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으로 남동생이 있지만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해서 마음을안타깝게 했다. 설상가상으로 동생의 회사도 구조조정으로 실직한 뒤 연일 술로 날을 지내다 엄청난 카드빚을 지게된 것이다. 때문에 새벽부터 밥 짓고 빨래하고 아버지 목욕시켜드리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 그의 가계도를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선조들은 백제시대부터 대대로 고관을 지냈고 외조부는 하버드대학 국비장학생 출신으로 31살 나이에 서울대병원장을 지낸 의료선교사였다. 당시 대통령비서에 의해 주치의로 영입하려 했으나 거절하고 서민들을 위해 헌신해오다 6.25때 북한군에잡혀 모진 고문으로 사망했다.
아버지는 1.4후퇴때 어머니를 따라 월남한 실향민으로 이씨의 조부는 당시 청진시에서 금싸라기땅으로 손꼽히는 포항동 전체소유주였고 당 고위급 간부들이 단골로이용한 약국의 약사였다고 한다.
고향에 친척과 이복동생.사촌동생 누나 형제를 그리워하는 등 최근까지도 생존해 있다는 얘기를 들어 그 기억은 또박또박하다고 한다. 어머니는 60년대 최고 인기 패션모델로 활동하다 친구의 만류로 그만두고 모교인 홍익대학서 교수가 되었다.
이씨가 중학생이 되던 해 뒷바라지를 위해 그만 두고 레스토랑을 경영했으나 3년만에 적자로 문을 닫게 되었다. 그후 보험사를 전전하는 등 생활비를 위해 빚을 지게 되었고 그것에 대한 스트레스로 인해 평소 높은 혈압을 기록하였으나 급기야 그 수치를 넘어 사망하고 말았다.
독실한 크리스찬인 이씨는 총신대학을 장학생으로 입학하였지만 가정형편으로 인해 3학년까지 다니고 중퇴를 했다. 그후 장갑공장 김밥공장 가구공장 은행경비원 노래방 도우미 경양식집 피자배달 신문배달 지하철판매원 막노동일을 해가며 동생의 학비를 마련했고 연세대학원 생명공학도였던 동생은 D그룹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학창시절에는 학우들과 교사뿐만 아니라 이성들한테도 인기가 많았으나 소심한 성격에 공부에만 열중하여 친구가 없다고 한다. 중학교시절에는 외모가 출중하고 상당히 모범적이어서 여학생들사이에도 이름을 날렸으나 워낙 내성적이고 무뚝뚝한 성격이어서 그후론 전혀 연락이 없었다고도 했다.
아직 미혼이고 친구가 한 명도 없어 요즘도 무척 외롭고 쓸쓸하다는 이씨는 새해소망으로 내년에는 기필코 사랑하는사람을 만나 아버님을 같이 모시고 동생도 새출발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씨는 '어머님이 칠순 되셨을 때 반드시 해외효도관광을 시켜드리려고 했지만 끝내 불효자가 되었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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