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광성보 ⓒ 사진/네이버백과^^^ | ||
그중에서도 광성보는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입니다. 광성보는 화도, 오두, 광성돈대(지금의 초소라고 보면 됨)를 관할하는 기지로서 평상시에는 장교 29명과 사병 1백 명이 주둔하고 있는 작은 성입니다. 미국은 군함 5척에 1,230명의 군인을 동원해서 염해로 기어들어 왔습니다. 미국은 8백 명의 군인들을 동원해서 초지진, 덕진진을 무너뜨렸습니다. 그 당시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에 주둔한 조선군은 약 3천 명 가량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수적인 우세에도 불구하고 미군의 화력을 당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조선군이 보유한 대포는 사정거리가 700m 명중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 골동품에 가까운 무기였습니다. 대포알도 쇠 덩어리 아니면 돌멩이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결과가 뻔한 싸움이었습니다.
광성보에 도착한 미군은 1시간 동안 함포 사격으로 조선군 진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함포 사격으로 조선군 상당수가 전사했습니다. 그리고 광성보를 공격했습니다. 광성보엔 조선군 6백 명이 있었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보기엔 그렇게 넓은 장소는 아닌 것 같습니다. 평상시 병력도 겨우 1백 명에 불과한 작은 성에 6배나 되는 병력을 집어넣었다는 게 제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막강한 화력을 지닌 미 군함이 다가 오고 있는데 말입니다.
전투는 너무나 허무하게 끝을 맺었습니다. 불과 30분 만에 지휘관인 어재연 장군을 비롯해서 조선군 350명이 전사했고 광성보는 미군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이 싸움에서 미군은 겨우 3명이 전사했습니다.
강화에 7년 동안 살았으면서도 광성보를 보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물론 지나가면서 대충은 보았습니다. 재작년인가로 기억하는데 그 때도 광성보에 들린 적이 있습니다. 푸름이네, 한솔이네와 함께 들렸지요. 그런데 광성보 안에 들어가 보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란 핑계를 대고 3명의 아빠들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들어간 사람들은 엄마들과 아이들뿐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기지도 못한 싸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기회를 통해서 광성보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지나가던 차안에서 보던 풍경과 직접 들어가서 느껴보는 생각은 확실히 달랐습니다.
안해루를 지나서 왼편으로 꺾어지면 광성돈대가 있습니다. 돈대를 둘러 본 다음에는 오른편에 있는 산책로를 따라 용두돈대로 올라가게 됩니다. 천천히 올라가다가 좌우편에 자리하고 있는 '신미양요 순국무명용사비'와 '쌍충비각' 그리고 '신미순의 총'에 잠깐 들렀다 가는 것이 좋습니다. 쌍충비각은 광성보에서 전사한 어재연, 어재순 장군 형제를 기리는 비각이고, '신미순의 총'은 신미양요 때 전사자 51명의 시신을 거두어 묻어 놓은 묘소입니다. 여러 명을 함께 화장해서 합장한 무덤이라 총 7기입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하지만 그건 틀린 얘기입니다. 오히려 이 땅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 앞에서 살아있는 우리들의 입술이 얼어붙었습니다. 그 시대를 살아 본 적도 없는 후손들이 싸움의 승패를 논하는 것은 너무나 미련한 짓이었습니다. 좋은 결과도 중요하겠지만 싸워야 할 이유는 더욱 중요했습니다.
우리가 걸어 올라간 용두돈대는 강화해협을 따라 용머리처럼 튀어 나온 암반을 이용해서 축조되었습니다. 돈대 아래는 물살이 거세기로 유명한 '손돌목'입니다. 밑을 내려다보니까 바다는 각기 다른 방향에서 몰려든 파도들로 난리를 치고 있었습니다. 잠시 내려다 보다 고개를 들어 김포쪽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곳엔 손돌의 무덤이 있었습니다. 손돌은 1636년 병자호란 때 인조 임금에게 길 안내를 내 주었다는 뱃사공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손돌을 의심한 임금은 배은망덕하게도 손돌을 죽여 버렸다지요.
오랜 만에 가져보는 자못 심각한 오후였습니다. 그런데 엄숙한 분위기를 깬 것은 안내인에게 던진 어떤 분의 희한한 질문이었습니다.
"여기 광성보에서는 남자들만 죽었지요? 여자들은 하나도 안 죽었지요?"
"그런데요?"
"그러니까 여자들은 남자들에게 잘해야 한다고요. 여자들은 하나 안 죽고 다 남자들만 죽었잖아요."
그곳에 함께 있던 여자 분들도 가만있을 리 없습니다. "그럼 남자들에게 밥은 누가 해 줬어요?" "남자들 죽은 다음에 시부모 모시고, 어린 자녀들 키우며 고생한 게 누군데요?"
그 자리가 너무 힘들어서일까요. 엉뚱한 실랑이에 분위기가 많이 밝아졌습니다. 내려오면서 광성보에서 전사한 조선군의 아내들과 자녀들이 겪었을 불행한 역사를 그려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막강한 화력으로 사람 죽이기를 밥 먹듯이 하는 미군의 무신경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미군의 무차별 폭격을 통해서 죽은 아프가니스탄 민간인들의 숫자는 9·11테러 때 죽은 미국인보다 훨씬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라크에서도 무차별 폭격과 사격으로 무고한 양민들을 죽이고 있는 미국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침략전쟁입니다. 133년 전 조선이 당한 것이나, 현재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가 당하고 있는 일들 모두가 비슷한 상황입니다.
뉴스타운
뉴스타운TV 구독 및 시청료 후원하기
뉴스타운T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