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을 가리키면 달을 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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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을 가리키면 달을 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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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그런 시절이 있었다. 끊임없는 의문들이 잇달아서 솟아나던 시절이. 한 의문을 채 다 풀어내기도 전에 또 다른 의문들이 분수처럼 솟아나던 시절이 있었다. 아름다운 지적방황의 시절이었다고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지만, 당시의 나는 그 모든 궁금증을 다 풀지 않고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일종의 인식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강박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왜 아침이 되면 해가 뜨는 것이고, 해가 뜨면 사람들은 왜 직장으로 향해야 하는 것일까? 직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도대체 어떤 것들이 들어있는 것일까? 그들은 행복한 것일까? 그들의 삶에 만족하는 것일까? 만약 만족하지 않는다면 왜 그런 삶을 유지하는 것일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질문으로서의 가치도 없이 생각되는 그런 것들이, 그 당시의 나에게는 풀지 않으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은 큰 의문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책장들을 넘겨보아도 그런 질문들을 다루는 내용들을 찾기는 힘이 들었다. “단순히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삶을 유지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대답은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시대를 풍미하던 많은 서적들은 단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이야기 하고 있었을 뿐이다.

나의 질문은 보다 근본적인 것이었다. ‘태어났다는 사건’과 ‘살아가야 한다는 당위’성 사이를 잊는 연결부에는 뭔가가 빠져있었던 것이다. ‘태어났으므로 당연히 살아야 한다.’는 전제는 모든 가슴에 담은 의문을 풀기 위해 방황의 길을 떠난 사람들을 향한 모든 대답들에 스며들어 있었다. 그러나 전제라는 것 자체에 대한 정당성을 입증한 대답은 어디에서도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 고뇌한다.” 당시에 내가 동시에 품고 있던 삶을 의미롭게 살기 위한, 또는 세상의 이치에 대한 수많은 지적인 호기심에 대한 생각들을 위한 사색과 독서의 밑바닥에는 항상 이 생각이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랬기에 나는 다른 분야의 독서를 하면서도 항상 또 다른 무엇에 대한 의문을 함께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읽는 책이 가리키는 그 손가락 끝에 있는 진리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 너머에 한 겹을 더 벗기고 들어가면 무언가 숨겨진 또 다른 진리가 있을 것만 같았다. ‘세상에서 진리라고 가르치는 것들의 너머에는 혹 무언가 깊숙이 숨겨진 진실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내 머리는 층층이 다른 질문들로 가득 차 있었고, 무엇을 읽으면 그곳에서 얻은 희미한 단서를 가지고 또 다른 책을 찾아야만 했었다.

내가 읽는 책들은 단지 손가락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달을 찾고 싶었다. 나는 책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들이 왠지 단지 손가락 끝만을 보여주는 것 같았었다. 그 손가락의 끝이 가르쳐주는 단서들을 따라서 사유의 바다를 헤엄치다보면, 어딘가에 진리가 내가 찾아주기를 기다리고 바라며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보물이 가득한 섬에 관한 단서를 찾아서 온갖 고서를 파헤치는 탐험가와 같이, 나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기 위해 젊음이 주는 지치지 않는 정열을 조금도 아끼지 않고 불살라 넣었었다.

그러나 지적사유의 어디에서도 나는 그것을 발견할 수 없었다.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와 비슷한 고민들을 했었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존재의 이유를 정당화 한 것들을 읽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바라던 진리가 아니었다. 나는 그들이 말하는 그 이유로 내 지적인 방황의 종착점을 삼을 수가 없었다. 당시의 나는 거대한 건축물을 쌓고 있었다. 아름답고 한점의 오점도 없이 완벽한 건물을 하나 지어 내 영혼의 집으로 삼고 싶었다. 그리고 그 자그만 하면서도 결코 간단하지 않은 지적건축물의 기초를 받칠 돌이, 바로 “왜 살아있어야 하느냐?” 라는 의문이었다.

나는 결국 이런 생각으로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나는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존재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 세상에는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많다. 그래서 나는 존재해야 한다.’ 이것은 내가 찾아다니던 그런 영원불멸의 진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존재해야 할 이유로 삶기에는 충분한 대답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명제들을 나의 삶의 이유로 삼았고, 하나하나의 사유를 그에 맞는 흐름에 맞추어서 짜 넣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비로소 세상이 명쾌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나는 명쾌하게 서로 앞뒤가 맞지 않는 생각들을 지니고선,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할 만큼 무모했고 용감했었다. 지금의 나는 그런 말을 남 앞에서는 물론, 나 자신에게도 함부로 지껄일 자신이 없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그래야만 살아있을 수가 있을 것만 같았다. 당시에는 두 번째 이유가 더 강하게 느껴졌었다. 당시는 정말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할 만큼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나는 그것들을 쫒아 다니면서 비로소 내 존재의 이유에 대한 확신과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 내가 마침내 공부를 하지 않을 수가 없을 마지막 시간이 되었을 때쯤. 한동안 울렁이던 세상은 많이 조용해졌었다. 아니 어쩌면 내 마음속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울어대던 삶에 대한 열정이 수그러든 것인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나는 첫 번째 이유에 더 많이 매달리며 살아왔던 것 같다. ‘나는 존재하기를 원하고 있다.’ 라는 이 명제는 상당히 다양하게 응용될 수 있었다. 그 동안 밀린 공부를 압축해서 하여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수련의와 전공의를 마칠 때까지의 길고 험난한 과정을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는 이유가 되어주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 이유 속에 담겨있는 이기적인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논리적 근거로의 가능성들을 가끔씩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그 기초위에 쌓아왔던 정교한 지적인 사유물들과 상치되는 것이었다. 때로 나도 생활인으로서 단순한 생활인으로서의 삶에 충실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같은 기초위에 올려진 서로 조화되지 않는 건축물들은 부자연스럽고 서로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서로 손발이 맞지 않는 마음의 조각들을 모아서는 힘차게 미래를 향해서 돌진해 나갈 수 없었다.

개업을 한 후 마음에 조금의 여유가 생기자 나는 다시 두 번째의 명제로 되돌아갔다. ‘이 세상에는 내가 할 일이 많다.’ 마침 그때쯤 IMF가 생겨났다. 내가 차린 의원이 위치한 곳은 서울에서도 그리 넉넉지 못한 사람들이 보금자리를 꾸미는 곳이었다. 한때 풍요로 넘쳐나는 것 같아 보이던 서울의 거리는 다시 ‘할 일 많은 곳’으로 바뀌어버린 것이었다. 역시 첫 번째 명제는 두 번째 명제와 합쳐져야만 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쉬운 길이 아니었다. ‘할 일’을 위해서는 때로는 힘든 일을 하고도, 갈채가 아니라 비난과 따돌림을 받아야 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 ‘할 일을 위해서 살아가는 세상살이’는 좀처럼 쉼을 허락하지 않았다. 조금씩 쉬어가고 싶은 나태한 생각이 마음을 적셔오기 시작하면, 이미 내 마음 한구석에는 희미하게 죄책감 같은 것이 자리 잡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오늘 또 아침 해가 붉게 물들어 ‘나는 존재하기를 원한다.’라는 명제로 힘을 낸다. 그래서 또 다른 하루를 할 일을 찾아서 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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