은 빠른 조류 때문에 해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양도와 학동리 사이의 좁은 해협, 즉 우수영 앞 바다가 명량해전의 장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다른 중요한 근거로 임 소장은 일기에 기록된 여러 정황을 제시한다. 일기에는 명량해전 당일 이른 아침, (일본함대가)명량을 경유하여 곧바로 진을 치고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鳴梁由入直向結陣處)>는 것, 명량해전 초기 통제사 이순신이 강력히 저항하자 일본 함대가 전진하지 못하고 나왔다 물러났다(乍近乍退)할 정도로 유속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 명량해전이 끝나고 그 자리에 머무르려고 하였으나 물이 빠져서 배를 정박하기 어려워 진을 건너 편 포구로 옮겼다(水退不合泊船, 移陣于越邊浦)는 것 등이 기록되어 있다.

결국, 명량해전의 장소는 일기에 기록된 이런 정황들을 만족시키는 장소여야 하는데, 그 장소가 바로 양도(羊島)와 학동리 사이의 해협인 우수영 앞 바다라는 것이 임 소장의 주장이다.

또, 조선의 함선 13척이 일본의 함선 133척을 대적하려면 일단 조선의 함선 1척의 질적 전투력이 일본 함선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

명량해전 당일 13척의 이순신의 함대는 일본 함대 133척 가운데 31척과 해전을 벌인다. 당시 좁은 해협에서는 일본의 함선 133척이 동시에 전투에 참여할 수 없었다. 전투결과 조선의 13척은 모두 온전히 보존된 반면 해전에 직접 참여하였던 일본의 함선 31척은 모조리 격파됐다. 지자, 현자 총통 등 대형화약무기로 무장한 판옥선 1척은 일본의 함선 2〜3척을 대적할 수 있을 정도로 질적 전투력 우위를 점유하고 있었다.

결국, 우수영 앞의 좁은 해협은 외나무다리의 역할을 했고 조선 수군의 함선 13척은 관우나 장비처럼 질적 전투력이 막강했기 때문에 어려운 해전이었지만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영화 <명량>에서 그려진 것처럼 통제사 배 위에서의 백병전은 없었다. 그 근거로 명량해전이 끝난 이틀 뒤인 9월 18일 일기에는 통제사 배에서 전사자 2명, 부상자 3명이 발생했는데 모두 조총의 탄환에 맞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임 소장은 “영화 <명량>에서 묘사한 것과는 달리 통제사 배의 갑판 위에서 치열한 백병전은 없었고, 당시 조선 수군은 원거리 함포포격전과 활에 의한 공격을 주요 공격전술로 삼았던 첨단 수군이었고 질적 전투력 측면에서 일본 수군을 압도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임 소장은 명량해전의 승리요인은 ▲판옥선의 질적 전투력 우위, ▲이순신이 구사한 <일부당경, 족구천부(一夫當逕, 足懼千夫)>의 병법,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게 한 <필사즉생(必死則生)>의 리더십, ▲호남 사람들의 참여와 협조를 꼽았다.

이밖에도 학술심포지움에서는 ▲명량대첩과 해양과학의 이용(박진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연안개발연구센터장), ▲한국 주요 수중발굴 성과와 명량대첩로 수중발굴(문환석,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수중발굴과장) ▲전남지역 이순신 문화자원과 명량대첩축제 연계방안(노기욱, 전라남도문화연구소 소장) 등이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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