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가 익어가고 서로의 사는 이야기를 하다보니 당연히 여자친구들의 이야기도 나왔다. 필자야 이미 결혼한 몸이라 대화에 끼어들 수 없음은 당연하고 가끔 훈수나 떠주는 편이었다. 그러다 한 친구가 3년 넘게 사귀는 여자친구와 아직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털어 놓았고 나머지 친구들은 그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이상하게 여기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지만 오히려 그것을 안타깝게 여겨 그들의 경험을 토대로 순수한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정신적 사랑도 중요하지만, 육체적 사랑도 뒷받침 되어야 하는거야'
'혹시 무슨 문제 있는거 아냐?'
'결혼을 전제로 사귄다면 굳이 앞뒤 가릴 필요 없잖아'
중간에 끼여 있는 필자로서는 그런 상황이 어색하여 가만히 술만 홀짝 거리다가 순수한 그 친구가 궁지에 몰린 듯하여 급기야 중재에 나서게 되었다.
'애네들 말은 굳이 성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지 말고, 자연스럽게 육체적 관계를 가지는 것도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키워가는데 도움이 될거란 소리야'
라고 말은 했지만 나의 '성의식'은 솔찍히 어디에 더 가까울까 고민해보게 된다. 성에 대한 지나친 순결의식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되는 현 사회에서 도대체 '성'이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기도 하다.
'성의식'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사건들 중에 동거라는 것이 있다. 최근에 화두가 된 스와핑이라는 것도 있지만 '동물의 왕국'에서나 보던 짝짓기가 아닌 이상 인간의 성에 대한 고민에서 거론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
동거라는 사건 하나만 두고 성의식을 가늠해보는 것이 무리가 있겠지만, 동거를 두고 성에 대한 손익분기점을 찾기 위해 안달해 가는 현실속에서 동거가 성의식을 가늠할 가장 현실성 있고 공감대를 얻기 쉬운 소재이기 때문이다.
먼저 상대를 더 잘 알기 위해 동거를 한다는 것을, 옷을 사기 위해 이것저것 옷을 입어보는 과정이라고 보자. 그러면 입어보고 막상 마음에 안들면 태연히 벗어놓고 나오면 그만이듯 그렇게 동거도 생각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아니다. 동거는 일종의 정신적, 육체적 생채기를 감수하고 행하는 것이며 그에 대한 피해는 보통 여성이 더 많이 짊어지고 있다.
또한 동거를 통해 상대를 더 많이 알면 과연 좋은 것인가하고 생각해 보자. 결코 좋지 않다는 결론이다. 선택의 여지는 좁아질 뿐만 아니라 그 기대치는 높아지기 때문이다. '살아보고 결정하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내가 책임질 상대'가 아니라 '나를 책임져 줄 수 있는 상대'로의 선택의 변화를 가져온다.
그리고 동거를 통해 내가 받아 들일 수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을 명확히 계산해 놓은 다음 그 자료를 토대로 결혼 후의 기대값을 계산한다고 생각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확률도, 변수도 무시한 지극히 현실만족적인, 대책없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상대와 결혼을 생각한다면 변수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는 것 보다 상대를 이해하는 기본적 능력을 키우는 것이 더 올바르다는 생각이다. 지금 이해 못한다고 절대 이해 못할 일도 아니며, 현재 마냥 좋다고 평생 그렇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혹, 최선의 선택을 위한다고 말한다면 이 또한 얼마나 이기적인가? 나의 선택에 후회가 없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남길 수 있는지 또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처럼 동거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필자의 성의식은 아마 극단적 보수쯤으로 평가될 것 같다. 이런 보수적 관점은 곧 순진한 놈, 이상주의자, 고리타분한 놈 등으로 표현됨으로서 상처를 받겠지만 개인의 가치관이라기보다 사회적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꿋꿋이 고수할 생각이다.
성서에서 불바다가 된 도시 '고돔과 소모라'의 백성들은 신으로부터 징벌 받기 전 자신들의 성의식이 진보적이고 개방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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