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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형 할인마트 ⓒ 구현모^^^ | ||
가을의 끝자락에서 '어떻게 인생을 멋지게 살아볼까'하며 낭만적 계획도 세워 보지만 아내의 쌀이 떨어졌다는 한마디에 그런 낭만은 씁쓸히 꼬리를 감추고 제 몸은 할인마트로 떠날 채비를 합니다.
쌀집에 전화해서 배달시켜도 되겠건만 우리 가족은 꼭 할인마트에서 쌀을 팔아다 놓습니다. 이유는 물론 가격입니다. 왕복 버스비를 더하고도 할인마트에서 '최저가'라고 내놓은 쌀이 더 싸기 때문입니다.
쌀을 팔러 가는 김에 찬거리도 준비할 겸 온가족이 쇼핑길에 나섰습니다. 온가족이래봐야 늘 저와 손잡고 다니길 좋아하는 아내와 그런 우리 사이를 질투하는 4살배기 딸아이 뿐입니다.
조그만 메모지에 큼직하게 필요한 품목을 다 써넣어도 여백은 많습니다. 이번엔 기필코 적어서 간 것만 산다고 마음을 다져먹습니다. 물론 미처 생각치 못해 빠뜨린 것도 있지만 대부분 충동구매로 장바구니를 채우기 때문에 긴장을 늦추어선 안됩니다.
지난 추석에 선물 준비하느라 왔었고, 또 저번달에 쌀이 떨어져서 왔으니 꼭 한달만에 다시 찾은 할인마트입니다. 토종 할인마트라는 그곳의 외벽엔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습니다. 낙엽이 그려져 있고 '알뜰쇼핑'이라고 큼직하게 적혀져 있습니다.
우리 가족의 쇼핑엔 몇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먼저 할인마트 안에 있는 패스트푸드점부터 갑니다. 거기서 감자튀김을 하나 사서 딸아이 손에 쥐어 줍니다. 감자튀김을 유별나게 좋아하는 딸아이의 1차적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남은 쇼핑 시간이 편안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나서 할인품목이 적힌 전단지를 펼쳐놓고 보물을 찾듯이 꼭 필요한 것 중에 정말 싸게 내놓은 것을 찾습니다. 웬만한 품목들의 할인가는 제 머리속에 자료정리가 되어 있으니 그것을 토대로 가격비교를 하기 시작합니다. 정말 싼 것도 있고 생색내기의 할인품목도 있습니다.^
정말 싸다 싶으면 대량 구매를 합니다. 특히 휴지나 샴푸, 비누, 식용유 등은 행사가격으로 하나씩 더 끼워줄 때가 있습니다. 그럴땐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라도 사놓습니다. 증정품을 주는 것도 많습니다. 식용유에 밀가루를 덤으로 주는데 직원에게 말만 잘하면 하나 더 붙여 주기도 합니다.
식료품은 제일 나중에 둘러봅니다. 신선하게 가져와야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저녁 마감시간이 다가올때의 떨이 상품을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바나나가 100g에 299원 하던 것이 어떨땐 88원으로 내려오기도 합니다. 특히 해삼류나 초밥, 튀김 등은 마감시간에 가격을 반토막 내놓습니다. 먹을만한데다가 평소엔 양에 비해 가격이 너무 센 관계로 마음껏 먹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기회를 잘 이용해야 됩니다.
주로 생필품이나 식료품을 사기 위해 할인마트에 들르지만 철이 바뀔때면 마네킹에 걸쳐져 있는 옷이 탐날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큰맘 먹고 사고 나면 꼭 후회합니다. 왜냐하면 한달쯤 후에 와서 보면 그렇게 멋있게 걸려있던 옷들이 옷걸이도 없이 통로 어딘가에 50%할인된 가격으로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할인마트에서 저희를 가장 괴롭히는 품목은 딸아이에 관한 것들입니다. 이 옷도 예쁘고 저 옷도 예쁩니다. 한글 쓰기책도 사주고 싶고 산수책도 사주고 싶습니다. 오만가지 인형과 장난감, 동화 비디오 테잎 들은 우리 부부를 끊임없이 괴롭힙니다.
하지만 딸아이 물건들을 살때면 좀 더 과감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 둘째 낳으면 또 필요할거야'라는 합리화로 유혹의 손길을 뿌리치지 못합니다. 감자튀김에 옷이나, 장남감 선물까지 받아 든 딸아이는 할인마트를 지상 천국으로 생각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역시 종이에 적힌 품목을 초과한 무거워진 카트를 끌고 계산대로 갑니다. 길게 줄 서 있는 사람들 속에 끼여 순서를 기다리다 보면 괜한 허탈감을 느낍니다. 어른들이 자주 쓰시던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씀이 새삼 와닿습니다.
또한 계산대 앞에 서면 꼭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대구에서 종종 온식구들을 이끌고 할인마트에 가노라면 아버지는 한번도 자신의 물건을 고른 적이 없습니다. 그냥 뒷짐만 지고 우리 뒤를 따라다니시다가 계산할 때만 저희들 앞에 나서십니다.
어떨땐 차에서 내리지도 않으시고 지갑만 내미실때도 있습니다. 너희들끼리 장보고 오라시며 주차장에서 혼자 담배만 피고 계실때도 있습니다. 학생이라는 이유로 마냥 아버지께 짐만 지워드린 셈입니다.
지금은 제가 그때의 아버지 위치에 있습니다. 좋은 옷이나 맛있는 음식에 눈길 한번 주지 않으시던 아버지를 이제야 이해합니다. 못난 아들놈에 며느리,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를 위해서는 당신 몸 치장은 사치였고, 현실적으로 계산이 서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버지처럼 살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건만 어느덧 저도 아버지와 똑같이 살아 가는 듯 합니다.
아무튼 계산을 마치고 '산 것도 별로 없는데 왜이리 돈이 많이 나왔지'라고 한마디 하며 할인점을 나섭니다. 20Kg 쌀포대를 들고 집까지 오는 길이 수월치만은 않지만 우리 가족 밥줄이기에 든든한 마음으로 돌아옵니다.
할인마트에서 언제쯤 허탈감과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지 않고 마음껏 쇼핑할 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아마 근검, 절약이 몸에 배어 그 많은 물건들을 보고도 꿈적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저희 아버지처럼 말입니다. 절제할 수 있는 생활을 배우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느낄 수 있음에 만족해야겠습니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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