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 하늘 문양(紋樣)을 땅으로 옮겨와 농경을 시작합니다. 밭의 무성한 풀을 뜯으면서 마음 속 우거진 잡념도 뽑아냅니다. 가시나무에 손끝을 찔리면서 남의 마음 아프게 찌르는 제 마음속 가득히 도사린 야홍화(野紅花) 가시를 탄식합니다. 농자(農者)는 현자가 되고 현자(賢者)는 농자(農者)가 됩니다.
낮이면 밭으로 몰려드는 별별 벌레들과 새들이 오곡백과를 병들게 합니다. 여간 낭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자 농자는 덩실덩실 춤을 추며 징과 북을 울려 천둥과 바람소리를 만들어냅니다. 신명난 농악놀이를 합니다. 그러면 벌레들은 겁을 먹고 쏜살같이 줄행랑을 칩니다. 각자 제 길로 갔을 뿐, 아무도 죽지 않았습니다. 동양의 세계입니다.
밤이면 평상에 누어 별을 타고 유영(遊泳) 하는 아이들의 행복을 송곳니로 꼭꼭 찌르며 방해하는 모기떼의 습격이 괴롭습니다. 이이들의 볼이며 종아리가 금새 벌겋게 부어 오릅니다. 그러면 농자는 쑥대며 풀을 모아 모깃불을 피웁 니다.
그러자 밉살스런 모기들은 투덜투덜 비틀비틀 숲 속으로 도망을 쳐 버립니다. 각자 제 길로 갔을뿐 아무도 죽지 않았습니다. 동양의 세계입니다.
가을이면 농자는 여섯 가지의 곡식과 백가지 실과를 거두어들입니다. 쫓아냈던 새들과 벌레들에게 돌려줄 낱알과 까치밥은 남겨두고서 말입니다. 하늘과 땅 사람 셋이서 이룬 그결실을 기뻐하면서 그것을 먹습니다. 살아있는 것이라 미안해서 아주 조금만 먹습니다.
그 거룩한 공양으로 우리의 몸은 강건해 집니다. 그러면 몸속에서 기회를 엿보며 꿈틀대던 병마는 투덜투덜 몸 밖으로 줄행랑을 칩니다. 자기가 살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각자 제 길로 갔을뿐 아무도 죽지 않았습니다. 동양의 세계입니다
어느날 서쪽에서 건조한 금풍(金風)이 동양의 바다를 흉흉히 휘저으며 매우 거칠게 불어닥칩니다. 말 탄 군인들로 '지구 어머니'의 품속에서 자유하던 인디언들을 척박한 땅 '오클라호마'로 강제 이주시켰던 그 바람입니다. 수많은 인디언들을 길 위에서 죽게 한 그 살해의 바랍입니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 발견했다고 환호하던 약탈의 바람이었습니다. 그 바람의 주인들은 하늘의 문양(紋樣)을 땅위에 옮기지 못하여 엽총으로 사냥한 축생의 고기로 배를 채운 터라 숨결에서 야만의 냄새가 풍겼습니다.
그들은 농자가 가꿔 논 비옥한 터전에서 싱그럽게 물오른 식물의 파릇파릇한 새순을 보았습니다. 풍성하고 아름다운 도원(挑園)을 눈여겨보며 열 두 가지 들녘의 향기를 맡았습니다. 그러나 이내 그들의 눈빛은 일그러지고 맙니다. 토실토실 영글은 각종 과실을 갉아먹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각색의 벌레들과 산호처럼 새하얀 메밀꽃 밭을 삼킬듯 맹렬히 쑥쑥 솟아오르는 낯선 풀들이 밉살맞아 견딜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애초에 그곳은 무성한 들풀들과 그 속에서 자유롭던 벌레들의 왕국이었는데도 말입니다.
기분이 몹시 상한 그들이 돌아갔다가 다시 나타났을 이미 그들의 손에는 두 개의 약병이 들려있었습니다. 한 병에는 살충제가 또 다른 병에는 고엽제가 들어있었습니다. '알렌'이라는 사람이 그것들을 물에 섞어 들판을 향해 이슬처럼 가만가만 뿌렸습니다.
잠시 후 들풀들은 누렇게 타 들어갔고 그 아래로 벌레들의 고통스런 흰 배가 흙속에서 뒤엉키어 버둥거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땅 밑에서도 무언가 움틀 움틀 요동쳐댔습니다. 모두 죽어버렸습니다. 서양의 세계입니다.
이제 밤입니다. 곯아떨어진 바람의 주인들 침상으로 모기떼의 습격이 시작됩니다. '아돌프'라는 사람이 벌떡 일어나 성난 얼굴로 무언가 하얗게 발사합니다. 'F-킬라'라고 불리는 가스총입니다. 침상 위로 모기들과 함께 태극나방 몇이 이리저리 곡예하듯 스러져 갑니다. 모두 죽어버렸습니다. 서양의 세계입니다.
이제 가을입니다. 벌레들이 없는 밭에서 자란 오곡 백과는 핏기없는 얼굴에 키빼기만 훤칠합니다. 그것들을 추수하여 칠면조 구이에 곁들여 성대한 만찬을 즐깁니다. 바람의 주인들의 이마에 득의가 만면합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이상한 병들이 생겨납니다. '암'이라는 이상한 혹 덩어리가 뱃속 여기저기서 포도송이처럼 더덕더덕 번져갑니다.
바람의 주인들은 몹시 노여워 합니다. 그들은 암균을 잡아서 죽일 묘안을 궁리합니다. 이미 암으로 죽은 시체을 해부해서 이리저리 들여다봅니다. 생명체와 시체는 전혀 다른데도 말입니다.
황새 모가지처럼 비좁게 생긴 우리 병 안에서 암균을 죽일 기막힌 독약이 만들어집니다. 그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었던지 암균이 자리잡은 뱃속 전체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가공할 위력을 지닌 광선총도 고안해 냈습니다.
번쩍번쩍 서늘한 광선이 암은 물론 암이 번지지 못하도록 아예 암과는 상관도 없는 원거리 부위까지 유비무한의 정신으로 골고루 불을 뿜어냅니다. 그 총구가 흑사 용가리 아가리처럼 섬뜻합니다
배트공 너 댓 명을 죽이기 위해 베트남 정글 전체를 초토화시킨 그 정신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암이 죽어 자빠집니다. 그러나 그 사람도 비틀비틀 죽어갑니다. 결국 세균도 세포도 사람도 모두 죽었습니다. 살육의 피바람이 사납게 불어 이제 더 이상 죽일 것이 없어집니다.
바람의 주인들은 이제 외계인이라도 죽이지않으면 몸살이 날 지경에 이릅니다. 'S/F영화'를 만들어 혹성을 침공합니다. 거기서 만난 '에이리언'을 무차별도륙(屠戮)합니다. 서양의 세계입니다.
동에서 떠오른 태양은 서쪽으로 기울어 갔습니다. 거기서 어둠이 시작되었습니다. 칠흑같은 명현(冥顯)의 시간이 흐릅니다. 비몽혼몽의 밤이 흘러갑니다. 이제 다시 황도(黃道)를 딛고 선 태양이 동양의 바다에서 다시 부활합니다.
모두들 눈을 비비며 깊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어느 새 부모님들은 아침 일찍 건너 재에 소를 매고 돌아와 아이들 먹일 조반(朝飯)을 준비합니다. 반상속에는 지장수가 찰랑이고 홍예칠색(紅霓七色) 신비한 여섯 곡식과 열두 향기 발하는 백과 진미가 그득합니다.
문득 눈을 들어 어머니를 바라보니 머리에 질끈 동인 수건에 아름다운 하늘 문양 (紋樣)이 있습니다. 소박하고 조화로운 삼태극(三太極)의 문양입니다. 어지러이 방황하던 하늘의 별들이 이제 다시 땅으로 내려와 자연의 이치를 밝힙니다. 하늘도 땅도 사람도 다시 천부(天符)의 둥근 원이 되어 하나가 됩니다.
새 시대가 열립니다. 정신의 개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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