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는 말이 화두다..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무슨 말인지 한번 살펴보고 가자.. 춘추전국시대 노나라에 미생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다리 아래서 애인을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그런데 애인은 오지 않고 소나기가 내려 강물이 불었다.. 그래도 미생은 자리를 뜨지 않고 기다리다 끝내 교각을 붙잡고 익사를 했다고 한다..
정몽준은 미생의 어리석음을 꼬집어 박근혜를 비판했다.. 국민과의 약속을 내세워 세종시 원안을 고수하는 박근혜의 행태는 미생의 어리석음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자 박근혜는 그에 대해 응수를 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참으로 어이가 없다.. 박근혜는 약속을 지키다 죽은 미생은 역사의 귀감이 되고, 약속을 어긴 애인은 손가락질을 받았다고 한다..
정말 그런가? 역사를 살펴보자.. 춘추시대 미생지신을 이야기한 사람은 다름아닌 소진이다.. 소진은 장의와 더불어 춘추전국시대 제후들을 농락하며 자신의 영달을 꾀한 종횡가(縱橫家)다.. 그 유명한 합종연횡이란 말도 이들로부터 유래되었다.. 소진은 자신을 미생에 빗대 스스로의 신의를 제후들에게 설득했다.. 그러나 이거 사실 웃기는 일이다..
소진 같이 혀에 기름 바른 교활한 책략가가 우직하고 미련한 미생에 자신을 비유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결국 미생의 신의를 높이 산 소진은 신의 자체를 중요시하기 보다는 입신양명의 책략으로 미생의 어리석음을 이용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실제로 미생을 예로 들어 자신의 신의를 주장한 자들 치고 신의 있는 자들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역사는 미생에 대해 가혹할 만큼의 비판을 한다.. 장자는 ‘도척편(盜跖篇)’에서 미생의 어리석음을 “미생과 같은 인간은 제사에 쓰려고 찢어발긴 개나, 물에 떠내려가는 돼지, 아니면 쪽박을 들고 빌어먹는 거지와 다를 바가 없다.. 쓸데없는 명분에 빠져 소중한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인간은 삶의 가치를 모르는 놈이다.”라고 힐난한다..
회남자(淮南子)의 설립후편(說林訓篇)에는 “미생의 신의는 차라리 상대방을 속여 순간의 위험을 피하고 후일을 기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전국책(戰國策)의 연책(燕策)에서도 “미생과 같은 신의는 단지 사람을 속이지 않는 것일 따름”이라고 한다.. 이렇듯 미생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대부분 작은 명분에 집착하는 미련함을 탓한다..
그런데 도대체 박근혜는 어떤 역사를 보았기에 미생이 역사의 귀감이 되며, 애인은 역사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다고 주장을 하는 것일까? 단지 사기(史記)의 소진열전(蘇秦列傳)에서 출세를 위한 소진이 혓바닥 놀림을 가지고 그리 주장을 한다면 박근혜의 역사인식 수준은 ‘산소가스’, ‘이산화가스’를 능가하는 열악한 수준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또한 그러한 역사인식보다도 더 큰 문제는 박근혜의 심각한 사고체계다.. 작은 명분, 하잘것없는 약속을 위해 목숨 같은 중요한 가치를 가벼이 여기는 경솔함과 미련함은 심각한 수준이다.. 무명씨님의 말씀처럼, 개인이라면 장자의 말처럼 그러다 쪽박을 차던 찢어발긴 개가 되던 상관이 없겠지만, 박근혜는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대권후보가 아닌가!
“네 어리석음에 우리를 끌어들이지 마!” 반지의 제왕에서 간달프가 한 이 말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래서 이유가 있다.. 세종시 문제 역시 그런 허접한 명분과 하잘 것 없는 약속을 위해 국가백년대계를 희생시키자고 우기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어찌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참으로 한심한 시추에이션이다..
박근혜의 그런 사고방식은 결격된 인생을 살아온 결과다.. 자기 스스로 이룬 것은 하나도 없이, 그저 부모의 후광에 힘입어 어린 시절부터 이날 이때까지 보통 사람은 꿈도 못 꿀 절대권력과 호사를 누려 온 사람이 어찌 제대로 된 삶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지내온 실존에 하자가 있었다면 본질 역시 하자투성이일 수 밖에 없다..
그게 박근혜의 인식체계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명제의 당위성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 약속으로 인해 더 큰 가치가 희생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다.. 박근혜의 문제는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를 모른다는 것이며, 그로 인해 하잘 것 없는 일에 쉽게 국익을 건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미생이다.. 세종시 수정안과 같은 국가의 중대사가 박근헤의 어리석은 미생지신에 휘둘리는 것이 참담한 우리의 현실이다.. 미생 같은 박근혜가 차기 대권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 국민이 직면한 비극이다.. 정말 박근혜에게 간곡하게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제발.. 제발.. 그 어리석음에 우리를.. 국민을 끌어들이지 말기 바란다..
작성자 시대유감 작성일 2010/01/18
요즘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는 말이 화두다..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무슨 말인지 한번 살펴보고 가자.. 춘추전국시대 노나라에 미생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다리 아래서 애인을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그런데 애인은 오지 않고 소나기가 내려 강물이 불었다.. 그래도 미생은 자리를 뜨지 않고 기다리다 끝내 교각을 붙잡고 익사를 했다고 한다..
정몽준은 미생의 어리석음을 꼬집어 박근혜를 비판했다.. 국민과의 약속을 내세워 세종시 원안을 고수하는 박근혜의 행태는 미생의 어리석음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자 박근혜는 그에 대해 응수를 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참으로 어이가 없다.. 박근혜는 약속을 지키다 죽은 미생은 역사의 귀감이 되고, 약속을 어긴 애인은 손가락질을 받았다고 한다..
정말 그런가? 역사를 살펴보자.. 춘추시대 미생지신을 이야기한 사람은 다름아닌 소진이다.. 소진은 장의와 더불어 춘추전국시대 제후들을 농락하며 자신의 영달을 꾀한 종횡가(縱橫家)다.. 그 유명한 합종연횡이란 말도 이들로부터 유래되었다.. 소진은 자신을 미생에 빗대 스스로의 신의를 제후들에게 설득했다.. 그러나 이거 사실 웃기는 일이다..
소진 같이 혀에 기름 바른 교활한 책략가가 우직하고 미련한 미생에 자신을 비유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결국 미생의 신의를 높이 산 소진은 신의 자체를 중요시하기 보다는 입신양명의 책략으로 미생의 어리석음을 이용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실제로 미생을 예로 들어 자신의 신의를 주장한 자들 치고 신의 있는 자들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역사는 미생에 대해 가혹할 만큼의 비판을 한다.. 장자는 ‘도척편(盜跖篇)’에서 미생의 어리석음을 “미생과 같은 인간은 제사에 쓰려고 찢어발긴 개나, 물에 떠내려가는 돼지, 아니면 쪽박을 들고 빌어먹는 거지와 다를 바가 없다.. 쓸데없는 명분에 빠져 소중한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인간은 삶의 가치를 모르는 놈이다.”라고 힐난한다..
회남자(淮南子)의 설립후편(說林訓篇)에는 “미생의 신의는 차라리 상대방을 속여 순간의 위험을 피하고 후일을 기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전국책(戰國策)의 연책(燕策)에서도 “미생과 같은 신의는 단지 사람을 속이지 않는 것일 따름”이라고 한다.. 이렇듯 미생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대부분 작은 명분에 집착하는 미련함을 탓한다..
그런데 도대체 박근혜는 어떤 역사를 보았기에 미생이 역사의 귀감이 되며, 애인은 역사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다고 주장을 하는 것일까? 단지 사기(史記)의 소진열전(蘇秦列傳)에서 출세를 위한 소진이 혓바닥 놀림을 가지고 그리 주장을 한다면 박근혜의 역사인식 수준은 ‘산소가스’, ‘이산화가스’를 능가하는 열악한 수준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또한 그러한 역사인식보다도 더 큰 문제는 박근혜의 심각한 사고체계다.. 작은 명분, 하잘것없는 약속을 위해 목숨 같은 중요한 가치를 가벼이 여기는 경솔함과 미련함은 심각한 수준이다.. 무명씨님의 말씀처럼, 개인이라면 장자의 말처럼 그러다 쪽박을 차던 찢어발긴 개가 되던 상관이 없겠지만, 박근혜는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대권후보가 아닌가!
“네 어리석음에 우리를 끌어들이지 마!” 반지의 제왕에서 간달프가 한 이 말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래서 이유가 있다.. 세종시 문제 역시 그런 허접한 명분과 하잘 것 없는 약속을 위해 국가백년대계를 희생시키자고 우기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어찌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참으로 한심한 시추에이션이다..
박근혜의 그런 사고방식은 결격된 인생을 살아온 결과다.. 자기 스스로 이룬 것은 하나도 없이, 그저 부모의 후광에 힘입어 어린 시절부터 이날 이때까지 보통 사람은 꿈도 못 꿀 절대권력과 호사를 누려 온 사람이 어찌 제대로 된 삶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지내온 실존에 하자가 있었다면 본질 역시 하자투성이일 수 밖에 없다..
그게 박근혜의 인식체계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명제의 당위성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 약속으로 인해 더 큰 가치가 희생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다.. 박근혜의 문제는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를 모른다는 것이며, 그로 인해 하잘 것 없는 일에 쉽게 국익을 건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미생이다.. 세종시 수정안과 같은 국가의 중대사가 박근헤의 어리석은 미생지신에 휘둘리는 것이 참담한 우리의 현실이다.. 미생 같은 박근혜가 차기 대권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 국민이 직면한 비극이다.. 정말 박근혜에게 간곡하게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제발.. 제발.. 그 어리석음에 우리를.. 국민을 끌어들이지 말기 바란다..
시대유감
출처 엔파람
20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