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심판자 조정래
거룩한 심판자 조정래
  • 안형식 논설위원
  • 승인 2008.05.08 22: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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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 연구소와 조정래의 맥놀이 사상(3)

 
   
  ▲ 조정래
ⓒ 이동우의 북세미나
 
 

2. 거룩한 심판자, 조정래

1) 거룩한 심판자

조정래는 친일자들에 대한 심판과 독재자에 대한 심판에 지번을 두고 그의 모든 작품에서 오만한 심판자로 등장한다.

조정래에 의하면 친일자는 역적이다. 그는 6.25 사변의 발생을 친일과거사를 정돈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부득이한 전쟁으로 묘사한다.

태백산맥을 통해 등장하는 북한의 인민군은 오히려 친일과거사를 정돈해 주기 위해 나타난 해방 전사들이며 이들과 맞서서 싸운 국방군은 무능한 독재자 이승만의 졸개들로 묘사된다.

미군은 한국인을 능멸하며 만행도 서슴지 않는 잔악한 오랑캐로 등장한다. 조정래에 의하면 미군은 강간도 서슴지 않는 털북숭이 짐승들이며 하체가 큰 동물들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조정래는 남한체제에 대해 노골적으로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태백산맥을 통해 염상구와 염상진을 대조하여 우회적으로 부정할 뿐이다.

그는 남한이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다는 사실에 눈길을 주며 6.25 전쟁사에서 미군이 얼마나 잔학하게 한국인을 학살했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 신랄하게 비난한다. 남의 전쟁에 개입하여 죄 없는 국민을 학살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강정구의 맥아더 장군 동상 끌어 내리기와 한홍구의 김일성 찬양이나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찬양이나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나 같은 맥락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국적으로 가지고 적국인 북한을 찬양하는 일에 전심을 다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고급이단자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박정희 대통령 죽이기”에 몰두되어 있으며 그 맥락의 최고봉은 노무현이며 그 이상은 김대중이다.

조정래의 문학은 세 차례의 변신을 통해 점프하고 있다.

“태백산맥”(한풀이 문학)으로 시작하여 “아리랑”(맥놀이 문학)에서 친북좌파 성향의 정점을 이룬다. 이 중에 자신이 신봉하는 공산주의가 1991년 무너지고 안병직 교수 등이 공산주의를 버리고 뉴라이트로 전환하자 “한강” (단절문학 혹은 분단문학)을 내놓고 자신과 자신의 문학을 변호한다.

시쳇말로 꼬리를 내렸다는 뜻이다. 한국 내에서도 알아주는 부르주아가 되었으니 이제 자신이 획득한 재산과 명예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이것들을 보호하겠다는 뜻이다.

조정래 문학의 특징은 한풀이에서 출발하여 맥놀이로 한바탕 먹고 마시며 뛰어 놀고 난 뒤에 단절문학 혹은 분단문학으로 전이된다.

분단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자신과 자신의 문학을 충분히 변호했고 여론을 통해 충분히 변호되었다고 간파한 조정래는 “글 감옥”에서 스스로 문을 열고 나와서 문단의 어른으로 좌정한다.

북한과 남한의 골육상잔이라는 소재를 채용하여 작품화하여 돈도 벌고 베스트셀러작가라는 명예도 얻었다.

유명인사가 된 조정래를 취재하여 사상의 지번을 확인하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한 기자들은 거절당했다. 조정래를 취재하려면 굵직한 직함을 가진 대기자 정도는 되어야 인터뷰를 할 수 있다. 그간 기자들은 조정래의 사상의 지번을 확인하고 싶어서 수차례 질문을 했으나 그 때마다 조정래는 위에서 인용한 말 그대로 자신을 포장했다. 다시 한 번 들여다보자.

“... 당신은 사상적으로 성분적으로 무슨 주의자냐고. 굳이 그렇게 분류하고 싶다면, 정의와 진실을 실현시키고자 하니까 진보주의자고, 민족적 자존을 지키고자 하니까 민족주의자고, 그 어떤 간섭이나 억압 없이 예술 창작을 하고자 하니까 자유주의자이다. 그러나 이런 분류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문학을 섬기며 남은 생애를 흠 없이 살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 서러운 역사의 땅에서 진실을 찾아 헤매며 글을 쓰다가 갈 예술가일 뿐이다.” (조정래)

아주 포장을 잘했다. 거룩한 문학가요 예술가로 그럴듯하게 포장했다.

앞서가는 지식인이기 때문에 진보주의자로 불러 달란다. 자신은 북한 민족까지도 아우르면서 사랑하는 통 큰 민족주의자란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창작을 하고 있는 예술가이니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법으로 보장되어 있음에 따라 얼마든지 자신의 친북사상을 주입시켜 놓은 작품 활동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단다.

그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독자에게 있지 자신에게는 전혀 책임이 없단다. 이토록 좋은 세상에서 마음껏 예술가로 살도록 간섭하지 말란다. 다시 태어나도 소설을 쓰겠단다.

전쟁이 일어나면 군수품 장사를 하는 자들만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군수품을 빼돌려 민간에 팔아서 돈을 버는 자들도 있기 마련이다. 돌이켜 보면, 6.25 전쟁 후에 남대문 시장에는 빼돌린 미군의 P.X 물품이 넘쳐났는데 없는 것이 없었다. 있는 자는 이것을 사서 입고 먹었다.

이승만 정권의 농림부 장관이었던 죽산 조봉암은 미군 P.X를 통해 시거를 구입해서 피웠다고 전해진다. 당시 미제라면 우는 어린아이도 울음을 그칠 정도로 가치 있는 물건이었다. 없는 자는 미군이 먹다 남긴 짬밥(잔반)을 싼값에 사서 꿀꿀이죽을 만들어 먹고 살았다.

미국은 6.25 전쟁에서는 목숨을 바치며 남한을 지켜 주었고 전후에는 구제품과 의약품 그리고 고아원을 세워 죽어가는 한국인의 생명을 구원해 주었다.

조정래 당신 같으면 할 수 있었겠는가? 만약에 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전 재산을 정리하여 북한에 가서, 북한의 어린이들과 북한 인민들의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을 구원해 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왜 남한에서 당신이 그토록 미워하고 저주하는 부르주아로, 동맹국 미군의 보호를 받고 있는 남한의 국민으로 살고 있는가? 예술가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의 의무가 면해지는가? 예술가라면 주적인 북한을 마음 놓고 찬양해도 된다는 뜻인가?

2) 김정일에 대한 조정래의 충성심

조정래는 2004년과 2007년에 평양을 다녀왔다.

2004년 방북은 '평양 어깨동무 어린이병원' 개원식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조정래는 후원 회원 자격으로 방북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변형윤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사장, 리영희 한양대 명예 교수, 소설가 조정래씨, 황상익 서울대 의대 교수, 임현진 서울대 교수, 한용외 삼성문화재단 사장, 박영훈 SK 고문, 정운영 중앙일보 논설위원 등과 함께 다녀왔다.

2007년에는 남북정상회담에서 남한의 문화인 대표자격으로 방북단원에 포함되어 방북했었다.

조정래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증오심을 가지고 있다. 독재자라는 것과 일본군 출신이었다는 것에 대한 증오심이다. 그런 그가 대를 이은 독재자 김정일에 대해 존경심을 더하여 경외심까지 드러냈다.

MBC 백분 토론의 손석희 진행자와의 생방송 전화 인터뷰를 통해서였다.

손석희 / 진행 : 잘 아시는 것처럼, 잘 모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녀오시느라고. 그 사이에 우리 언론에서 많은 부분을 다뤘는데요. 예를 들어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 문제 등등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많이 표한 바 있어요. 왜냐 하면 첫날 표정이 너무 굳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아무래도 2000년 당시의 활기찼던 모습은 아니지 않느냐, 이렇게 해서 그런 얘기들이 많이 나왔는데 직접 보시니까 어떤 것 같았습니까?

조정래 / 소설가 : 건강 문제는 전혀 이상이 없었습니다. 왜냐 하면 저는 그 분하고 두 번 악수를 했는데 마지막 백화원 초대소에서 악수를 할 때 저를 ‘태백산맥’ 작가라고 소개를 하니까 피곤했던 표정이 밝게 변해서 잡았던 손을 더 힘주어 잡는데 제 손이 으스러질 정도로 힘이 강했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의 건강은 목소리와 악력, 손아귀 힘으로 대개 구분하고 있는데요. 목소리도 초대소 큰 홀이 꽝꽝 울릴 정도로 높고, 술도 포도주를 끝없이 계속 마시는 엄청난 주량을 과시하는, 건강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 쪽 언론도 조금 조심해줘야 되는 게 상대방이 서로 할 이야기를 가지고 마음을 합하기 위해서 가는 것인데 정상회담인데 신속한 보도는 좋지만 ... 마치 회담을 반대하거나 방해하거나 해방하는 것처럼 그렇게 상대방 감정을 거슬리게 하면 어쩌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를 안내하는 사람이 한 버스에 3명이 탔는데 그 사람이 만나면 매일 하루 지난 다음부터 이야기를 합니다. 신문이 왜 이 모양이냐, 우리 회담하지 말라는 것이냐, 이렇게 모독할 수 있느냐, 이렇게 항의를 하는데 제가 할 말이 없지 않습니까.

손석희 / 진행 : 또 우리는 언론이 좀 자유롭게 쓰다 보니까 그런 것도 있다 라고...

조정래 / 소설가 : 자유는 책임이 따르는 것이 자유입니다. 자유는 방임이 아닙니다. 그 기본도 모르고 언론이 무슨 일을 합니까?

손석희 / 진행 : 아무튼 언론보도에 대해서 섭섭한 점이 많이 있으셨던...

조정래 / 소설가 : 섭섭한 게 아니고요. 입장이 난처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게 만들어버립니다. 이건 말이 안 되는 것이죠. 나라 망치는 것이죠. 나라를 잘 되게 하기 위해서 간 사람들을 뒤에서 망치는 짓을 하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3) 조정래가 말하는 민족주의는 저항의식(혁명이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경제제일주의로 사회를 바라보는 인식에 우려를 보이는 작가들이 적지 않다. 대규모 토목공사로 환경훼손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이 걱정되고, 남북문제에 관한 접근방식 역시 동포애적 관점이 아닌 실용·경제주의로 전환될 가능성이 보인다. 교육정책마저 자본에 맡기겠다는 태도도 문제가 있지 않은가. 물질중심주의와 경제제일주의 탓에 사람들의 삶이 어려움에 처한다면 문학은 이에 저항할 것이다." (도종환)

한국작가회의 도종환 사무총장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민족문학작가회의=> 한국작가회의로 간판을 바꿔 달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특이한 점은 “민족”이라는 단어를 가치론적 개념 즉 이데올로기로 말했다는 점이다. 가치론적 개념 안에는 이데올로기적 혁명이론이 근저에 깔려 있다.

“세상은 다민족·다문화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민족'이란 가치론적 개념을 가지고 활동하던 시기는 20~30년 전이다.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다. 식민지와 분단체험을 거치며 우리에겐 민족이란 개념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민족주의의 범위가 그 당시와는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넓어졌고, 이를 담아낼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외국문인들과의 교류가 있을 때 민족이란 단어 때문에 '극좌단체가 아닌가'라는 오해를 받는 것도 문제였다. '소수의 재야문인단체'라는 이미지를 털고, 명실상부 한국의 문학인을 대표하는 조직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인권과 평화, 자유와 통일, 환경 문제 등에서 우리 단체가 견지해온 태도는 바뀐 이름과 상관없이 앞으로도 유지될 것이다" (도종환)

사실상 좌파문인들의 온상이었던 ‘민족문학작가회의’는 간판을 바꿔 달은 이유에 대해 해외에서 극좌 세력으로 비쳐지고 있다는 점에 대한 부담을 먼저 말했다.

이는 고은 시인과 조정래, 황석영 등의 좌파들의 작품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국가적인 지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벨문학상 수상작에서 탈락했다는 자괴감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민족문학작가회의’는 간판을 바꿔 달고 인권과 평화, 자유와 통일, 환경 문제 등으로 보수정권에 저항하는 단체로 남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이 간판까지 바꿔달며 변신을 시도한 배경에는 어떤 일이 있었으며 어떤 일을 해 놓았기에 서둘러 간판까지 바꿔 달았는가 이에 대한 의문점이 생긴다.

저간의 사정을 알려면 인혁당 사건부터 더듬어 살펴보는 것이 좋다.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이 터졌다. 1965년 1월 20일 선거공판에서 반공법 위반으로 도예종, 양춘우는 각각 징역 3년,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나머지 11명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판결에 대하여 검찰은 불복, 항소심을 제기하였고, 그 해 5월 29일 열린 항소심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원심을 파기, 피고인 전원에게 유죄선고를 내리고, 도예종. 양춘우 외에도 박현채를 비롯한 6명에게 징역 1년,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였다.

1974년 10월 17일 유신헌법이 선포되자. 각처에서 반대시위가 일어났다. 중앙정보부는 인혁당 사건에 연루되었던 주모자들을 주목했고, 1975년 4월 8일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23명을 구속하면서 2차 인혁당 사건으로 발표했다.

이중 도예종.여정남.김용원.이수병.하재완.서도원.송상진.우홍선 등 8명은 사형을 선고 받았고, 나머지 15명도 무기징역에서 징역 15년까지 중형을 선고받았다. 사형선고를 받은 8명은 대법원 확정판결이 내려진 지 불과 20시간 만인 4월 9일 형이 집행되었다.

'인혁당'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등장한 것은 지난 64년과 74년 두차례 였다.

'1차 인혁당사건'은 64년 8월14일 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북괴의 지령을 받고 대규모 지하조직으로 국가변란을 획책한 인민혁명당 사건을 적발, 일당 57명중 41명을 구속하고 16명을 수배 중에 있다"고 발표하면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1차 인혁당 사건이 발생한 후 10년이 흐른 74년 4월,'2차 인혁당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중앙정보부가 74년 유신반대 투쟁을 벌였던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을 수사하면서 배후ㆍ조종세력으로 '인혁당 재건위'를 지목, 이를 북한의 지령을 받은 남한 내 지하조직이라고 규정한 사건이다.

1974년 4월 25일 중앙정보부는 "북한의 지령을 받은 인혁당 재건위 조직이 민청학련의 배후에서 학생시위를 조종하고 정부전복과 노동자.농민에 의한 정부 수립을 기도했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으로 민청학련 1천24명이 연루된 '인혁당 재건위 및 민청학련' 사건에서 2백53명이 구속 송치되었다. 이 가운데 인혁당 관련자 21명,민청학련 관련자 27명 등 1백80여명이 긴급조치 4호,국가보안법,내란예비음모,내란선동 등의 죄명으로 비상보통군법회의에 기소됐다.

1975년 2월 이철,김지하 등 민청학련 관계자들은 대부분 감형 또는 형 집행정지로 석방됐지만, 1975년 4월8일 대법원은 도예종 등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 8명에 대한 사형을 확정했다. 국방부는 재판이 종료된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전격적으로 사형을 집행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임헌영은 1979년 적발된 共産혁명조직인 ‘남조선민족해방전선(南民戰) 사건’ 등 두 차례의 공안사건 연루전력을 지닌 인물이다. 남민전은 안용웅(安龍雄) 등이 월북해 김일성에게 사업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북한으로부터 통제를 받아왔고, 공산혁명이 이뤄지면 북한군에 지원 요청할 것을 모의했었다.

이들은 공산혁명 성공시 중앙청에 게양할 붉은 별이 그려진 대형 ‘전선기(戰線旗)’를 준비했는데, 이 깃발은 74년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당한 도예종 등 8명이 입던 옷으로 만든 것이었다.

인혁당 사건 이후 일단의 좌파 문인들은 반공정권의 눈을 피해 지하에 숨어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김대중과 문익환, 백기완 등 재야인사로 포장한 좌파들은 한총련 등 대학생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시위대로 앞세워 배후에서 시위를 주동했다.

문익환, 황석영, 임수경 등은 방북하여 김일성 찬양과 충성맹세로 반공정부를 농락했고 이로 인해 민주화 운동은 친북운동임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문학작품을 통해 친북을 해왔던 박현채, 임헌영, 조정래 등 친북작가들은 민주화 운동으로 포장한 친북세력들에게 정신적인 자양분을 공급한 숙주가 되었다.

5.18 사태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되었다. 권좌에 오른 김대중은 5.18 재단을 세워주고 무려 8차례의 보상과 승격 끝에 5.18을 민주화 운동의 최고봉으로 승격시켜 성역화시켰다. 이것도 모자라 북한의 혁명과업 수행영웅에 준하는 “5.18 유공자”로, 국가유공자의 지위와 명예를 주었다. 그 수가 무려 4800명에 달한다. (광주 뉴시스, 2004-05-12)

 

 
   
  ^^^▲ 이영훈 교수의 '대한민국 이야기' 책 표지^^^  
 

조정래에 대한 비판은 뉴라이트 운동인 ‘시대정신’을 통해 서서히 가속도를 내고 있는 중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이영훈 교수는 최근 출간한 '대한민국 이야기-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강의'의 서평회를 27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배재대학교 학술지원센터에서 개최 했다.

이 교수의 '대한민국 이야기'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강의'라는 부제처럼 2006년 2월 출간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의 해설판이다.

이 교수는 이 책에서 좌파적 민족주의에 대한 혐오감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역사의 주체로 자리 잡은 “민족”이라는 단어를 걷어냈다.

걷어낸 이유는 단지 어떤 인간들의 이기심으로 차용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선량한 조선을 강포한 일본이 유린했다는 민족주의 사학도 동의하지 않았다.

일본 치하의 역사는 근대화를 불러 온 나름대로의 가치도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이 교수는 민족주의자들에게 '식민지 근대화론자' 혹은 '식민지배 찬양론자'로 불리며 매도당하고 있다.

서평회 개회사에서 이 교수의 스승인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소설가 조정래 씨가 이 교수를 '일본인 이상으로 일본인답다'고 비판한 사실을 언급하며 "남의 인격을 모독하는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안 교수는 "조 씨가 문화인이라면 문화인의 정도를 걸어야 한다. 문화인이라면 제기된 문제에 대해 정정당당하게 대응해야지 멀쩡한 남의 인격을 비난하는 것으로 면책하려고 비겁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조 씨의 인격이 어느 정도인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뉴라이트 재단이 발행하는 '시대정신'에 조정래 씨의 소설 '아리랑'이 상당한 역사 왜곡을 담고 있다고 비판하는 글을 기고했으며 조정래 씨는 최근 동국대 강연에서 "이 교수는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연합뉴스, 2007-06-28 09:16)

안병직 교수는 공산주의 멸망 후에 자신의 좌파적 사상노선에서 돌이켜 사상전환을 하고 현재까지 뉴라이트 운동을 하고 있다.

“월간 시대정신”을 통해 뉴라이트 운동을 이끌고 있는 안 교수는, 좌파 역사가들에 의해 편향된 역사관으로 저술되어 있는 중.고등학교의 역사교과서에 실린 근. 현대사의 수정작업에 착수하여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교과서를 내놨다.

친북좌파들에 의해 저술된 근. 현대사에는 좌파들의 운동인 민주화운동을 동학운동과 연결시켜 성역화 시켜 놓았다. 이는 억지 꿰어 맞추기이지 진실된 역사가 아니다. 안 교수는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시대정신을 이끌고 있다.

좌파들이 성역화 시켜 놓은 좌파운동사인 민주항쟁사는 중.고등학교의 역사교과서로 채택이 되어 더욱 많은 좌파들을 생산해 내는 매개체가 되어 있다. 여기에는 저항정신과 함께 혁명이론이 깔려 있다.

박노자가 대학생이라면 저항정신이 없으면 죽은 대학생이라고 선동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성공회대의 교양학부 교수인 한홍구는 “대한민국사”에서 민주항쟁의 원류를 김일성으로 말하고 있다. 왜 이들은 각각 특징있는 단어를 채용하여 선동하고 있는가?

특히 박노자는 러시아인으로 한국인으로 귀화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한국의 문화 특히 민주화 운동의 문화와는 접해 본 적도 없다. 그런 그가 무엇 때문에 대학생을 선동하여 저항정신을 운운하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흥미로운 배경이 숨겨져 있다. 이른바 의식화 과정이다.

의식화 혹은 이념화 되는 과정을 추적해 보자.

1단계에서는 친북좌파들이 깔아 놓은 중.고등학교의 역사교과서에서를 통해 민주항쟁사는 고귀한 것으로 그 정신을 이어 받아야 할 것이 강조된다.

2단계인 대학생이 되면, 대학생은 저항정신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한다는 박노자의 선동이 이어진다.

3단계에 와서는 민족의 정신 아리랑이 불러지며 아리랑은 김일성이 민족을 위해 불렀던 노래이며 김일성의 혁명정신은 민주적이며 자주적인 남북통일을 염원한 정신으로 말해진다. 그는 인민의 태양이며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는 김일성 장군이라고 한홍구는 말한다.

현재는 박노자가 대학생의 저항정신을 말하고 있으나, 과거에는 임헌영을 비롯한 모든 좌파 교수들과 좌파 작가들이 대학생의 저항정신을 애국정신으로 묘사하며 강조해 왔다.

현재의 조건에서 학생 한 명이 좌파가 되어 나오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이다. 현재의 역사 교과서로 공부하고 논술을 위한 교양서로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고(1단계), 대학에 들어와서 박노자의 책을 읽고(2단계) 한홍구의 대한민국사를 읽으면(3단계) 그대로 김일성 찬양자인 주체사상파가 되어 나온다.

기실 한총련, 전교조, 민주노총의 NL주사파 등, 남한에 기생하고 있는 좌파들과 의식화된 좌경자들 중에서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지 않은 사람이 없다. 이는 조정래가 좌파의 숙주가 되어 있다는 말이며 그의 작품인 태백산맥은 좌파의 정신적 자양분이라는 뜻이다.

4) 조정래의 역사관과 민족관

조정래는 자신의 편향되어 있는 친북사관을 버리지 않고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순수한 문인으로서 역사의 심판자로 역사의 어른으로 존경을 받는 위치에 남아 있겠다 한다.

그는 정치와 무관한 태도를 지향하는 척 하면서 권력의 오류를 말한다. 권력에는 항상 오류가 있기 때문에 이런 오류를 감시하고 감독해야 하는 사회적인 책무가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조정래가 말하고 있는 편향된 역사관과 민족관 그리고 사상에 대한 분석은 이글을 보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기기 위해 인터뷰 내용에 사족을 달지 않고 그대로 싣는다.

▶ 조정래가 말하는 진실론

“작가는 글로써 지켜야 할 진실이 있습니다. 모든 권력에는 항상 오류가 있기 마련이죠. 문학인에게는 이런 오류를 감시ㆍ감독해야 하는 사회적인 책무가 있습니다. 신성한 책무를 버리고 정치에 가담하는 일은 평생 없을 겁니다."

▶ 조정래의 근황

크게 세 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참여연대 참여사회연구소 이사, 아름다운재단 100인 발기인, 친일파사전을 만드는 민족문제연구소 간행 고문인데요. 특히 친일파사전 편찬과 관련해서는 이번에 국회에서 예산을 줄이는 바람에 국민모금을 통해 일주일 만에 5억 원을 모았어요. 총 30억 원을 조달하기 위해 나머지 25억 원은 국민발기인을 모집해 모을 예정입니다. 편찬은 실무자들이 일을 거의 마쳤지만 (친일파사전을)책으로 만드는 기금을 모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 서정주 등 친일파 문인들에 대한 시각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용서'는 잘못한 자가 속죄할 때 이뤄지는 것이죠. 속죄를 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역사의 비판대 위에 서야 합니다. 역사의 교훈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선배들이 잘못한 모든 것이 나를 비추는 거울이 돼야지요.

-엄격히 말하면 일제시대에 친일파가 아니었던 사람이 있느냐는 항변도 있을 법한데요.

→그런 논리는 바로 친일파들의 자기변명입니다. 일제시대 한국에 들어 온 일본인은 80만 명인데 이들에게 빌붙은 친일파가 160만 명이에요. 바로 이들 때문에 36년이라는 식민지배가 있었던 겁니다. 이들 외에는 친일파가 없어요. 무기를 든 적극적인 독립투사, 군자금을 지원한 소극적인 독립투사, 일제에 징용된 정신대나 징용 노동자 등 절대다수의 민중들이 끝없이 부른 노래가 아리랑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친일파입니까.

▶ 조정래가 말하는 민족주의

민족주의를 폐쇄적 공격적 파괴적이라고 말하는 건 히틀러의 민족주의 때문입니다. 히틀러는 게르만을 제일로 취급하고 다른 민족을 탄압 했지요. 우선 민족주의가 나쁘다는 논리를 세운 나라들이 어떤 나라인지 주목해야 합니다.

모두 세계에서 강대국이라 불리는 제국주의 국가들 아닙니까.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다른 나라를 경제ㆍ문화적으로 지배하려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이런 시각을 심어놓은 것입니다.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일어선 제3세계 국가들이 저항하면 안 되니까 말이죠.

우리가 말하는 민족주의는 자주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방어적, 개방적, 공생적 건설적인 신민족주의입니다. 우리가 통일에 동의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겠습니까?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감, 민족주의뿐입니다 .

▶ 조정래가 말하는 민족의식은 저항(혁명이론)

역사정신이란 치열한 시기에 솟아올랐다가 잦아들 듯, 물이 솟아올랐다 다시 잠복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에게 그런 위기가 온다면 자연스럽게 (역사정신이) 다시 응집돼서 솟아오를 것으로 봅니다.

지금 표피만 보고 요즘 젊은이들이 치열하지 않다고 말해선 곤란합니다. 지금보다 10년 전에는 물질문명이 발달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그때 도 대학생들은 힘껏 저항했습니다.

돈 받고 표를 찍는 이는 노인들이지 젊은이들이 아닙니다. 만일 우리 역사에 위기가 다시 찾아온다면 의식 있는 저항세력들이 더 많이 나오리라 봅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리랑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읽을 이유가 없죠.

서울대 도서관에 소장된 아리랑을 보면 표지가 너덜너덜합니다. 그들은 그걸 읽으면서 의식이 깨어나고 있는 것이에요.

▶ 조정래가 말하는 민족주의 가치

물론 인류의 행복, 평화는 우리 모두의 이상이고 삶의 목표입니다. 하지만 이런 평화와 행복이 보장되려면 일단 각 단위 민족의 다양성이 인정돼야 합니다. 맹목적인 세계화가 위험한 것은 이것이 강대국의 논리, 강대국의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논리이기 때문입니다.

세계화가 진행되면 세계의 언어는 강대국의 몇 가지로 통일될 겁니다. 지구상의 수천 가지 아름다운 언어들이 말살되고 없어지는 거죠. 우리가 세계를 여행하는 건 다른 민족의 다양성을 보기 위한 겁니다. 이 획일성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하루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9ㆍ11테러를 겨냥해) 20세기를 문화의 세기라 치장했던 인류에게 2001년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그래도 세계화를 부르짖는다면 21세기에도 이런 비극이 계속될 겁니다. 작위적인 세계화, 강압적인 무역개방이 추진돼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석가모니께서 '탐욕이 너를 망칠 것이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강대국도 그들의 편의만을 위해 약소국을 개방시키고 강압해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도 정치인, 기업인들은 계속 강대국의 논리를 답습해 세계화를 추진할 것으로 압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쓴 소리를 하는 게 우리 문인들의 임무, 조정래의 임무입니다.

▶ 조정래의 통일론

민족의 대과제이지만 서두르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대결과 갈등 속에서 50년 세월을 살면서도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고 화해와 통일로 큰 방향을 잡은 상황입니다. 부산 아시안게임 때 300명이 넘는 선수들을 데리고 와서 먹이고 재운 것 같은 일들이 작은 통일 아니겠어요?

유니 버시아드 대회, 올림픽의 단일기 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시안게임 때 2등 하는 것보다 민족의 협력을 알리는 게 작가와 언론의 몫입니다. 독일식 흡수통일도, 베트남식 전쟁통일도 안됩니다. 50년을 기다렸는데 앞으로 50년은 왜 기다리지 못합니까. 대명제임을 기억하고 노력하면서 기다립시다. 삼국시대가 있었듯 분단시대가 있었음을 훗날 기록하면 됩니다.

▶ 조정래의 문학 위기론에 대한 항변

(그런 시각에)동의하지 않아요. 문학이 위기라는 말은 지난 60~70년 간 수없이 나왔습니다. 라디오, 영화, 흑백TV, 컬러TV, 컴퓨터ㆍ인터넷이 나올 때마다 계속된 얘기예요. 하지만 문학의 위기보다 TV가 나왔을 때 같은 영상매체인 영화의 위기가 더 컸다는 걸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영화는 다시 TV를 압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새로운 매체는 그 나름의 한계를 가지고 있어요.

인간은 여러 매체를 공유하지 하나만 선택하지 않습니다. 문학은 다른 매체의 등장에 따른 위기를 극복하면서 내용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일궈 왔어요. 18~19세기 문학의 독주시대에 비해 오늘날 독자는 숫자도 많고 계층도 다양하지 않습니까. 60년대만 해도 10만부가 베스트셀러였지만 지금은 100만부가 넘어야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인터넷이 또 다른 위기를 가져올 수 있지만 언어가 있는 한 문학은 존재할 겁니다. 이럴 때일수록 작가가 더욱 정진해 좋은 글을 쓰려고 노력해야지 독자가 없다는 핑계를 대선 안 됩니다.

▶ 조정래의 경제관

대선관련 비자금은 기업의 돈이 아닙니다. 이 돈은 결국 노동자와 소비자의 것이죠.

껌을 만드는 회사라면 부정한 돈을 정치권에 주는 만큼 소비자들의 껌은 얇아지는 겁니다. 이런 일들이 계속 이어져 수천억 원이라는 돈이 생기는 거죠. 기업은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이런 비자금을 주는 겁니다. 정치인이 요구해서 줬다기보다 자발적으로 주는 경우가 많아요.

기업이 이런 일들을 하지 않을 때 경제의 순환이 제대로 되고 부가 제대로 분배되는 사회가 오는 겁니다. 기업을 존중하고 신임하지 않는다는 게 우리 기업인들의 공통적인 불만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자업자득이죠.

우리가 미국의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기업 활동과 관련해서는 본받을 미덕도 많습니다. 빌 게이츠가 재산의 반을, 조지 소로스도 수입 중 30% 를 사회에 환원한다고 합니다. 기업인에 대한 존경은 이런 데서 나오는 겁니다.

우리나라가 소득 1만 달러 시대에 들어선 건 국가ㆍ기업의 역할 도 있었지만 국민의 노력이 컸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국민의 노력에 대해 기업의 사회 환원이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 '정경유착'의 반세기 역사는 결코 인간다운 역사가 아닙니다.

▶ 조정래의 노벨문학상에 대한 변

노벨평화상을 받은 사람도 나왔으니 언젠가는 문학상도 받게 되겠죠. 그러기 위해선 우선 작품의 번역이 제대로 돼야 합니다. 독자들에게서 너무 많은 격려를 받았기 때문에 나는 이미 노벨상을 받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매일경제 뉴스, 2004년 01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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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2008-05-10 08:23:09
별 거지 떨떨한 놈을 다 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