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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순(왼쪽)과 황장엽^^^ | ||
1997년 4월 한국으로 귀환했던 황장엽(80) 전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는 27일 6년 만에 미국을 방문했고, 북한의 대남사업 실세로 김정일 위원장의 2인자로 군림했던 김용순(69) 대남당당 비서가 교통사고로 26일 사망했다.
황장엽씨는 북한내에서 사상 분야의 최고인물로 주체사상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인물이었고, 69세로 사망한 김용순은 대남사업을 총괄해 왔던 실세 중의 실세였다.
그러나 황씨는 북한체제를 등지고 가족까지 희생시키면서 혈혈단신(孑孑單身) 자기가 정립했던 주체사상을 파타하고 북한 민주화를 위해 탈북자단체연합회를 이끌면서 노구에도 불구하고 비판적 입장에 섰다.
이에 반해 김용순은 승승장구의 출세와 갖은 영화를 누리면서 그들이 말하는 '당과 혁명,조국과 민족 앞에 공을 세운 영웅’으로 추대되고 더욱이 ‘조국통일 위업을 달성하는 데 공을 세운’ 것으로 추앙을 받게 되어 이들의 늦은 인생역전이 너무나 대조적이다.
황씨는 1923년생으로 일본 중앙대학을 거쳐 소련 모스코바종합대학 철학부를 나와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조평통 부위원장,사회과학자협회 위원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중앙당 국제담당 비서를 지내는 등 화려한 경력자였다.
김용순은 1934년생으로 김일성종합대학 법학부를 나와 중앙당 국제부 부부장을 거쳐 국제부장, 조평통 부위원장,조선반핵평화위 위원장, 아태평화위 위원장,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중앙당 대남담당 비서를 지냈다.
황씨는 김용순보다 11살이 많지만 90년대 초 김 비서의 뒤를 이어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로 또한 93년도에는 김 비서에 이어 최고인민회의 외교부장에 선출돼 바통을 받기도 해 북한체제에서 두 사람 다 핵심 역할을 담당했었는데 세월이 흘러 한 사람은 사망하고 황씨는 과거의 적, 미국을 향하는 것이 인생의 아이러니가 아니겠느냐고 혹자는 평하고 있다.
김 비서는 죽어서도 영웅 대접받고 황씨는 처와 자녀 등 100여명의 친척이 숙청을 당하고 민족의 반역자로 매도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북한의 평화와 민주화를 위해 노구를 마다하지 않는 황씨의 선택과 신념은 현재 두 사람의 인생 아이러니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분명코 '황장엽' 그 에게 손을 들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뉴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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