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와 폭력과 도착과 환각이 도처에 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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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와 폭력과 도착과 환각이 도처에 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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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문환, 첫 소설집 <럭셔리 걸> 선보여

이문환의 소설은 기괴하고 당혹스럽다. 섹스와 폭력과 도착과 환각이 도처에 난무한다. 「럭셔리 걸」의 일급 호스티스는 두드러기 때문에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끊임없이 설거지를 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하고, 「마술사」의 평범한 이십대 여자는 지하철에서 만난 기이한 남자에게 이끌려 직업적으로 몸을 팔게 된다.

「혜정과 형만과 나」에서 혜정은 모텔에서 약물에 취해 십수 명의 남자들에게 윤간당하고,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희롱당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주인공은 혜정이 자기 친구들과 동시에 사귀며 찍은 셀프 비디오를 함께 보며 그녀의 손을 빌려 자위를 한다.

이 섹스와 폭력과 도착과 환각은, 말초적이되 불편하고 익숙한 듯하나 낯설다. 그가 펼쳐 보이는 세계는 일상과 비일상, 현실과 비현실로 가를 수 없는 혼돈스럽기 그지없는 새로운 세계다.그 세계를 위태롭게 지탱하고 있는 것은 불안이라는 근원적인 원리이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아온 「마술사」의 혜정은 낯선 남자에 의해 열린 이면의 삶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킬까봐 불안해한다.

「20세기의 마지막 겨울」의 혜정은 자신이 노숙자를 살해했다는 사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어하지만, 그럴수록 노숙자들은 좀비처럼 끊임없이 증식해간다. 「럭셔리 걸」의 혜정의 팔에 돋아난 무수한 두드러기와 그로 인한 가려움증은 곧 혜정의 불안 그 자체이다. 그러나 불안은 공포와 매혹을 동시에 포함한다. 이문환 소설의 주인공들은 새로이 펼쳐지는 세계가 불쾌해 몸서리치지만, 한편으로 그 세계에 대해 저항할 수 없는 매혹을 느끼며 그 속으로 미끄러져들어간다.

문학평론가 장은수는 이문환의 소설이 "일상의 평온함과 괴물스러움, 미지의 삶의 괴물스러움과 기쁨 사이에서 두 겹으로 흔들리고 있으며, 그러한 삶의 비밀을 깨닫게 된 새로운 종족들의 생존술을 펼쳐놓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문환 소설의 인물들은 첨단의 유행 속을 활보하는 '럭셔리'한 '보보스'들이라도 설명한다. 이문환은 그 최신의 라이프스타일, 현대적인 풍속을 생생하고 자세하게 나열한다. 상품과 이미지를 능숙하게, 또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소비하는 그들은 이 세계의 이면이나 심층에 대해, 다른 세계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 세대의 감수성을 소리 높여 주장하거나 스스로 도취되지 않고 다만 그 매끈한 표면을 자연스럽게 체화하고 있을 뿐이다. 90년대 이후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온, 소비대중문화에 익숙한 이 세대의 감수성의 첨단을 이문환은 그저 담담하게, 또는 뻔뻔하게, 또는 조롱하는 듯한 어조로 무심하게 묘사할 뿐이다.

그러나 그 무심한 묘사는 은연중에 그 매끈한 표면에 드리워져 있는 공포의 그림자를 흐릿한 형태로 드러내 보인다. 평온한 듯한 일상에 알 수 없는 기이한 충동들이 스멀거리며 나타나기 시작하고, 어느덧 현실은 괴담이 되고, 괴담은 현실이 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에 잠깐 등장하는 에이즈와 관련된 일화처럼, '친구의 친구의 친구' '친구의 친구의 형' '친구의 친구의 오빠' '친척 친구의……' 등등이 주인공인 이야기, 그 시대의 공포를 반영하여 민담처럼 창작된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되풀이되고 있는 사건인지 알 수 없는 괴담이 그 시대의 불안을 가장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듯, 이문환의 소설은 이 세대의 불안과 공포의 진원을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눈물은 흔하지만 경이로움이 결핍된 시대에 누군가를 놀라게 하거나 불쾌하게 만들기란 쉽지가 않다"고 말하지만, 그의 소설은 아닌게 아니라 놀랍고 불쾌하고 난처하다. 그 난처함이 그가 묘사하는 세태와 풍속의 극단성 때문인지, 소설 속의 폭력과 도착에 대한 생리적인 불편함 때문인지, 또는 그의 소설이 드러내놓은 불안에 대한 공감 때문인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어쩌면 그의 소설 자체가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불쾌하고 괴물스러운 현실을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 것인지, 저 매혹적이고 괴물스러운 충동이 이끄는 환각을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 것인지, 이 난처한 세계에서, 이 난처한 세계에 대한 어떤 윤리가 가능할지 하는 질문 말이다.

이문환은 「모나드」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에서 모나드적 세대의 '진정한 사랑' 또는 윤리의 가능성에 대해 질문을 슬쩍 던져놓은 바 있다. "연인끼리는 상대의 삶에 간섭할 수 있는지를 확신할 수가 없"(「모나드」)는 세대에게 "자신을 사랑의 화신으로 만들어 온몸을 불사르게끔 하는" "아름다운 사랑"(「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 가능할까 하는 질문이 그것이다. 비디오 속의 모습만을 남기고 증발해버린 혜정처럼, 환각에 이끌려 질주하는 충동의 끝은 다시 환각과 이어지는 것일까?

이문환의 소설은 아직 충분히 보여주지 않았다. 이 첨단의 풍속에 내재된 균열과 심연이 어떻게 진화해갈지, 그 균열을 자연스러운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세대들의 자의식이 어떤 형태를 취하게 될지, 또 그들이 자신들의 윤리를 어떻게 마련해갈 수 있을지. 그의 소설이 앞으로 어떤 질문을, 어떤
답을 내놓게 될지, 다만 기대하고 지켜볼 일이다.

이문환은 1975년 서울 출생했다.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1996년 『세계의문학』 겨울호에 단편소설 「마술사」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한 일간지 문화부에서 기자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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