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히 귀향했다는 말이 조금 억지스럽긴 하지만 아주 스릴있는 귀향길이었던 것 만큼은 틀림없습니다. 서울시내의 정체와 민족대이동의 어머어마함 그리고 아름답게 내린 눈을 감상한 후 치뤄야 하는 빙판길 안전사고 때문입니다.
본격적인 귀성행렬이 시작된다는 21일을 앞에 두고 저는 20일 저녁 7시 15분 차로 기차표를 끊어놓은 상태였습니다. 오후 4시부터 짐을 부리고 문단속을 하고 나서 5시 30분이 되어 집에서 나섰습니다. 기차시간이 아직 2시간 가까이 남은 터라 여유있을거라 자신했습니다.
부모님께 드릴 선물과 아내와 딸아이 옷가지 등을 챙겼더니 배낭가방 하나로도 모자라 양손에 쇼핑백을 하나씩 들고 버스를 기다립니다. 서울역까지 평소 30분 내에 주파할 수 있는 거리라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기다리는 버스가 오질 않습니다. 딸아이는 추워서 버스가 왜 안오냐고 원망하고 아내는 이러다 기차를 놓칠까봐 조마조마해 합니다. 마지막 배수진이었던 기차시간 1시간 전에 서울역으로 향하는 버스가 왔습니다. 두대가 한꺼번에 오는 걸 보니 배차 간격이 잘못 조정되었음이 틀림없습니다.
평소 서울역까지 20분이면 충분했건만 곳곳에서 차가 막히는 것이 불안합니다. 기차 시간은 다가오고 도로에 깔린 수많은 차들이 원망스럽기까지 합니다. 어차피 조마조마해 한다고 상황이 달라지진 않으니 눈딱감고 기도를 해보았습니다. 마음은 편했지만 다리를 떨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서울역에 도착했을때는 기차시간을 30분이나 훌쩍 넘긴 뒤였습니다. 일단 못쓰게 된 차표를 반환하고 다음 차표를 알아보니 내일 오후 4시까지는 입석까지 전원 매진이랍니다. 이 난감한 상황 앞에서 아내와 지민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일단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가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어떻게든 집에 갈 방법을 알아보겠다고 말이죠.
짐을 아내에게 맡기고 가벼워진 몸으로 이것저것 생각해보았지만 인력으로 어떻게 해결될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냥 내일 오후 입석이라도 끊어놓을까 생각해보지만 아내와 지민이 그리고 고향에서 기다리실 부모님을 생각하니 그럴 순 없다는 가장의 책임감이 느껴집니다. 그때 반환표를 구한다는 종이를 들고 서울역 입구에 서 계시는 분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도 하얀 종이에 큼직하게 써봅니다. '대구행 반환표 구합니다'라구요. 그걸 들고 이리저리 기웃거리기를 30여분 드디어 대구행 표를 4장이나 반환하러 오신 분이 저에게 표를 팔겠다고 다가오셨습니다. 저와 그분의 합법적인 거래가 채 끊나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려오는 통에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무사히 거래를 끊내고 기쁜 마음으로 아내가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비록 예정된 기차보다 3시간이나 늦은 기차였지만 좌석으로 2장을 구해 아내에게 보여주니 울상이던 얼굴이 금새 펴집니다. 지민이는 아빠가 최고라고 치켜세워줍니다.
서울역 만남의 광장에서 대장금을 시청하던 이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이제 5살된 지민이를 데리고 입석을 끊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생각하니 아찔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우리 자리의 일부를 6살된 아이에게 나눠주니 그 어머니는 감사하다고 내리실때 2달러 지폐를 기념으로 주십니다. 그분께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한마디 해드리고 나니 마음이 훈훈해 집니다.
21일 새벽 2시 40분이 되어서야 우리 가족은 대구에 도착했습니다. 눈이 오고 난 뒤라 도로는 아찔하게 얼어있었고 집까지 10여분 택시를 탄다는 것이 너무 위험할 것 같습니다. 집까지 가는 동안 빙판길에 미끄러져 차가 차를 받거나 가로등을 들이 받는 등 3건의 사고를 직접 목격하고 나니 아침 출근길이 걱정됩니다.
오늘까지 신문을 돌리고 오후에 내려오기로 한 친구가 걱정이 되어 전화를 해보니 마음을 비우고 신문을 돌릴거랍니다. 괜히 빨리 돌리겠다고 오토바이를 급하게 몰다가는 큰일 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친구가 걱정되어 차라리 출근하지 말라는 대책없는 말을 할 정도입니다. 아무튼 빙판길에 사람이 다치는 일만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새벽까지 주무시지 않고 우릴 반겨주시는 부모님을 뵙고 나니 늦게라도 표를 구해 온 것이 너무나 다행스러웠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늙으신 것 같은 아버지와 갈수록 온화해지시는 어머니 앞에서 '고향'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모두들 무사 귀향 하시길 바라며 올한해 어느 목사님의 말씀처럼 조금 느리게, 그리고 복되게 보내셨으면 합니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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