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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의 뒤로 멀리 천황봉이 보인다 ⓒ 대전푸름산악회(cafe.daum.net/ksc69) 산지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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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뒤덮인 계룡산의 설경은 엄청났다. “왜 계룡산의 설경이 아름답다”고 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지난 22일에 대전푸름산악회(cafe.daum.net/ksc69)에서 마지막겨울산행으로 계룡산 관음봉을 오른다고 하여 일찌감치 참석을 통보했다. 전에는 대전역 등 중앙로에서 동학사주차장까지 101번인가 단 한 번에 가는 좌석버스를 타면 되었는데 지금은 지하철로 유성온천 역까지 가고 그곳에서 107번 버스로 환승해야한다. 금액(전에는 좌석요금인 1400원이었는데 지금은 지하철1,100원+버스 1,400원=2,400원)으로도 손해, 시간으로도 손해다. 대전시버스관계자는 환승 등의 이점을 설명하겠지만 이것은 잘못된 처사로 보여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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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격적으로 산행하기전에 한컷 ⓒ 대전푸름산악회(cafe.daum.net/ksc69) 산지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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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결지로 표시된 동학사 버스주차장에 내린 시간이 9시14분경이라 잠시 짬이 있어 김밥(한 줄에 2천원)을 두 줄 사고, 따끈한 어묵(한개 700원)도 두 개 먹었다. 대전에 비해 역시 비쌌다. 약속시간인 30분이 되자 회장이 버스에서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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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룡산 코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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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열다섯 여명의 회원들이 모였고 10시부터 산행이 시작됐다. 오늘 산행코스는 탐방안내소-큰배재-남매탑-삼불봉고개-삼불봉-관음봉-은선폭포-동학사 입구란다. 동학사가 소재하는 계룡산이야 많이 와 보았지만 거의 대부분을 막걸리에 파전으로 한잔하거나 계곡에 발 담그고 백숙안주로 소주나 까던가 했지, 또 등반이라고 해야 기껏 남매탑까지만 와 보았지 삼불봉, 관음봉까진 처음 등반하는 것이라 걱정도 됐지만 한라산 백록담까지 등반 성공한 저력을 믿기로 했다.
계룡산은 무학대사가 주봉인 천황봉(845m)에서 쌀개봉(828m), 삼불봉(775m) 등 15여개의봉우리로 이어진 능선이 흡사 ‘닭 벼슬을 한 용(龍)의 형상’이라고 한데서 이름이 유래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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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불봉 능선에서 바라본 천황봉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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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봉의 일출’을 계룡팔경의 으뜸으로 꼽는다. 일부에서는 계룡산의 주봉인 ‘천황봉’을 일본의 천황을 연상시킨다하여 바꾸어야한다고 하지만, 두 왕(천왕봉, 임금봉)을 거느리고 있다하여 ‘천황봉’이라고 불리기에 굳지 바꿀 필요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산행을 시작하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돌길이다. 돌계단을 한없이 오르내리는 것이 계룡산 산행의 시작이다. 날이 춥다고 해 준비를 많이 했는데, 오르다보니 하나하나 씩 배낭으로 들어가고 ‘헥-헥’거리다 눈이 쌓인 곳은 미끄러워 낙상에 대비 준비한 아이젠을 차고 그러다 큰배재를 지나 ‘남매탑’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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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매탑에서 삼불봉쪽과 갑사쪽으로 가는 갈림길의 이정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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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남매탑’의 정확한 명칭은 ‘청량사지쌍탑(淸凉寺址雙塔)’이다. 이 중 ‘청량사지 5층 석탑’은 1998년 9월 15일 보물 제1284호로 지정되었다. 1950년대에 도괴된 것을 1961년에 복원하였다. 높이는 490㎝이다. 1층 기단 위에 세운 5층 석탑이다.
이곳에서 ‘청량사’라는 명문이 찍힌 와당이 발견되어 ‘청량사지’라 부르게 되었으며, 일명 ‘오뉘탑(남매탑)’이라 부르는 탑 2기 중 하나가 ‘청량사지 오층석탑’이고, 다른 하나는 이것과 같은 해 보물 제1285호로 지정된 ‘청량사지 칠층석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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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매탑’으로 불리고 있는 ‘청량사지쌍탑(淸凉寺址雙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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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탑’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신라 성덕왕 때 상원조사(上原祖師)가 이곳에 암자를 짓고 도를 닦고 있었다. 어느 날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목이 아픈 시늉을 하여 보니 목에 비녀가 하나 걸려 있었다. 손을 목에 집어넣어 비녀를 뽑아주고 사람을 잔인하게 잡아먹지 말라고 꾸짖었더니 호랑이는 이제 살았다는 듯 고맙다는 표시를 하고 사라졌다. 다음날 호랑이가 또 나타나 이번에는 정신을 잃은 처녀를 물어다 놓고 사라졌다. 승려는 처녀를 방으로 옮겨 정성을 다하여 치료해 주었다.
며칠 뒤 깨어난 처녀는 경북 상주에 사는 김화공의 딸로 다음날 혼인을 하기로 되었는데 호랑이에게 물려오던 날 밤 뒷간에 갔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깨어보니 이곳에 있는 것이라고 자초지종을 말하였다. 마침 한겨울이라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처녀는 승려와 함께 겨울을 나게 되었는데 이것도 인연이니 부부의 연을 맺기를 간청하였다. 그러나 승려는 흔들리지 않고 함께 수도에 정진하자고 거절하였다.
봄이 되어 본가로 돌아간 처녀는 부모에게 승려와 의남매를 맺고 한평생 불도를 닦겠다고 하고 다시 암자로 돌아왔다. 처녀의 부모는 감복하여 암자 자리에 청량사라는 절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이를 기념하여 상원조사의 제자 회의화상이 두 개의 불탑을 세워 그 뜻을 기렸고, 사람들이 그 탑을 오누이탑이라고 불렀다“
는 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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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불봉에서 관음봉으로 가는 능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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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탑‘에서 잠시 한숨을 돌리고 다시 ’삼불봉‘으로 향했다. 곳곳에 '추락 주의'라는 푯말이 말해주듯 위험한 곳도 있으나 정해진 등산로로만 가면 된다. 삼불봉 고개를 지나 계단을 지나고 지나 나타난 삼불봉(775.1m)은 설경으로 유명하다. 눈이 있는 주위경치를 감탄 속에 감상하였으나 삼불봉을 지킨다는 고양이는 만나지 못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관음봉으로 향했다. 관음봉(816m)으로 오르는 길은 계단의 연속이다. 좁기도 해 조심조심하며 오르고 올라야만 했다.
가면서 나타나는 주위의 경치는 일품이었다. “아! 이래서 힘들게 땀 흘리면서 산을 오르는 구나”싶었다. 그리고 우연히 뒤를 살펴보니 몸이 불편하여 오르지 않겠다던 용감한 女 전사들도 관음봉을 오르고 있었다. “역시 대단한 대한민국의 아줌마”임을 맘속으로 연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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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음봉 정상을 향한 계단을 마지막 피치를 올리며 오르고 있다 ⓒ 대전푸름산악회(cafe.daum.net/ksc69) 산지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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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봉을 오르면서 나타나는 설경과 전체적인 계룡산의 전경은 “왜 계룡산을 명산의 반열에 올렸는지?”를 짐작하게 했다. 관음봉고개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눈 맞으면서 바람 속에서 덜덜 떨면서 먹는 도시락과 컵라면의 맛은 뭐랄까? 해본자만이 안다. 산행 때마다 ‘맛난 쇠주’를 준비하시는 ‘산지기’님으로부터 쇠주2잔을 대포로 연거푸 얻어 마시고 ‘작은사랑’님이 건네준 컵라면국물을 먹으니 고갈됐던 힘이 다시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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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바람 속에서도 즐거운 점심시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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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하는 길이지만 은선폭포로 향하는 길은 경사가 심해 위험했다. 더군다나 눈이 쌓인 길이다. “넘어지면 끝장이다”는 판단에 조심조심하며 내려오다 보니 높이 35m의 녹음암벽에서 비류직하(飛流直下)하는 절경의 폭포가 나타났다. 이 폭포는 동학사 계곡의 유일한 폭포로 옛날 신선이 숨어 살던 곳이라 하여 ‘은선폭포’라 불린다고 한다. 단애위에 의연하게 자라는 소나무와 온갖 수목으로 어우러진 폭포 주변의 4계절은 항상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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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멀리 'V'자형 산봉우리가 ‘쌀개봉(828m)'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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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물이 없었다. 그만큼 ‘가물다’는 증거다. ‘은선폭포의 운무’는 계룡팔경 중 제7경으로 지정되어 있다. 조금 내려오다 보니 ‘쌀개봉(828m)’을 알리는 팻말이 붙어있다. 팻말 정면으로 바라다 보이는 'V'자형 산봉우리가 ‘쌀개봉’으로, 형상이 마치 디딜방아의 쌀개와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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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학사 입구의 향아교(香牙矯)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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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잘 정비된 등산로를 따라 내려오다 보니 동학사를 알리는 향아교(香牙矯)가 나타났다. 이제부터는 동학사다. 동학사대웅전을 지나면서 부처님 전에 배를 올리고 ‘무사한 산행과 베풀어준 건강’에 감사했다. 그리고 동학사입구까지 걸으면서 “다음 계룡산산행 때는 천황봉, 장군봉 등 넓디넓은 계룡산 곳곳을 다녀보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동학사 우체국 앞 두부전문점에서 회원들과 함께한 뒤풀이. 거기서 쇠주 몇 잔 더 먹고 ‘3월 산행’을 기약했다. “산행하고 쇠주 먹고 취했으나 지금 나보다 행복한 넘 없을 걸”이게 당시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