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찰(古刹)에 사는 능구렁이에 대한 추억(追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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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찰(古刹)에 사는 능구렁이에 대한 추억(追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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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 노릇을 잘못하면 능구렁이 몸 받는다는데...

나는 아직도 고찰의 산사(山寺)에 능구렁이가 많이 살고 있는 이유를 정확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능구렁이는 산사의 전각마다 지붕속에 은신(隱身)하듯 전각의 대소(大小)에 따라 덩치가 크고 작은 능구렁이 한 마리씩 마치 전각 담당 요원처럼 숨어 있는 것을 나는 확인했다. 능구렁이가 전각 천정 위에서 인간의 사생활을 감시하듯 훔쳐보고 있다는 것을 상상하면 영 기분이 안좋지만 전각마다 지붕을 뜯어 매번 적발할 수도 없다고 나는 탄식하면서, 내가 겪은 능구렁이에 대한 추억의 일단을 소개할 까 한다. 이 소개는 항간의 "믿거나 말거나, 아니면 말고"식의 추억은 아니라는 것을 전제한다.

나는 80년도 초에 무위시(無爲寺, 전남 강진군 성전면 죽전리 소재, 국보 13호 사찰)주지직을 8년을 역임했다. 무위사는 큰 법당인 극락보전이 국보이고, 32점의 벽화가 국보이기 때문에 혹여 도난을 당할 까, 염려하여 나는 당시 애견(愛犬) 수컷 세퍼드 잡종으로 일명 '바우'와 함께 주야로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문자 써 노심초사(勞心焦思)했다.

능구렁이는 대낮에는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용의주도한 습성을 가졌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면 장독대 밑의 돌담이나, 여타 돌담위에 능구렁이는 허물을 벗어놓아 인간에게 마치 자신의 존재를 알리듯 보여주었다. 하지만 나는 여러 번 돌담위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것 같은 능구렁이를 목격하였다. 호랑이의 반점같이 검고 붉은 반점이 있는 제법 큰 능구렁이는 나를 두려워 하지 않고 빤히 쳐다보듯 하다가 내가 시선을 돌리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고인이 된 선운사의 존경하는 원로인 향엄(香嚴)노스님은 능구렁이를 보면 언제나 이렇게 꾸짖었다. "수도승이 되어 수도를 잘 할 것이지, 어찌 돈에 탐욕을 부리다가 업보의 몸을 받아 부처님 도량에 몸을 나타내는가! 당장 사라져라!" 능구렁이는 말귀를 알아듣는 듯이 순식간에 스르르 사라졌다. 향엄스님의 주장인즉 사찰에서 배회하는 능구렁이는 전생에 수도승이 되어 수도는 하지 않고 부처팔아 돈만 챙긴 탐욕승이 죽어 업보의 몸을 받았다는 주장이었다. 나는 소시쩍에 향엄노스님의 주장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선운사에서 초짜 사미승 노릇을 할 때 나는 향엄노스님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능구렁이가 되지 않으려고 수행자의 공부에 전념할 수 밖에 없었다. 부지런히 예불을 하고, 부지런히 불경을 읽으며, 선배스님들의 심부름을 눈섶이 휘날리도록 부지런히 했다.

훗날 나이가 들어 알고보니 능구렁이는 사찰에만 사는 것이 아니었다. 능구렁이는 일본, 중국, 몽고, 태국, 히말라야 동부 등지에 분포하여 활동하는 뱀이었다. 구렁이를 설명하는 책자에는 능구렁이(Dinodon rufozonatus rufozonatus),영명 : Red Banded Odd-tooth Snake 라고 씌어있고, 몸길이 : 70∼120cm. 능구리, 능사 라고도 한다. 또, 능구렁이를 사주(巳主)라고도 했다. 뱀의 왕이라는 것이다. 능구렁이는 다른 뱀을 잡아 먹는 다는 설도 전해온다,

나는 무위사에서 능구렁이를 죽게한 과오를 범했다. 당시 국보 13호 극락보전 오른 쪽에는 도장(盜葬)한 것 같이 보이는 봉분이 있었다. 나는 그 봉분이 국보13호의 지척간에 있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어느 화창한 봄날 나는 봉분을 파내어 없애겠다는 생각을 하고, 포크레인을 불렀다. 저녘 무렵 중형의 포크레인이 굉음을 울리며 극락보전 옆에 정지했다. 나는 포크레인 기사에게 다음날 아침 9시부터 봉분을 없애기를 주문했다. 나는 땅속에 사는 생명들이 밤사이 피신하라는 배려에서였다.

다음날 오전 9시경 포크레인으로 봉분을 파려니 불국사 조실인 고(故) 월산큰스님이 무위사를 방문했다. 월산큰스님은 총무원장으로 재직할 때 나를 불교신문사 편집국장으로 발탁해준 인연이 있기에 나는 공사를 멈추고 정중히 인사를 했다. 월산큰스님은 봉분을 손으로 가르키며," 저 봉분은 도장(盜葬)이 아니네. 파불상(破佛像)들을 파묻은 게야. 공사를 하지 말게. 저것을 파내면 자네는 구설수에 휘말리게 되네."나는 마지못해 "예,예"만 했다. 월산큰스님은 "자넨 청개구리 심사를 지녔지. 내말을 듣지 않을걸세."그는 햐얀 봉투의 금일봉을 주고 무위사를 떠나갔다.

굉음을 울리며 봉분을 파헤치던 포크레인 기사가 비명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나를 불렀다. 그는 포크레인 엔진을 끄고 손으로 가르켰다. 나는 달려가 보니 봉분속에 엄청나게 큰 능구렁이가 목쪽이 포크레인에 찍혀 선혈이 낭자한 가운데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피흘리는 능구렁이를 향해 꾸짖듯이 말했다. "어젯밤 피신하라는 기회를 주었잖아?. 어쩌자는 거야? 포크레인과 맞서보겠다는 거야? 왜? 무엇 때문에?"나는 긴 장대로 능구렁이를 건져 탑 옆의 시식대(施食臺)의 바위에 올려놓고 "네가 죽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니야, 네 책임이야, 알았어?"하고서는 왕생극락을 비는 염불을 해주었다.

바위 위에 피를 흘리는 능구렁이는 나의 염불에는 뜻이 없고 통한의 눈빛으로 노려보는 듯 했다. 나는 피투성이로 죽은 능구렁이를 땅을 파고 후장(厚葬)했다. 그리고 포크레인 기사에게 외쳤다."여보게 이녀석이 죽음을 불사하고 봉분을 지키려는 것을 보니 봉분에는 보물이 있는 것 같네. 보물이 상하지 않도록 살살 파보게."

과연 포크레인으로 살살 봉분을 파보니 황금빛이 나는 파불상(破佛像)들이 무수히 발굴되었다. 어느 틈에 관광객들이 몰려와 파불상에 사진을 찍어대고 경탄의 소리를 내질렀다. 능구렁이는 황금빛 파불상을 보물처럼 사수(死守)한 것이었다.

월산 큰스님의 예언대로 봉분을 파헤친 것으로 나에 대한 망신의 구설과 액운의 서막은 올랐다.

도청의 문화재 전문위원이 광광객의 고자질로 달려왔다. 군청과 경찰서에도 관계자들이 다투어 달려왔다. 가까운 목포시의 MBC TV 등 방송기자와 신문기자들이 들이닥쳤다. 문화재 전문위원은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기자들에게 기회를 잡은 양 근거없는 주장을 헸다. 파불상은 조선 태조 초(初)의 불상인데 포크레인으로 부서진 것 같고, 국보 13호 지역은 문화재 보호지역인데 당국의 승인없이 파헤친 것은 중대한 과오라며 나를 맹비난했다. 언론사의 기자들은 국보 13호 주변에서 보물급 문화재들을 당국의 공식 승인이 없이 도굴하듯 발굴되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황당한 TV 방송이 벌어졌다. 발굴현장에서 다수의 보물급 금불상이 나왔는데 주지가 가로채 숨겨놓고, 파불상만 나왔다고 거짓말을 한다는 주장이었다. 다른 언론은 이렇게 주장했다. "국보 13호 옆에서 금불상이 일곱 개나 나왔는데 그 불상을 귀돋힌 이무기가 지키고 있었고, 주지승이 탐욕에 눈이 어두워 포크레인으로 이무기를 죽이고 금불상을 가로채 빼돌렸다."는 주장의 입소문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경찰서 수사과에서 불렀다. 나는 졸지에 경찰과 언론, 신도들에게 "나는 금불상을 훔치지 않았어요"라고 수없이 해명을 해야 했다.

조계종 총무원에서도 긴급 소환령이 떨어졌다. 나는 확인서를 들고 총무원을 향해 상경하여 해명을 하고 있는 시간에 일부 방송 언론은 "무위사 주지가 금불상들을 걸망에 담아 도주 중"이라는 긴급뉴스로 보도했다. 도주중이지만, 민완경찰이 출동했으므로 체포는 시간문제라는 것이었다. 목포 MBC TV 기자는 "무위사에서 죽은 구렁이는 귀돋힌 구렁이로서 사실은 구렁이가 죽었다는 것은 주지의 거짓말이고, 구렁이를 일본에 밀반출 하려고 대형 상자에 숨겨놓았다"는 설의 의혹제기도 했다. 일부 기자는 나에게 귀돋힌 구렁이를 공개하라고 따지듯 했다.

나는 그 무렵 거의 매일밤이다시피 피흘리는 능구렁이가 통한의 눈이듯 꿈속에서 나를 노려보았다. 당시 나는 숙면을 이루지 못했고, 헛소리처럼 점꼬대로 "나는 금불상을 훔치지 않았어요"라고 하는 지경이었다. TV 등의 황당한 보도로 무위사의 귀돋힌 구렁이를 친견한다는 차원의 관광객도 있었다. 매번 나는 귀돋힌 구렁이는 없었다고 해명했고, 일본국에 귀돋힌 구렁이를 팔아막는 짓은 매국자(賣國者)나 다를게 없다고 주장하는 촌노(村老)도 있었다.

나는 그 후 무위사에서 또다른 능구렁이들을 볼 수 있었다. 무위사 재래식 화장실지붕을 뜯어 고치는데 기와지붕 밑에서 능구렁이 한 마리가 재빨리 풀숲으로 낙하하여 달아나는 것을 보았다. 그 능구렁이는 화장실 담당 요원이듯 천정에 은신하여 남녀 인간들이 방분(放糞), 방뇨(放尿)하는 것을 감시하듯 했을 것이다.

나는 능구렁이가 "도대체 그 높은 전각, 요사채의 지붕속을 어떻게 침투했을까?"는 한 때 나의 한때 화두였다.

그 화두는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직접 목격한 것이다. 능구렁이는 식사를 마치고 담당 전각으로 복귀하는 데, 전각 옆에 큰 나무를 이용했다. 능구렁이는 나무에 올라 전각 쪽으로 뻗은 나뭇가지에서 힘껏 전각 지붕 쪽으로 뛰어 내렸다. 전각 지붕에 낙하한 능구렁이는 자신의 감시초소에 스르르 들어가 틈사이로 인간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능구렁이가 활약하는 고찰(古刹)에는 희한한 일이 벌어진 적이 있다. 대중이 먹을 국을 끓이는 책임자를 갱두(羹頭)라고 한다. 갱두가 채소로 국을 끓이기 위해 채소를 씻어 대바구니에 넣고 잠간 화장실에 갖다오는 시간에 능구렁이가 스르르 대바구니의 채소속에 들어갔다. 갱두는 채소속의 능구렁이를 모른채 채소를 국을 끓이는 큰 솥안에 쏟아붓고 솥두껑을 닫고 국을 끓였다. 국물을 먹은 승려들은 국맛이 좋다고 갱두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고 전하는 말이 있다. 채소 속으로 들어간 능구렁이는 고달픔 생을 마감하기 위한 자살인지, 아니면 일종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인지, 아니면 영양가 없는 음식만 먹어야 하는 수도승들에게 육보시(肉布施)를 한 것인지 나는 아직 화두이다.

매불(賣佛)하여 돈만 챙기는 탐욕스러운 승려가 죽으면 능구렁이 몸을 받아 고찰을 배회한다는 인과법문의 핵심과 진의는 요익중생(饒益衆生)하는 참다운 수도승이 되라는 방편법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제 이렇게 주장한다"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듯, 능구렁이는 능구렁이고, 수행자는 수행자인 것이다.".

끝으로, 이제 나는 그날의 향엄노스님처럼 늙었다. 어느 결에 나는 향엄노스님처럼 어린 행자, 사미승을 만나면 방편 법문을 이렇게 해준다. "너 진짜 부처를 닮는 수도승이 되어 모든 중생에게 헌신, 봉사해야 한다. 부처 팔아 돈만 탐욕을 부리면, 반드시 능구렁이 몸을 받는다. 알겠느냐?"또 나는 이렇게 가르친다. "불교가 중흥 되려면 종교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을 수호해야 한다. 대한민국을 망치는 짓을 하면 불교를 망치는 짓이야. 반드시 능구렁이 몸으로 태어난다. 알겠느냐?" 이글의 진의는 깨닫지 못하고, 산사에 능구렁이가 많다는 정보에만 집착하여 몸보신을 위해 속세의 남녀들이 능구렁이를 잡는 도구와 부대자루를 들고 산사에 달려가 맹활약을 하지 않기를 맹촉(猛促)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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