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이는 서울 올라가는 대로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만들어 보자고 지나에게 말했다.
연지는 서울에 도착하자 훈이와 떨어지기 싫어 멍청하게 섰다가 집으로 들어왔다. 연지가 하루 동안 없는 사이에 집은 마구간 같았다. 이방 저방 벗어놓은 빨래들이 산더미 같고, 라면 끓여먹은 그릇들이 싱크대 위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팽개치고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소매를 걷어붙이고 쌓인 빨래며, 설거지, 방청소를 해놓고 저녁을 짓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 딸이 들어오며 물었다.
“엄마, 이상해졌어. 혼나간 사람 같아”
“그렇게 보이니?”
“응, 옛날에 엄마가 아닌 것 같아.”
“어디가 그렇게 보이니?”
“혼나간 사람 같아.”
“그러니? 사실은 아빠와 이혼을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있었어.”
“이혼?”
정희는 엄마의 말에 그렇게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오늘 우리 선생님도 이혼했나봐. 왜 이혼했는지는 몰라도 30년을 같이 살다가 헤어졌는데 우리가 선생님한테 물었어. 왜 그렇게 오래 살다가 이혼했느냐고 했더니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살다가 죽고 싶다나. 그래서 어떤 것이 행복이냐고 했더니 마음이 편하면 행복이라는 거야. 혼자 산다고 마음이 편하지는 않을 텐데.”
“선생님 말씀이 맞을지도 몰라. 그리고 부부는 사랑이 있어야 지. 사랑 없이는 부부라고 할 수 있겠니?”
“그렇기는 해. 우리 아빠, 엄마를 보면 우선 성격적으로 맞질 않아. 완전히 반대야. 점차 엄마가 왜 문밖을 나가려는 것도 알 수 있을 것 같아.”
온통 정신이 훈이에게 쏟아져서 혼이 나간 여자 같았다. 커피에 설탕을 넣는다는 것이 소금을 넣어 먹지를 못했고, 간장을 붓는다는 것이 참기름을 들어부어 음식을 버렸다. 월요일에 입고 출근할 남편의 와이셔츠도 다림질하다 태워 먹기도 했다. 모두 석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전화기 앞에 앉았다.
“나야. 뭐하고 있어?”
“선유도 공원에 바람 쏘이러 가고 있어.”
“누구랑?”
“혼자.”
“언제 데려 갈 거야.”
“땅이 팔려야지.”
“그 놈의 땅. 땅은 있기라도 있는 거야?”
“매매가 안 되잖아. 워낙 불경기라서 팔겠다는 사람은 많고,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
“싸게라도 팔면 안 돼?”
“글쎄, 헐값에 내놓아도 사는 사람이 없다는 거야. 정말 미치겠어.”
훈이의 목소리도 울상이었다.
“나 어떻게 해. 집을 뛰쳐나가고 말거야. 숨이 막혀 단 몇 분도 있을 수가 없어.”
“그렇다고 나오면 어떻게?”
“몰라. 모든 게 손에 잡히지 않아. 나도 정리할지 몰라.”
“어떻게?” “우리 멀리 떠나 살고 싶어. 단 하루라도 당신을 여보라고 불러보고 죽고 싶어.”
연지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 밤 남편은 그 어느 날보다 일찍 집에 들어왔다. 아내는 밥할 생각도 하지 않고 딸 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좀처럼 아내의 핸드백을 뒤지지 않는 남편은 핸드폰의 메일에서 훈이의 글을 발견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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