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령 시도로 탄핵 된 한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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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령 시도로 탄핵 된 한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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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엄령 도박의 실패와 윤석열의 생각
- 역사의 반복, 계엄령이 남긴 충격적 유산
- 민주주의와 삶의 자유가 없는 삶은 무엇일까?
대통령을 탄핵하자며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 2024.12.14.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14일 비상계엄령 시행에 실패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대통령(윤석열) 탄핵소추안에 찬성표를 던졌고, 전국적으로 대규모의 탄핵 집회(시위)를 촉발했다.”

영국의 BBC는 홈페이지 메인화면에 이 같은 소식을 전하고, “계엄령 도발이 왜 실패했으며, 한국에서는 왜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는가?” 등 깊이 있는 보도를 했다.

이날 국회에서는 두 번째 탄핵을 시도했다. 첫 번째는 윤석열이 소속된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탄해 표결을 위한 본회의에 참석을 하지 않아 회의 자체가 불성립되자 야권을 중심으로 두 번째 탄핵을 시도해, 204, 85, 기권 3, 무효 8표로 탄핵안이 가결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최소한 23(12, 기권 3, 무효 8, 합계 23)가 부결이라는 당론에서 이탈한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되었고,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14일 오후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후, 수많은 반()윤 시위대가 국회 의사당 밖에서 축하행사를 가졌으며, 군중은 다양한 불빛을 보이는 응원봉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고, 머리 위에서는 불꽃놀이가 터지는 등 마치 축제의 장이 됐다.

탄핵을 당한 윤석열은 담화에서 계속해서 끝까지 싸울 것이며,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말하며, 이번 표결을 자신의 대통령직에 대한 일시적 중단이라고 묘사했다. 헌법재판소에서 내란이냐 아니냐를 따지면서 자신은 결코 패배하지 않을 것이며, 다시 대통령직을 찾아오겠다는 강한 결기(?)를 보이기도 했다.

만일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을 기각을 할 경우, 윤석열은 대통령으로 복귀할 것이며, 그럴 경우, 한국은 엄청난 소용돌이 정국이 되어, 한국의 미래는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비극의 바다속으로 빠져 들 수 있다.

윤석열은 여러분의 비판과 칭찬, 지지를 가슴 깊이 새겨 끝까지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직 정지에 대한 강한 부정적 의식을 드러내면서 마치 내가 다시 대통령되어 처절한 복수라도 하려는 듯한 느낌을 풍기기도 했다.

그의 도전적인 발언은 이번 달 초에 단명한 계엄령 선언에 대해 사과했던 어조와 현저히 달라진 것이긴 하다. 윤석열은 수개월간의 정치적 교착 상태 끝에 군사 통치를 시도하며, 자신의 정부를 약화시키려는 북한의 시도를 차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국회의원들에 의해 몇 시간 만에 그 선언이 뒤집혔다. 윤석열의 비상계엄령 사태는 6시간 천하로 마감됐다.

윤석열의 탄핵에 대한 국민적 지지는 매우 강했으며,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4분의 3이 그가 물러나기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일 윤석열에 대한 탄핵 시도가 국민의힘 의원들이 청문회를 보이콧하면서 실패한 이후, 국민들의 압력이 며칠간 계속되자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탄핵동의안에 대한 투표를 하도록 하는 국민들의 압력이 들끓었다.

14일 윤석열 소속 정당에서 12명이 찬성표를 던져 탄핵안이 통과되는 데 필요한 3분의 2(200표 이상)의 찬성을 얻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표결 결과를 발표하면서 국민 여러분, 이제 연말이 조금 더 행복해지시기를 바라며, 취소된 연말연시 행사들이 모두 회복되시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우리의 희망은 국민의 손에 달려 있다. 우리의 희망은 강하다고 말했다. 한파에 시달리는 서민 경제의 일부라도 회복시키는데 동참해 희망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의 말이었다.

이제 헌법재판소는 윤의 탄핵을 유지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가 직위에 복귀할 수 있는지에 대해 판결을 내릴 최장 180일 이내에 결정을 해야 한다. 탄핵에 찬성하는 판결을 내리면, 다음 대통령을 위한 선거는 60일 이내에 실시되도록 돼 있다.

수만 명의 탄핵 시위대가 혹독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국회 의사당 앞에 몰려 들었고, 사람들은 이번 투표를 민주주의의 승리로 환영하며, 윤석열이 영구히 사임하기를 바라는 결의를 밝혔다. 물리치료사인 심 모씨는 법안이 통과돼서 너무 기뻐요... 하지만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어요.”라며 눈물을 흘렸다고 BBC가 전했다.

여의도 탄핵 집회 현장에 걸린 현수막 / 2024.12.14. 

심씨는 우리는 윤의 탄핵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우리는 계속 지켜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루돌프 의상을 입은 또 다른 집회 참여자인 두 여성은 “(윤석열이 사라지면) 즐거운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다고 BBC는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BBC는 탄핵 반대 집회의 모습도 전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친윤 집회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그의 지지자들은 투표 소식을 듣고 침묵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자리를 떠나기 전에 분노에 찬 모욕을 퍼부었다.

투표의 성공은 국민의힘의 지지에 달려 있었는데, 최소한 8명의 여당의원들이 탄핵동의안을 제출한 야당 의원들에 합류해야 통과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7일 첫 표결에서는 국민의힘이 본회의장을 퇴장하면서 회의 자체가 불성립됐다.

지난 3일 밤 윤석열의 단기 계엄령 시도 이후, 한국은 거의 2주 동안 혼란과 불확실성에 직면해 왔다. 윤은 이른바 반국가 세력과 북한의 위협을 언급했지만, 그의 움직임은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그의 국내 정치적 문제로 인해 이루어졌다는 것이 곧 분명해졌다.

비상계엄령이 선포된지 155분 만에 190명의 의원이 계엄령 해제 요구안을 통과시켜 계엄령은 무효화 됐다. 당시 많은 야당 의원들은 비상한 마음으로 국회 의사당 울타리를 넘어 마치 군사작전을 펴듯 의사당 내 투표장에 들어갔다.

윤석열은 나중에 사과했지만, 12일 그는 자신의 행동을 옹호하며, 국가의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했으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윤의 29분짜리 망상의 연설은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움직이게 했고, 갤럽 코리아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통령의 지지율은 역대 최저인 11%로 떨어졌다.

대통령 탄핵은 한국에서 처음 있는 일이 아니며, 한국은 2016년에 이 과정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축출한 적이 있다. 당시 검사였던 윤석열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지휘했고, 그로 인해 박 대통령은 탄핵됐다. “총칼로 흥한 자 총칼로 망한다는 말처럼 탄핵으로 흥한 자 탄핵으로 망한다는 말이 추가 됐다.

* 계엄령 도박의 실패와 윤석열의 생각

비상계엄령이 단명하면서 그 도박을 실패로 끝났다. 그때 윤석열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윤은 늦은 밤 담화에서 대한민국 의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국가의 의지를 시험했으며, 계엄령을 선포한다고 선언했다.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그의 정치적 미래는 위기에 처하게 됐으며, 거리에는 시위가 벌어지고 그에 대한 탄핵 절차가 진행 중이었다.

계엄령은 1979년 쿠데타로 당시 군부 통치자가 암살된 사건으로 인해 한국에 마지막으로 도입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은 그 사건과는 거리가 멀었고, 또 그 뒤를 이은 억압적인 세월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국은 안정적이고 번영하는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윤석열은 어두운 세력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기 위해 군사 통치를 도입했다고 과대망상적인 주장을 폈다. 그는 야당이 통제하는 국회를 범죄자들의 소굴이라고 불렀고, “정부를 마비시키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 담화가 있은지 몇 시간 후, 그는 격노한 시위대와 의원들이 국회 의사당 밖에 모이면서 물러서야 했고, 의원들은 국회 안으로 들어가 명령을 부결했다.

사실 그의 충격적인 선언은 2022년 한국 역사상 가장 근소한 차이(0.73%)로 대선에 당선된 이후로 그가 이루지 못했던 권력을 잡으려는 시도였다. 2022년 후반, 그는 핼러윈 (Halloween) 당시 서울 이태원에서 159명의 젊은이가 사망한 끔찍한 군중 압사 사고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으로 엄청난 비판을 받았고 아직도 그 비판은 유효하다.

그런 다음 그의 아내 김건희가 디올 핸드백을 선물로 받은 것이 들킨 후, 그에 대한 수사를 요청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항상 뉴스 헤드라인에 오르는 거대한 스캔들이었다.

올해 4, 그의 정당 국민의힘은 의회 총선거에서 참패해 윤석열은 궁지에 몰리게 됐다. 이번 주만 해도 그는 국가 예산을 놓고 야당 의원들과 정치적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윤석열은 검사 시절 특활비, 특경비 등을 무차별적으로 사용했으나, 그 사용처를 밝히지 않는 등 국민들의 세금을 무분별하게 낭비를 한 전력이 있다.

그런 그가 예산 등을 삭감했다며, 국가를 망치려 하는 세력이 바로 야당이라며 반()국가 세력 혹은 친북(종북)세력이라고 낙인을 찍었다. 그러면서 그는 정치는 마치 사전 속에나 있늠 단어인양, 일체 야당을 상대하지 않는 등 오만한 자세만을 취해왔다.

윤석열은 국민들에게 이미 탄핵이라는 말이 매우 조심스러운 시기에도 그의 지지율은 20% 언저리에 장기간 머물러 있었다. 윤의 담화에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단서가 몇 가지 있다.

당장 분명해진 것은 그가 야당이 통제하는 의회에 좌절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윤석열은 야당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파괴하는 괴물이라고 불렀다. 북한과 반국가 세력의 위협에 대한 언급은 그가 또한 한국의 진보적 정치인을 공산주의자라고 부르는 우익 보수층의 지지를 얻기를 바랐음을 시사한다.

일부 국민들은 윤석열이 3가지 중독증에 갈린 사람이라며 한국 미래가 큰 일 났다며 우려했다. 3가지 중독은 권력 중독, 유튜브 중독, 알코올 중독자라고 부른다. 대통령직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공적 개념이 전혀 없는 사람이요, 자신이 좋아할 만한 극소수의 유튜버의 의견에 몰입하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며, 거의 매일 술을 마셔 자신의 뇌에 타격을 주는 생활로 공적 직위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많았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한남동 관저에서 용산 대통령실로 출근하는데 이른바 가짜 출근을 자주 했다는 것이다. 전날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아침 일찍 기상을 할 수 없어, 빈 차로 대통령실에 가도록 하고, 정작 본인은 술이 깬 후에 출근했다는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벌어졌다. 이 같은 술버릇은 대선 캠페인 시절에도 있었다고 한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탄핵 집회/ 2024.12.14.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과 정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계엄령 선포는 많은 한국 국민이 잊으려 했던 시기를 섬뜩하게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뉴스 아나운서들이 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19805월 대부분이 학생이었던 민주화 운동가들이 계엄령에 항의하기 위해 광주 거리로 나섰을 때, 군대는 폭력으로 대응했고 약 200명이 사망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의 처참한 장면들이 떠오르게 했다.

계엄령은 1979년부터 1981년까지 3년간 지속되었지만, 그 전에도 수십 년 동안 군사 통치가 있었으며 1987년까지 계속되었다. 그 당시 한국은 반정부 활동가들이 공산주의 간첩으로 몰려 체포되거나 살해당하는 등 의심이 가득했다.

그러나 윤석열은 선거 운동 기간 동안 권위주의 장군 전두환을 칭찬했고, 그가 민주주의 활동가들을 탄압한 것을 제외하고는 국정을 잘 처리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중에 사과를 강요받았고 전두환 정부를 옹호하거나 칭찬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그것은 대통령이 권력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윤이 계엄령을 선언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문이 몇 달 동안 한국 정치권에 돌았다. 9월에 야당 지도자들과 당원들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선언했다. 당시에 대부분은 그것을 너무 극단적인 선택이라고 일축했다. 터무니없는 괴담 혹은 음모라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그런 행동을 한 것은 그 이상의 무언가, 즉 기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첫 여성 지도자로 권력 남용과 부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됐다. 그녀의 전임자인 이명박은 주가 조작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그는 2020년에 부패와 뇌물 수수 혐의로 17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또 다른 전 대통령인 노무현은 수백만 달러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던 중 2009년에 자살했다. 대통령들의 비극이 줄을 이었다.

한국에서 기소는 거의 정치적 도구가 되었고, 야당이 휘두르는 위협이 되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왜 그렇게 과격한 조치를 취했는지 부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의 동기가 무엇이든, 윤의 경력은 이 일에서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은 안정적인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시끄러운 나라다. 그리고 또 다른 권위주의적 독재를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했다.

윤석열은 1980년대 이래 국가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심각한 도전을 거부한 후, 이제 의회와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됐다. 14일 그는 탄핵이라는 심판을 받게됐다.

* 역사의 반복, 계엄령이 남긴 충격적 유산

BBC고재학은 경찰이 젊은 여성 집단을 냉혹하게 총으로 쏴 죽이는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소개했다.

87세의 노인 고 씨는 ”19604월이었다. 학생들은 독재 대통령 이승만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를 시작했다. 고 씨는 정부 건물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창밖을 내다보니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하는 것이 보였다. 각 대학에서 시위가 있었고, 모두 앞에 모였다... 그때 총격이 가해졌다.“고 술회하면서 며칠 후 계엄령이 선포됐다.“고 말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민주주의의 평화로운 등대로 널리 여겨지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한국은 처음 40년 동안 주로 독재자가 통치하는 동안 계엄령을 16번이나 겪었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이제 한국인들에게 힘들게 얻은 권리로 깊이 소중히 여겨지고 있다.

윤석열이 이번에 계엄령을 선포한 것도 민주주의 통치 기간 주 45년 만에 처음이다. 과거 상처의 역사 DNA가 특히 한국인들의 촉발적이고 그렇게도 강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킨 이유이기도 하다.

집이나 식당에 있었던 국회의원들은 거의 즉각적으로 침대나 테이블에서 뛰쳐나와 국회로 달려가 의사당 울타리를 넘어 계엄령을 철회했다. 과거가 현재를 살려낸 것이다. 2024년 한국은 물론 아시아 최초의 여성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가 묘사한 1980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의 사상 최대의 비극이라 할 참상들이 교훈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통상적으로 살아 있는 자가 죽은 자를 위로한다고 하지만, 거꾸로 죽은 자가 산 자를 다시 살리는 역설이 한국인의 사회적 유전자라고나 할까? 수백, 수천 명의 일반 시민이 국회의원들을 몰아내라는 명령을 받은 완전 무장을 한 계엄군과 장갑차 등을 막기 위해 자발적으로 의사당 주변에 모였다.

일부 군인들은 명령을 선뜻 수행하고 싶지 않았던 듯, 군중을 해산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늑장부렸다. 실제로 계엄군은 부대에서 출발할 때, 무슨 일로 출격하는지를 몰랐다고 한다. 계엄령을 기획하고, 실행하려는 극소수의 고위직들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3일 밤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친북 반국가 세력을 없애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북한으로부터 진짜 위협이 있다고 믿는 일부 남한 사람들에게 혼란을 야기했다.

하지만 윤의 텔레비전 발표를 계속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으로 됐다. 그는 그러한 세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고, 그들이 누구인지 설명하지 않았다. 윤은 이전에 자신의 개혁을 방해하던 반대 세력을 묘사하기 위해 비슷한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대중은 그가 실제로는 자신의 정치적 적들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전의 계엄령 기간도 지도자들에 의해 국가를 안정시키고, 때로는 북한이 심어놓은 공산주의 반군을 몰아내기 위해 필요하다고 정당화되기도 했다. 구시대적 행태를 21세기 디지털 시대, 인공지능(AI)에 적용하려는 아날로그적 무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언론의 자유와 이동의 자유를 제한했다. 야간 통금과 체포가 흔했다. 폭력적인 충돌이 종종 발생했는데, 가장 지울 수 없는 것은 1980년 전두환이 광주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학생 시위대를 다루기 위해 계엄령을 연장했을 때였다. 잔혹하기 그지없는 군사 탄압이 시작되었고, 그 이후로 대량 학살(Genocide)로 이어졌다. 공식 사망자 수는 193명이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수백 명이 더 사망했다고 믿는다.

결국 1988년에 민주주의로 이행했고, 정부는 대중의 압력이 커진 후 처음으로 자유롭고 공정한 대통령 직접 선거를 치렀다. 하지만 그 전 수십 년은 독재국가의 의식을 영구적이고 심오하게 형성했다.

많은 한국인들의 대부분은 계엄령에 대한 트라우마, 깊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같은 것을 계속 반복하고 싶지 않은 게 인지상정이다. 나이가 등 사람들은 그러한 참혹한 역사의 현장을 몸소 겪었지만, 이른바 요즈음 MZ세대들은 그러한 경험이 있을 수 없다. 과거의 트라우마를 겪는 어른 세대는 후진국의 굴레 속에서 살았다. 그러나 이들 어른들의 후손인 요즘 MZ세대들은 최소한 중진국, 혹은 선진국 한국에서 자랐고, 자라고 있다. 어른들과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다.

MZ세대들은 어른들을 두고 고리타분한 아날로그 세대라며 무시한다. 어른들은 MZ세대가 고생도 해보지 않고 부모들이 쌓아온 경제적 이득만을 누리며, 아무 생각 없이 생활한다고 야단친다. 이런 현상도 세대 간 갈등의 요인 중 하나이다. 그러나 MZ세대들이 이번 탄핵 시위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내면서도 세계사에 없는 새로운 시위 문화를 창출해 내고, 정치적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구닥다리 어른들의 구닥다리 생각을 반성시키고 있다.

민주주의가 부여한 자유는 단순히 시민 사회의 번영으로 이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윤석열의 계엄령 선포이다. 어떤 이는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로 민주주의 유지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묘사했다.

탄핵 집회 현장으로 가기 위해. 여의도 지하철역. 북새통 /2024.12.14. 

한국의 민주주의 빌드업 과정은 눈부시다.

첫째 민주적 선거 이후 35년이 넘도록 한국의 창조 산업은 번창했고, 드라마, TV , 음악, 문학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이러한 창조 산업은 국가의 과거에 대한 자체 렌즈를 돌려 너무 어려서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역사를 생생하게 전달했다.

한국에서는 독재 정권 시절을 다룬 드라마가 넘쳐나고, 광주 항쟁과 같은 사건은 대중문화 속에서 영속화되었다. 비극의 역사가 대중문화의 소재로 그 뿌리를 더 깊게, 더 넓게 하고 있다.

일부는 한국 최고의 스타가 출연한 블록버스터로, 작년의 인기 배우 황정민이 출연한 역사 드라마 ’12.12 : 그날‘(12.12 : The Day)이 있다. 이 영화는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암살 이후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일어난 정치적 혼란을 묘사한다.

윤석열의 계엄령 선언 영상을 본 순간 그 영화가 떠올랐다. 지금 그 역사가 반복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또 다른 이는 최근 인기를 끌었던 서울의 봄202412월 현재 재현됐다며 소름이 끼친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러한 경험 유전자가 여의도로, 때로는 광화문으로 모여들게 한다.

한국은 영화와 다큐멘터리에서 그 시대의 시각적 표현을 한 작품이 많다. 이러한 작품을 통해 끔찍한 과거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뿐이지만, 그래도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MZ세대이다.

젊은 시민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돌아올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 계엄령 하의 삶을 결코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부모와 연장자 친척들로부터 그것을 두려워하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SNS에 널리 퍼진 전화 통화가 있다. 군대에 간 아들과 아버지의 통화 내용이다.

아버지 : 너 언제 (비상) 연락왔어?

소대장 아들 : 10분 전 비상 출근 명령이 내려왔어.

아버지 : 상황이 뭐냐?

소대장 아들 : 지금 자다가 일어났어요.

아버지 : 계엄령 내렸다. 비상계엄 내렸다. 잘 들어라. (북한) 도발 아니다. 대통령이 그냥 내린 것이다. 네 목숨 지키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민간인을 공격하거나 살상하는 행위를 절대 하면 안 된다. 알았어? 소대원들 잘 지키고, 네 목숨 지키는 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다. 너는 계엄 때 군대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지 않느냐. 너 실탄 지급 받고 애들 다뤄야 한다. 네 소대원들 잘 다뤄라. 엄마한테 빨리 전화해라. 엄마 걱정 안 하게 말 잘하라.

소대장 아들 :

한국인들이 모두 계엄령을 반대하는 것만도 아니다. 일부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계엄령은 물론 그 이상의 엄혹함도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한국외대의 국제정치학과 조교수인 메이슨 리치는 부분의 한국인은 민주주의를 엄청나게 높이 평가하고, 전후 시대의 권위주의를 후회한다면서 국가는 권위주의 과거의 수많은 측면, 특히 공산주의 전복을 막기 위해 어떤 억압적 조치가 얼마나 정당화되었는지에 대해 여전히 매우 분열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인구의 상당수, 특히 노년층 사이에서는 계엄령이 과거에 안정과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했다는 견해가 있다.

과거 한때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이념 전쟁으로 정의되는 시대가 있었다. 경쟁하는 이념은 충돌로 이어졌고, 군부가 개입하면 상황이 안정될 것이다. 질서를 회복하고 자유 민주주의를 제대로 수립하는 과정이었다는 주장이 특히 나이든 분들의 광화문 집회 현장엔 많다.

여기에 질문이 하나 있다. ”민주주의와 삶의 자유가 없는 삶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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