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격 실추시키는 좌파 정당, 국민의 이름으로 해체시켜야 한다
스크롤 이동 상태바
국격 실추시키는 좌파 정당, 국민의 이름으로 해체시켜야 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거법 개정해서라도 중도포기후보 정부지원금 환수해야

고요한 밀림 숲속에 평화로움만이 가득하다. 햇빛이 내려찌는 한 낮에 토끼가 야자수 나무 아래서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있는데 야자수 열매가 토끼 머리로 뚝 떨어졌다. 잠결에 야자수 열매가 머리에 떨어지자 깜짝 놀란 토끼가 달아나면서 고함을 지른다. “하늘이 무너졌다” 이 소리를 들은 여우, 코끼리, 사슴, 원숭이, 다람쥐 등 밀림의 동물들이 영문도 모른 채 허겁지겁 뛰어 달아났다.

한 사람이 지나가다가 헐레벌떡 가쁜 숨을 내쉬며 달리던 다람쥐를 붙잡고 “왜 그렇게 모든 동물들이 공포에 질려 뛰고 있는가?” 물었다. “왜 뛰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남들이 뛰고 있으니 나도 무작정 뛰고 있는 거다.”

우리의 삶도 어쩜 영문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마냥 달려가는 동물들과도 같은지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우리 인간들은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자존심을 앞세우고 아상(我相:자신에 대한 오만함)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똑같은 존엄한 인간이고 도토리 키재기 정도의 학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타인의 존엄은 망각하고 오만 방자한 태도는 결국 자신의 손해로 돌아오게 된다.

어쩜 자신에게 상처가 생기고 부끄러운 자화상인 줄 알면서도 교만함을 가지고 편견을 부리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지를 알 것 같다. 불에 달궈진 쇠는 많이 두들겨야 제대로 된 칼이 나오듯이 끊임없는 자각을 통해 자신을 다듬어야 제대로 된 인간이 되리라.

지난 4일 대선 후보자 토론회를 보면서 이런 느낌을 강하게 갖게 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경청했고 또 정치 평론가들이 평론을 했기에 더 이상 언급하지는 않겠다. 다만 옛말에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듯이 적어도 대선 후보들이라면 좀 더 겸손함을 가슴속에 차곡차곡 채워나가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더구나 세계 수십 개의 언론이 주시하는 가운데 한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는 한 서린 말은 참으로 놀라웠고 그 분의 학식과 인격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다. 국격을 실추시키는 행위를 한 것이다. 또한 자신은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단지 28억원에 달하는 선거자금만 챙기기 위해 후보등록을 하고 도중에 야당 단일화를 핑계로 출마포기를 할 것으로 생각하니 국민들이 낸 혈세가 잘못된 법으로 흘러나가는 구나 하는 마음에서 분노마저 치솟는다.

불교는 자기를 바로 보지 못하는데서 모든 문제가 비롯된다고 본다. 자기에 대한 오해에서 잘못된 사고와 행동이 나오고 이로 인해 심각한 대립과 갈등, 심하면 분쟁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반대로 자기를 바로 보면 세상의 모든 혼란이 바로 잡혀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지금 정치권이 대선을 목전에 두고 시끄럽다. 그러면서도 서로 잘났다 하며 상대방을 비방하고 헐뜯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단순히 제도 고치고, 의원수 줄이고 중수부 폐지하고 사람을 바꾼다면서도 악습만 되풀이되고 있다. 근본인 의식개혁이 일어나지 않고는 개혁이 이루어질 수 없다. 현 상태로는 누가 되어도 정치 쇄신이나 비리척결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다.

정책이 표현만 다를 뿐 모두 듣기 좋은 말만 공약으로 내세운다. 참된 공약은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국민과 내가 하나로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 우리는 항상 ‘너’와 ‘나’, 그리고 ‘우리’라는 이름으로 나눈다. 그러다 보니 이해관계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이치를 100% 듣지 못해도 내가 하는 말만 제대로 깨우쳐도 10% 현인, 지도자가 될 수 있다. 그 10% 현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하, 세상이 이처럼 아름다운 줄은 몰랐다’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국민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잘 안다고 하면서도 정작 정치인들은 뚜렷한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욕망을 바탕에 두고 ‘나’라는 실체가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다. 그런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했다’ ‘무슨 생각을 갖고 있다’ 하는 식으로 항상 ‘내’가 전제되어 있다. 이게 문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지만 그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정말 가슴아픈 일이다. 하지만 더욱 가슴 안픈 일은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그 사람에게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차마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잃기 전까지는 그 잃어버린 것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우리가 무엇을 얻기 전까지는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한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생에서 슬픈 일은 누군가를 만나고, 그 사람이 내게 소중한 의미로 다가왔지만 결국 인연이 아님을 깨닫고 그 사람을 떠나 보내야 하는 일이다.

흔히 누군가에게 첫 눈에 반하기까지는 1분밖에 안걸리고 누군가에게 호감을 갖게 되기까지는 1시간밖에 안걸리며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기까지는 하루 밖에 안걸리지만 누군가를 잊는데는 평생이 걸린다고 한다. 앞으로 또 토론회가 남아 있어서 하는 말인데 제발이지 독설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자칫 어린이들이 볼까 두렵다.

“남에게 듣기 싫은 성난 말을 하지 말라. 남도 그렇게 너에게 대답할 것이다. 악이 가면 화가 돌아오니 욕설이 가고 주먹이 오간다” 굳이 공자의 말을 예로 들지 않아도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 어느 누군들 모르겠는가. 그러나 이 세상을 살다보면 정말 고운 말을 눈꼽만큼도 하기 싫은 사람도 더러 있게 마련이다. 그런 사람에게 고운 말로 포장을 하는 것은 어찌보면 위선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부글부글 끓는 속을 감추고 고운 말을 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정말 대단한 심성이고 지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이라 할 있다. 거칠게 대하는 말이 잠깐은 속이 후련하게 할지는 모르지만 두고두고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내 마음이 감당하지 못할 말은 되도록 하지 않는 게 좋다. 그런데 한 후보는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판단은 경청을 한 유권자가 하는 것이다. 좀 엉뚱하겠지만 사람은 세 번 놀라게 한 모과나무 이야기로 끝을 맺을까 한다.

사람들이 모과나무를 보고 세 번이나 놀란 것은 첫째 못생긴 모양에 놀라고, 향기에 놀라고, 마지막 세 번째로 떫은맛에 놀란다고 한다.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말이 생겨날 만큼 ‘나무참외’란 뜻의 모과(木瓜)에서 유래된 모과란 이름이 못생긴 것들의 대명사가 된 것에 대해서는 외양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시각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못생긴 모습으로 썩어가면서도 향기로운 모과처럼 정치인도 향기로울 수는 없을까. 하늘 보기가 부끄럽지도 않는가. 그래서 하늘이 속 끓이며 저렇게 지글지글 붉게 타는 것을….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메인페이지가 로드 됐습니다.
가장많이본 기사
뉴타TV 포토뉴스
연재코너  
오피니언  
지역뉴스
공지사항
동영상뉴스
손상윤의 나사랑과 정의를···
  • 서울특별시 노원구 동일로174길 7, 101호(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617-18 천호빌딩 101호)
  • 대표전화 : 02-978-4001
  • 팩스 : 02-978-830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종민
  • 법인명 : 주식회사 뉴스타운
  • 제호 : 뉴스타운
  • 정기간행물 · 등록번호 : 서울 아 00010 호
  • 등록일 : 2005-08-08(창간일:2000-01-10)
  • 발행일 : 2000-01-10
  • 발행인/편집인 : 손윤희
  • 뉴스타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타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towncop@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