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20년, 대(對)테러전쟁이 낳은 ‘전제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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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 20년, 대(對)테러전쟁이 낳은 ‘전제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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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 소통, 설득이 아니라 무력의 힘은 새로운 분열과 갈등 초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같은 ’내향적(introversion) 사고‘를 벗어나야 개인이든 국가이든 희망과 존엄을 가질 수 있다. 인간의 안전 확보도 내향성에서 탈피해야 이뤄지며, 지속가능한 세계를 내다볼 수 있다. (사진 : 월드폴리시 캡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같은 ’내향적(introversion) 사고‘를 벗어나야 개인이든 국가이든 희망과 존엄을 가질 수 있다. 인간의 안전 확보도 내향성에서 탈피해야 이뤄지며, 지속가능한 세계를 내다볼 수 있다. (사진 : 월드폴리시 캡처)

2001911일 미국의 상징이라 할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건물이 비행기의 공격을 받아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장면이 전 세계에 퍼지면서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다. 그로부터 오는 11일이면 꼭 20년이 된다.

당시 4대의 여객기가 납치되어 미국의 핵심을 강타한 미증유의 테러사건으로 3천여 명의 고귀한 생명을 빼앗겼다.

9.11테러 사건을 계기로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은 기나긴 전쟁의 길로 접어들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의 파동이 세계 질서를 뒤흔들었고, 20년 후인 20219월 현재 세계는 매우 답답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전쟁의 끝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갈등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초강대국의 전쟁 패배만이 아니다. 테러에 절대로 굴복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던 자유주의 이념마저 스스로 훼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20년간의 아프간 전쟁에서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는 무엇을 느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대화에 앞서 무기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소통할 의지, 대화를 이끌 지도력, 설득할 시간을 망각한 채 무력의 힘으로 밀어 붙인 결과는 새로운 분열, 갈등, 충돌을 가져오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자유와 기회의 나라이기 때문에 공격당했다.” 사건 당일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대통령은 연설에서 자유의 투쟁을 주창했었다. 그리고 9일 후에 세계는 미국으로부터 선택을 강요당했다. “세계는 우리(미국)와 함께 할 것인가, 아니면 적군의 편을 들것인가?”라며 적군이냐 아군이냐의 선택을 강요당하는 이원론이었다.

누가 봐도 이슬람은 적이 아니다. 종교나 민족, 인종에 대한 차별이나 증오는 미국의 가치에 반한다. 보편타당한 말이다. 그러나 차별이나 증오는 오히려 그 세력이 커졌다. 대화와 설득에 앞서 무력은 이슬람 지역에서 엄청난 인명을 앗아가는 힘을 발휘했지만, ‘문명 간의 대화는 거의 없었다. 대화 없는 무력은 분단, 분열, 무관용으로 치닫게 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미국 내에서 인종 간 증오범죄가 잇따랐고, 트럼프 전 행정부는 특정 국가의 사람들에 대해 미국 입국을 금지해 국경에 높은 장벽을 치기도 했다.

또 유럽에서도 테러 빈발을 배경으로 이슬람 혐오’ ‘()이민 풍조가 확산되면서 극우 정당들이 힘을 얻어가며 신장했다.

알고 보면 테러범의 상당수는 유럽에서 태어나 자란 이민자들 이었다. 같은 국민이라도 이슬람교도에 대한 편견 때문에 고립되었고, 오해가 오해를 낳았다. 미국과 유럽은 국민 통합의 실패가 낳는 폭력의 위험에도 직면하게 됐다.

20년 동안 몇 개의 분단선이 전 세계에 그어졌다. 다문화 상생을 지향하고 관용을 되찾지 않으며 악순환만 흐를 것이다.

특히 테러 소탕을 정의로 규정한 미국 주도의 대테러 전쟁은 독재성 강권 국가에서 크나 큰 모순을 낳았다. 정치적으로 반대세력은 무조건 테러조직으로 낙인찍어 그들을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테러 청소를 했다. 반대파는 대화의 대상이 될 수 없게 됐다. 대테러전쟁은 무력만이 존재할 뿐 대화와 설득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그 결과 새로운 분열, 분단, 갈등을 낳게 했다.

- ‘아랍의 봄(Arab Spring)'이후 이집트에서는 선거에서 이긴 정권을 군부 세력 등 국체제가 쿠데타를 일으켜 합법적 정권을 뒤집었다.

- 시리아에서는 독재정권이 반정부 세력을 테러로 규정해 내전을 치르고 있다.

- 러시아에서는 야당 정치인들을 탄압하고 있다.

- 중국에서는 이슬람 소수민족이 사는 신장 위구르인들에 대한 인권침해와 탄압이 이뤄지고 있다.

- 터키와 필리핀에서는 반()테러 명목으로 권위주의가 진행되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금 세계가 민주주의(democracy) 대 전제주의(autocracy)의 투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제주의의 성장을 초래한 요인 가운데 하나는 ()테러전쟁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전제주의란 단일 개체가 절대 권력으로 통치하는 정부 형태를 말한다. 위에 열거된 국가들에서 뚜렷이 전제주의 현상을 알 수 있다.

미국과 유럽 안에서도 법의 지배와 인권의 원칙이 흔들리고 있기는 전제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법절차를 도외시한 채 테러용의자를 장기 구금하는 관타나모 미군기지는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 법의 지배는 없는 무법천지가 관타나모 미군 기지이다.

세계의 많은 나라의 일상에는 보이지 않는 테러대책들이 침투해 있다. 사상이나 종교 등 특정한 속성에 근거한 인물 조사, 감시 카메라나 얼굴 인증을 통한 추적, 감청, 인공위성을 통한 위치추적 등이 일상생활에서 거침없이 확산되면서 사생활 영역이 좁혀지고 있다. 마치 당연한 것처럼......이러한 것들이 모두 인권과 관계없이 대테러대책의 일환으로 여겨지고 있다. 대테러대책이 인권위에 존재하는 듯하다.

안전 확보가 인권과 자유의 원칙을 앞서고 있다. 9.11테러 이후 그러한 풍조가 세계에 만연되어 왔다. 그러나 자유와 인권이 최소한 안보확보와 나란히 있거나, 원래대로 앞서도록 세계는 노력해야 한다.

전 세계 곳곳에 산재돼 있는 테러의 근원을 발본색원하고, 인종과 종교 간의 차별과 억압을 줄여 나가는 노력들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행태, 즉 남의 나라 인권침해를 눈감아 주고, 자국의 문을 닫고 감시하는 조치로는 문제 해결을 할 수 없다.

9.11테러 당시 국제사회는 국경을 넘어 테러에 떨었다. 한 나라만으로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글로벌 시대이다. 국제 연대 혹은 결속(global solidarity)의 필요성이 부각되는 시대이다. 연대를 하려면 반드시 대화와 설득의 시간이 요구된다. 전염병 대유행(Pandemic)이나 기후위기(Climate Crisis) 문제와 마찬가지로 국가 간의 힘의 경쟁으로는 대처할 수 없음을 코로나 시대가 잘 말해주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같은 내향적(introversion) 사고를 벗어나야 개인이든 국가이든 희망과 존엄을 가질 수 있다. 인간의 안전 확보도 내향성에서 탈피해야 이뤄지며, 지속가능한 세계를 내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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