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학술대회는 1997년-2000년까지 국립문화재연구소이 실시한 풍납토성 발굴조사 결과가 국내 고고학계에 일으킨 파장을 정리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그리하여 '한성기 백제 고고학의 제문제(Ⅰ)- 연대문제를 중심으로' 이라는 주제 아래 총 4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이날 토론의 주논점이 되었던 것은 풍납토성의 축조시기에 대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백제 고대 국가 형성 및 백제토기의 등장을 3세기 중·후반 (275년정도)으로 본 견해에 대해 발굴을 주도한 문화재연구소는 기원전 1세기 ~기원후 2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뒤 기원후 3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완성되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날 학술대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문화재연구소의 주장을 비판하는 쪽이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순발교수(충남대)의 ' 한성백제 고고학의 연구현황 점검'이라는 첫 주제발표가 이루어졌는데 박교수는 '풍납토성의 축조시기가 3세기 중·후반을 상회한다는 논의는 자료의 뒷받침이 없는 공허한 비학술적 주장의 되풀이에 지나지 않는다"며 기존의 백제 고고학 편년관을 확립했던 자신의 학술적 주장을 흐려놓는 문화재 연구소 주장에 비판을 가했다.
이와 함께 지금까지 밝혀진 축조시점을 보아 몽촌토성이 3세기 4·4분기에 먼저 축성되었고. 이어 풍납토성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이며, 이후 풍납토성에 비해 규모가 영세했던 몽촌토성이 왕의 행궁 또는 별궁 성격의 성으로 기능이 변화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였다.
이후 한성백제 시대 중앙과 지방의 토기 편년을 다룬 2편의 논문도 박교수의 주장을 기본 전제로 하여 논지가 전개되었다.
특히 문화재연구소가 풍납토성의 축조시기를 올려 보는 근거로 삼고 있는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결과에 대해 권오영(한신대교수)는 자신이 발굴한 경당지구 발굴 유물에 대한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결과를 제시하면서 이에 대한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면 경당지구 44호 건물지에 나온 시료를 문화재연구소에 보내어 두차례 연대측정을 해본결과 제일 연대가 올라가는 것은 기원전 170년~ 기원후 70년이며, 연대가 가장 늦은 것은 기원후 260년~550년으로 나오는 등 오차의 폭이 넓다는 것이다. 이에 서울대 AMS연구실에서 측정한 결과도 시료의 중심 연대가 기원후 100년, 240년, 400년, 560년 등 그 폭이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상황을 근거로 권교수는 국립문화재연구소 측의 주장의 근거인 연대측정결과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무모해보인다"고 하며 중국에서 이동해온 시간과 세전(世傳)되는 기간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백제의 유적에서 출토되는 중국 도자기등 외래유물을 통한 절대연대 자료의 축적이 오히려 유용한 자료가 될것이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신희귄(문화재청 학예 연구사,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풍납토성 발굴 담당)학예연구사는 시료에 대한 신빙성의 문제점 등을 제기하였지만, 토기 양식을 통한 견고한 상태편년 체제의 확립이 우선되어야 하며 실험실마다 오차가 큰 연대측정 결과에 대한 의존을 그만두자고 박순발교수는 강조하였다
이날 종합토론 사회를 맡은 이남규 (한신대) 교수는 " 이제 풍납토성 연대 문제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을 종식시키자며, 국립 문화재연구소 내부 연구자 의견만으로 가서는 안되며 한성백제기 고고학 연구자들의 의견을 모두 수렴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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