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란치스코 교황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방북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지만, 워싱턴에선 여전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전망이 나온다고 VOA가 3일 보도했다.
청와대는 교황이 방북을 수락했다고 했지만, 여건은 2년 전 첫 방북 제안 때보다도 나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로버타 코헨 전 국무부 인권담당 부차관보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에 따른 국경 봉쇄와 최근의 미사일 시험 발사, 그리고 모든 유럽 국가들의 평양주재 공관 폐쇄를 고려할 때 지금 당장 교황의 방문을 상상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게다가 “교황의 방문 형식 또한 불투명하다”며 “교황은 각국을 방문할 때 다른 도시들을 찾고 교회 예배에 참석하며 기독교 지도자들과 만나면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데, 북한에서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교황이 따뜻한 아르헨티나 출신이기 때문에 겨울에는 움직이기 어렵다’는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의 2일 발언도 워싱턴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아르헨티나는 박 대변인의 묘사처럼 항상 “따뜻한” 나라가 아니라 일부 지역은 혹한 피해를 입을 정도로 기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레그 스칼라튜 북한인권위원회(HRNK) 사무총장은 박 대변인의 발언에 대해 “아르헨티나에 스키장이 있다는 것을 아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아르헨티나의 관광도시 바릴로체에 있는 파타고니아 스키 리조트에서는 지난 2017년 7월 영하 25.4도를 기록하기도 했다.
따라서 교황의 방북을 가로막는 요인은 이처럼 ‘날씨’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게 워싱턴의 중평입니다. 북한으로선 대외선전에 이용할 드문 기회이지만, 동시에 인권 비판을 촉발할 뇌관이 될 수 있는 교황의 행차에 선뜻 문을 열기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이 깔렸다.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선임연구원은 “교황 방북 가능성에 여전히 회의적”이라며 “김정은이 교황을 실제로 초청할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교황이 방북해 인권 관련 성명이라도 낼 경우 정통성이 위협받게 될 김정은이 교황을 초청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설명이다.
지난달 29일 교황청을 방문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이틀 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한결같이 한반도 평화를 축원하시고 북한 방문 의사를 밝혀주셨다”고 밝혔다.
이후 청와대는 교황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초청장이 오면 방북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재차 강조했다. 교황청 보도자료에 그런 내용이 없다며 의문을 제기한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왜곡”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교황 방북이 성사될 가능성도 떨어지지만, 한국 정부가 공을 들이는 종전선언 등 남북관계에서의 실익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는 워싱턴의 인식은 청와대의 입장 발표 뒤에도 달라진 게 없다.
찰스 암스트롱 전 컬럼비아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는 “교황의 방북이 한국과 미국의 여론에는 영향을 미치겠지만, 북한, 특히 김정은과 지도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맥스웰 연구원은 “김정은이 평화를 추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 의제를 추진하는데 교황의 방북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질문해 봐야 한다”며 “나는 이런 가정이 그다지 타당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교황의 말과 행동이 김정은을 ‘불량 지도자(rogue leader)’에서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며 “문재인 정부가 왜 교황 방문을 그토록 최우선 과제로 삼는지, 어떻게 그것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가의 핵심 이익이 걸린 광범위한 정치·경제 현안에 외교력을 극대화해야 할 국제무대에서 교황 방북에 최우선 순위를 두는 듯한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는 워싱턴에서 의구심을 낳고 있다.
유럽을 순방 중인 문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 2~3분간 짧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교황의 방북 의사를 전한 데 이어 프랑스, 호주 총리 등에게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해 지지를 요청했지만, 미 정치권에서 교황 방북 여부에 대한 관심은 거의 감지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워싱턴 인권계에서는 문 대통령이 교황의 영향력을 추상적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나 비현실적인 종전선언이 아니라 10년 가까이 북한에 억류돼 있는 자국민을 구출하는 데 활용해 달라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기독교 선교사가 다수 포함된 억류 한국인들에 대한 문제 제기가 교황이 한반도 현안과 관련해 발휘할 수 있는 가장 선한 영향력이자 세계적 종교 지도자의 지위와 사명에 훨씬 더 부합한다는 지적이다.
수전 숄티 북한자유연합 대표는 “교황이 북한에 억류된 한국인들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며 “그들 중 대부분은 신앙 때문에 북한 문제에 관여했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교황의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사안은 바로 자국민 석방”이라고 강조했다.
2010년대 이후 북한에 억류된 것으로 공식 확인된 한국 국민은 선교사 3명과 탈북민 3명 등 총 6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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