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나서 산행들 가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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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나서 산행들 가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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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4년만의 등산, 그 즐거움

^^^▲ 인왕산-결혼4년만의 등산을 꿈꾸며..
ⓒ 구현모^^^

결혼하면 한달에 한번씩은 산에 가자고 아내와 약속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니, 그땐 매주 가자고 했던 것도 같습니다. 운동삼아, 재미삼아 도시락 싸들고 산에 가는 풍경이 아주 쉽게 그려졌으니까요.

막상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주말에 무슨 큰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산이 저 멀리 있어 떠날 엄두를 못내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등산'을 인생의 황혼쯤에나 경험할 사치스런 여유로 치부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저렇게 살다가 아내는 문득 산을 찾습니다. 여유를 찾고 싶었는지 아니면 산에 올라 답답한 마음을 털어버리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내는 이번 주말 꼭 산에 올라가자고 했고, 마냥 좋아하는 딸아이의 흥분에 엉겁결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4살바기 딸아이를 데리고 정상을 정복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것이란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우리 가족이 정상에 도달해 서 있는 모습을 그려보니 가슴이 벅찰 정도입니다. 엉겁결에 대답하긴 했지만 이제는 제가 더 좋아합니다.

어느 산으로 갈지 정하기 위해 서울시 홈페이지에 들어가봤습니다. 서울명소라고 소개된 곳엔 가볼만한 산이 꽤 많습니다. 그중에 높이가 낮고 코스가 좋은 곳으로 인왕산을 골랐습니다. 청와대가 보인다는 것과 기괴한 바위들이 많다는 것도 선택에 한몫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사전조사를 끝내고 일요일 아침 아내가 준비한 정성스런 김밥을 챙겨들고 사직공원으로 향합니다. 인왕산 정복을 위한 여러 코스 중 사직공원에서 출발해 자하문을 거쳐 청와대 뒤쪽을 공략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날씨가 조금 흐린 것이 걸리긴 했지만 햇살이 너무 강한 것 보단 낫겠다고 위로하며 힘차게 등산을 시작합니다. 지민이에겐 산밑에서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정상까지 올라가기 위한 기름인 셈입니다.

처음 가보는 곳인데다가 워낙 산세를 접한 경험이 없어 가지고 간 지도는 무용지물이고 곳곳에서 길을 물어야 했습니다. 애초에 계획했던 코스에서 벗어나 어디쯤인지 그려볼수도 없었지만 어찌어찌하여 정상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정상이 얼마 남지 않음을 확인합니다.
ⓒ 구현모^^^

정상이 338M라지만 4살된 딸아이와 함께 올라간다는 것이 그리 만만치가 않습니다. 가파른 돌계단에선 아내가 앞에서 끌어주고 전 뒤에서 지민이 엉덩이를 붙잡고 밀어줍니다. 생각보단 잘 올라갑니다. 산밑에서 사준 아이스크림이 효과가 있나봅니다.

정상을 코앞에 두고 마지막 돌계단이 나왔을때 지민이는 퍼지고 맙니다. 못가겠다고, 힘들다고 떼를 쓰지만 제 귀엔 들어오질 않습니다. 오히려 지민이가 최연소 정상정복을 꾀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설렙니다.

물론 지민이보다 어린 아이들도 어른들 품에 안기고 업혀서 많이들 올라가고 있었지만, 전 왠지 혼자서 씩씩하게 올라가는 지민이가 자랑스럽기만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보라고 다그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조금만 더 가면 다왔노라고, 거기서 엄마가 싸준 맛있는 김밥을 먹자고 간신히 설득하여 막판 정상정복의 길에 박차를 가합니다. 드디어 더 올라갈 곳이 없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쾌감, 비록 얕은 산이지만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에 온몸이 흥분됩니다.

그런데 정상에 가면 '인왕산 정상'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혀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두리번 두리번 찾아보았지만 그런 건 없습니다. 정상표지 앞에서 멋지게 딸아이와 사진 한판 찍을려던 계획은 물건너 갔습니다. 뒤쪽 청와대가 보이는 풍경으로 멋진 포즈를 남기려던 계획도 전경들의 제재로 실현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약간의 아쉬움을 뿌듯함으로 덮어버리고 평평한 바위위에 신문지 깔고 챙겨온 김밥을 풀어 놓습니다. 배불리 먹고나니 내려갈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지민이가 과연 잘 내려갈 수 있을까 걱정도 들고 무엇보다 제가 먼저 지쳤기 때문입니다.

내려가는 길이 험해 곳곳에서 지민이를 안고, 업고 내려와야 했는데 아내에게 말은 하지 못했지만 다리가 후들후들 거립니다. 집안의 가장이 이렇게 약해서야 되겠냐는 자격지심으로 이를 악물고 내려옵니다.

조금 평평한 곳에서는 지민이를 목에다 태웠습니다. 올라오시던 할머니들이 젊으니까 좋다며 약 안먹어도 되겠다고 하시는데 그 약이 뭘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산밑에서 지민이에게 대견함의 선물로 또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것으로 결혼 4년만의 산행은 그 막을 내렸습니다.

늦가을 마지막 단풍구경과 결혼 후 한번도 해보지 못한 등산, 그리고 평소의 운동부족, 이 모든 것들을 해결하고도 산은 뭔가 또 다른 즐거움을 줍니다. 딸아이의 정상정복에 대한 가슴벅참이나 아내와의 신심단련에서 오는 내면의 충만함, 기괴한 바위, 검붉게 물든 단풍을 보며 느끼는 자연풍경에 대한 감탄 등이 그것입니다.

^^^▲ 인왕산에서 만난 코끼리 바위 - 참 신기합니다.
ⓒ 구현모^^^

앞으로 또 언제 산행을 나서게 될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아마 '겨울엔 춥고 위험해서 안돼'라고 핑계 대며 내년 봄으로 미루고, 봄이 되면 이것저것 바쁘다는 이유로 '가을에 단풍이나 보러가지'그러다가, 또 한해 그냥 그렇게 흘러보낼지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인 것 같습니다. 당장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더 중요한 것들을 뒤로 미루다 보면 평생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산행에서 느낀 가족의 소중함, 자연에 대한 경건함을 자주 맛보고 느껴야겠습니다. 미루지 말고 더 늦기 전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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