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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부역 옆으로 산길을 따라 난 눈꽃길 ⓒ 봉화군^^^ | ||
갑자기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 졌다. 며칠전에도 괜히 심심해지기도 하고 친구 소식이 궁금하기도 해서 전화 했더니 팔자 좋게도 외국 여행중이란다. 해서 오늘에야 전화 통화가 이뤄졌다.
자주 외국여행을 나가는 편인데 이번엔 캄보디아와 베트남쪽으로 같다왔다고 한다. 아직은 우리나라 보담은 잘살지 못하고 있지만 관광객은 많이 찾아와서 앞으로 관광 산업이 발전할 것 같다고 했다.
특히 앙코르 왓 사원은 발견한지 얼마되지 않은 사원으로 몇 천년 동안 어떻게 그렇게 유적지로서 보존이 잘되었는지 신기하다고 했다. 전화상이라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앙코르 왓이라는 사원의 역사적인 가치는 대단한 것같았다.
경상도 하고도 제일 북쪽에 위치한 봉화. 강원도와 경계지역인 봉화는 강원도 보다도 오히려 눈도 더많이 오고 춥기도 더 춥다.
겨울 이맘때면 가을걷이를 끝낸 논바닥에 볏짚에 불을 붙여놓고 불을 쬐던 생각이 난다. 내 위로 오빠와 나는 싸움을 자주 했다. 겨울방학이면 늘 심심하던 터라 아침밥 먹다보면 앞집 치과집 오빠가 아무것이야 하고 부른다.
그러면 나는 밥숟가락을 얼른 놓고 마루로 나와 신발부터 신는다. 위로 언니들이 있지만 8남매에 막내인 난 늘 외톨이 같아서 어울려 놀만한 또래 친구가 우리 동네에는 없었다. 해서 오빠를 놓치면 난 하루종일 오늘처럼 집안에서 왔다 갔다해야 한다. 먹을 걸 먹어봐도 이내 맛이없고 혼자서 뭘해도 영 기분이 나지 않아서 아침마다 난 오빠를 안 놓치려고 악착같이 따라붙곤 했다.
오빠 입장에서는 늘 어떻게 하면 도망갈까를 궁리하는 듯 했지만 악착같이 따라붙는 나를 떼놓기가 힘들게 되면 할 수 없이 데리고 가면서 항상 다짐을 받는다. "오늘은 발시럽다고 울지 않기" "오늘 집에 가자고 조르지 않기" 등이다. 갈 때는 철석같이 약속을 하고 간다.
그러나 처음에는 신나게 얼음도 타고 시케토(나무토막에다 칼날이나 굵은 철사로 만든 것)를 타면서 즐겁지만 차츰 발이 시리고 춥다. 처음엔 약속을 했으니 좀 참아본다고 참아보지만 얼음위에서는 더 이상 참을 도리가 없다. 그러면 "춥다" "가자" 하고 계속 졸라댄다.
그러면 오빠는 볏짚을 모아서 불을 지핀다(성냥이 어디에서 났는지는 지금도 궁금하다). 불 옆에 있다보면 그을음으로 콧구멍이 새카매지고 잠도 오고 해서 계속 집에 가자고 조르면 기어코 꿀밤 한 대 쥐어박히고 운다. 결국 오빠는 "내일은 안 따라오지" 하면서 또 다짐을 받는다.
오빠랑 싸우던 그 유년기가 내겐 늘 외롭고 쓸쓸했는데(할매는 남자들만 좋아했으므로) 학교 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친구가 생겼다. 나와 한 반인 옥희는 눈도 예쁘고 피부도 희었는데 늘 어딘가 아픈지 별로 말이 없었다. 하지만 나와는 친해서 학교 끝나면 옥희네 집에 가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런 옥희가 어느날인가부터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학교에서 우리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옥희네 집이 있었고 옥희네 집은 유기전을 했다. 학교에서 돌아올 때마다 늘 옥희네 집앞을 기웃거려 보지만 들어갈 용기가 없어 그냥 돌아오고 또 그냥 돌아오고 했다.
어느날 "오늘은 정말 옥희네집에 가야지" 하고 결심하고 큰 용기를 내서 "옥희야, 옥희야" 하고 대문에서 부르니 옥희 어머니가 힘이 하나도 없이 나오면서 이제 옥희 없다 하는 것이었다.
옥희가 없다는 것이 무얼 뜻하는지 몰랐다. 옥희가 죽었다는 것을 그후 한참 있다가 어떤 친구로부터 들었다. 가슴이 아리다고 해야 할까? 한동안 밥도먹기 싫었고 누구랑 놀기도 싫었다. 그 옥희를 잊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지나야 했다.
그러다가 오늘 전화한 이 친구와 한반이 되면서 가까워졌고 그후 오빠랑 만날 시간이 없어졌다. 어엿한 친구가 생겼기 때문에 오빠가 필요없어지게 된 것이다. 겨울이면 눈이 많이 오고 읍내를 돌아나가는 강물이라서 바람은 그야말로 칼바람으로 귀가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그래도 밤이면 하얀 눈을 밟으며 먼길까지 흰눈에 발자국을 내어가면서 친구네 집으로 놀러 다니곤 했는데 어느새 인생 오십이 가까워서 돌아보니 아주 아련하게 느껴진다.
시골 한 벽촌의 소녀에서 이젠 중년이 훌쩍 넘어선 아줌마를 지나가고 있다. 세월의 덧없음이 가슴 한 가득 밀려온다. 만약 내가 이 컴퓨터라도 배우지 않았으면 갱년기 우울증이 깊어졌을 것이다. 서로가 다 다른 인생의 길을 걷고 있고 외국여행 하는 친구의 말이 왠지 먼 낯선 내가 갈 수 없는 꿈의 나라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같았다.
그만큼 서로의 생활이 다 다르고 수 십년 다른 길을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동의 대화는 오로지 유년시절 고향의 이야기 그리고 겨울 눈꽃 이야기다.
해서 언제든 전화상으로도 대화가 끊기지 않고 이어질 수 있는 것일 게다. 난 그 친구를 통하여 외국의 문화를 한 토막씩 들을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리고 쌍방향 채널이 가능한 것은 유년시절을 함께 보냈다는 것과 고향이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늘 고향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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