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위복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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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위복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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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챙이 생존법


제국들은 19세기 식민지 개척으로 광분했다. 스페인의 함대는 페루를 공략하고 잉카를 정복했다. 영국은 미지의땅 인도를 복속시키고 금과 향료를 본국으로 실어갔다.

아직 고요했던 아침의 나라는 야수와 같은 발톱을 숨긴 식민지의 원흉들의 선착장이 되었고 급기야 민비는 대원군이 섭정을 놓기 전 일본자객들에 의해 고혼이 되었다. 루즈벨트의 환심 사기. 그의 딸의 조선방문은 역시 다를 수 없는 열강들의 식민쟁탈전을 연상케 한다. 바야흐로 접시에 담긴 한 덩이의 고기를 삼키기 위해 일곱 짐승이 포효하며 서로를 짖이기는 장면을 연상한다.

시대는 흘러 급변한다. 세계는 정보의 바다에서 진부한 노젓기 감상에 돛을 걸지 않는다. 자기부상 열차처럼 한꺼번에 달려와 위성의 눈 아래로 미래의 후손들을 위한 첨단과학에 활주로를 깐다.

여기서 우리는 플루트늄 생산의 의젓한 의미를 고무적으로 환영하며, 진정 핵보다 무서운 3차원 무기를 개량, 은밀히 실험하고 있는 선진국들의 이중성에, IAEA의 사찰은 뒤늦게 한국을 바라보는 제국들의 시선을 흐리게 할 필요가 있으며 국민적 묘한 자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핵기운의 정립과 금지조약이 있었다. 분명 저들은 몇몇 실험장치와 개량 모듈만 장착하면 한 개의 핵을 생산하는데도 불과 수 주가 소요될 뿐이다. 신제국주의와 신민족주의 태동은 불과 물의 관계로 테러와 피로 얼룩지는 오늘의 현실에서 인도와 파키스탄, 북한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민주주의의 아이러니즘이란 가진 자와 없는 자의 뚜렷한 획일성에 기인한다. 북한의 사회주의도 일인체제 하의 비참함이 얼마나 양민들을 해치는가에 문제의 심각성이 더하다. 양면 모두 이념의 모순은 어디에나 있다. 민족보존과 국가영토의 안전을 위해서는 무엇이 급선무인지를 한번쯤 생각해 봐야한다.

얼마 전 부시의 한국 이라크 파병 치하 연설에서 한국을 제외했다는 보도에 착잡한 심정으로 우리의 각오를 다시한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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