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위기’의 진짜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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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위기’의 진짜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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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아이티 주권을 옹호하고, 정의와 존엄성을 위한 아이티 국민들의 투쟁을 방해하지 않음으로써, 이 권력들은 기록을 바로 세울 수 있다. 아이티는 스스로 밝은 미래를 건설할 수 있는 모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늘 그래왔듯이 외세 개입이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아이티 주권을 옹호하고, 정의와 존엄성을 위한 아이티 국민들의 투쟁을 방해하지 않음으로써, 이 권력들은 기록을 바로 세울 수 있다. 아이티는 스스로 밝은 미래를 건설할 수 있는 모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늘 그래왔듯이 외세 개입이 문제인 것이다.

폭력적 외세(foreign intervention)의 오랜 역사를 고려하지 않고는 아이티의 현재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독일 베를린에 기반을 둔 과학 작가이자 역사가인 에드나 본옴므(Edna Bonhomme)는 중동의 알자지라의 오피니언란에 기고한 글에서 이 같이 말했다.

지난 77일 한밤중에 무장 괴한들이 조브넬 모이즈(Jovenel Moïse, 1968~2021.7.7) 아이티 대통령 아이티 대통령의 사저에 난입해 그를 암살했다.

본옴므는 그 뻔뻔스러운 살인은 아이티 사회는 물론 국제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비록 누가 살인범을 고용했는지 그리고 왜 그랬는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이미 미국에 본부를 둔 보안 회사이자 모이즈 대통령의 다양한 반대자들을 가리키는 단서가 있다고 주장했다.

모이즈 대통령은 인기가 없었고 불확실한 분위기 속에서 임기 연장을 모색했다. 앞으로 몇 주 동안 아이티 국민들은 암살, 권력투쟁, 시위에 대한 탄압강화의 정치적 영향과 씨름해야 할 것이다.

국제 언론들은 이 사건들을 아이티의 난기류 정치(turbulent politics)”에서 또 다른 혼돈(chaotic)’으로 간주하고, 미국과 유엔이라는 국제사회는 아이티의 안정을 다시 한 번 추구할 것이다.

문제는 폭력적인 외국 개입의 역사를 덮고, 아이티인들이 자유를 위해 끊임없이 돈을 지불하도록 만들어졌고, 이로움보다 훨씬 더 많은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 외세의 개입사

모이즈 대통령의 암살과 그 후유증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혼란, 가난, 부패와 같은 진부하고도 상투적인 말을 하지 않고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의 뉴욕타임스(NYT) 사설도 조브넬 모이즈 아이티 대통령 암살 이후, 경쟁하는 두 총리 간의 권력 다툼이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가뜩이나 격앙된 아이티 정국이 더 큰 혼란으로 빠져들 위기에 처했다고 분석했다.

유력한 미국 언론의 논조는 아이티인들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고, 아이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토착민들의 부패, 무능, 그리고 비굴함의 결과라는 생각을 조장한다고 기고자는 주장했다.

그러나 아이티 내부의 토착적 혼란(endemic chaos)”이라는 렌즈로만 볼 때, 아이티인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조직적으로 훼손해 온 오랜 외국의 개입 역사는 사라지고 만다.

1791822일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생 도밍그(Saint-Domingue)에서 노예 아프리카인들의 반란이 일어났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흑인 혁명가들은 식민 통치에 맞서 싸웠고 180411일 아이티는 아메리카 최초의 흑인 자치 사회(self-governing Black society)가 됐다.

그러나 그것은 아이티에 대한 식민지 지배를 복원하기 위해 계속 시도했던 패배한 식민지 강국인 프랑스에게는 맞지 않았다.

1825년 또 다른 프랑스 침공의 위협 속에서, 장 피에르 보이어(Jean-Pierre Boyer) 대통령 통치하의 아이티 정부는 프랑스에 독립을 쟁취한 것에 대한 배상금을 지불하기로 동의했고, 이것은 그 이후 아이티의 지속적인 재정 불안정에 기여해 왔다. 그러나 아이티의 정치적 주권은 강력한 이웃인 미국에게도 완전히 존중받지 못했다.

수십 년 동안 미국은 항구나 세관을 장악하려 했다. 미국은 아이티의 저항에 맞닥뜨리며 아이티에 거점을 마련하려고 했다.

20세기 초 미국은 정기적으로 해군을 아이티 해역에 보냈고, 1914년 미 해병대는 아이티 땅에 상륙해 아이티 국립은행을 강제로 진입, 그곳에서 그들은 50만 달러를 압수해 뉴욕으로 운송했다.

이듬해 미국 대표단이 아이티 정부에 미군 '보호'를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19157월 장 빌브룬 기욤(Jean Vilbrun Guillaume) 대통령이 암살되자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미 대통령은 미군을 파견해 아이티를 점령했다.

그들은 19년 동안 머물렀는데, 그 기간 동안 미국 정부는 흑인차별정책(Jim Crow)을 실시하고,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며, 아이티인에 대한 폭력에 탐닉했다.

여기에서 짐 크로우(JIM CROW)1835년 토머스 라이스(Thomas D. Rice)라는 백인 연예인이 song and dance(춤과 노래)라는 곡을 작곡하고, 또 직접 노래를 하고 연기를 했는데, 당시 대대적인 히트를 하면서 노래 가사에 등장하는 인물 짐 크로(Jim Crow)negro(니그로 : 흑인, 검둥이)와 동의어로 쓰이게 됐고, 천방지축인 멍청이 봉제인형의 모습으로 표현됐다. 짐 크로우에서 crow까마귀라는 뜻으로 가난과 어리석음의 대명사로 인식됐다.

미국 사외에서는 지금도 인종차별이 극심하고 있는 가운데, 짐 크로우라는 표현을 이용한 다양한 표현들이 있다. 예를 들어 a Jim Crow Car는 흑인전용자동차, a Jim Crow School은 흑인전용학교 등과 같이 표현된다. 흑인차별주의는 짐 크로이즘(Jim Crowism)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이티에 대한 외세의 개입은 1934년 미군이 아이티에서 떠남으로서 끝나지 않았다.

아이티는 1980년대 중반 독재에서 공화국 민주주의로 바뀌었지만, 이후 30년 동안 20차례나 대통령이 바뀌게 됐다. .

1990년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Jean-Bertrand Aristide)는 최초의 민주적으로 선출된 아이티 대통령이 됐다. 1년 만에 그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에서 훈련받고 자금을 지원받은 정보기관이 참여했던 세력에 의해 쿠데타로 물러났다.

1994년 그는 미군의 보호를 받으며 아이티로 돌아왔다. 아리스티드는 2000년에 재선되었으나 외세에 의해 조직된 것으로 믿었던 또 다른 무장 봉기 이후 다시 쫓겨났다.

에드나 본옴므는 아리스티드 아이티 대통령의 이야기는 미국의 개입이 아이티의 민주적 발전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탈선시켰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말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대학(UCLA)의 인류학 교수인 제미마 피에르(Jemima Pierre)"최소한 2004년 이후 아이티 민주주의가 완전히 불안정해지고, 아이티 주권이 완전히 상실된 것은 미국에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아리스티드에 대한 쿠데타의 여파로 아이티는 또 다른 외국군 점령기에 돌입했다.

이번에는 아이티의 상황이 이 지역의 국제 평화와 안보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결정한 후, 이 카리브해 국가에 평화유지군(peacekeeping forces)을 파견한 유엔(UN)에 의한 것이었다.

2억 달러의 예산으로 수천 명의 외국 군대와 경찰들을 배치했는데, 이들은 국내 상황을 개선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고, 결국 엄청난 콜레라 전염병을 일으키고 일련의 성범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미 노스캐롤라이나 데이비드슨에 위치한 사립 교양대학 데이비드슨 대학(Davidson College)의 아프리카 연구 교수인 마미라 프로스퍼(Mamyrah Prosper)에 따르면, 유엔은 또 안보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유엔은 17년 동안 아이티에 있었지만, 그 기간 동안 그 지역에 전보다 더 많은 총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다.

* 원조 산업(aid industry)의 실패

지난 몇 십 년 동안 불안정한 정부의 세습과 미국에 대한 증가하는 경제적 의존은 아이티 국가가 자국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크게 제한해 왔다. 2010년 콜레라 발생 이후 발생한 지진으로 국토가 황폐화되고 개발 노력이 지연됐다.

아이티 정부는 대규모 파괴와 몰수에 대응하려고 애썼다. 그 결과 지진 이전부터 원조 산업의 중심지였던 아이티는 대규모 인도주의적 운영의 중심에 서게 됐다.

미국 기업들이 후원하는 개발 프로젝트와 인접 중남미 국가들로부터의 융자를 포함해 130억 달러(148,083억 원) 이상의 인도적 지원과 기부가 아이티에 쏟아졌다.

국가재건을 돕고 아이티인들에게 구제를 제공하는 대신, 국제적인 개발 노력은 생활환경을 크게 개선하는데 실패했다.

지진의 여파로 빌과 힐러리 클린턴(Bill and Hillary Clinton)은 아이티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다국적 기업들의 투자 유치에 있다고 믿고, 아이티 개발 프로젝트의 주요 지지자가 됐다.

이들은 제조업과 인프라 확충을 통한 경제발전을 목표로 한 산업단지 카라콜(Caracol) 발족에 참여했다. 10년 후 그리고 수억 달러가 지난 지금 이 프로젝트는 당초 제시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항구 개발 부분마저 포기됐다.

마찬가지로 미국 국제개발처(USAID, 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는 지진 후 44억 달러를 지출했지만, 현장에서는 성과가 있는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미국에 본부를 둔 경제정책연구소(CEPR : Center for Economic and Policy Research)'의 제이크 존스턴(Jake Johnston) 연구원이 지적한 바와 같이, “그 중 2%만이 아이티 조직에 직접 투자되었고, 그 중 대부분은 미국에 본부를 둔 하청업체들에게로 보내졌다고 한다.

예를 들어, 2008년과 2016년 사이에 카리브 해 전역에 걸쳐 개발에 자금을 지원한 베네수엘라 프로그램인 카리브석유동맹(PetroCaribe)은 약 40억 달러를 아이티에서 400개 이상의 프로젝트에 투자했다.

그러나 이 돈의 많은 부분이 횡령되었고이렇다 할 발전상의 이정표를 이루지 못했다.

* 아이티 통치권 복원

기업가 출신인 모이즈 대통령의 암살 이후, 외교부장관인 클로드 조셉(Claude Joseph) 총리 권한대행은 그가 권력을 장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는 조셉의 후임으로 75일 모이즈에 의해 총리로 임명된 아리엘 헨리(Ariel Henry)에 의해 도전을 받았다. 조셉 램버트(Joseph Lambert) 상원의장도 권력을 주장했다.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을 이유로 선거를 연기한 후 권한이 만료된 국회와 최근 대통령 알살로 마비된 대법원의 부재로 정치적 위기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선거는 9월로 계획되어 있고 많은 아이티인들은 투표 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아이티 운동가들은 외국의 개입이 없는 투명하고 공정한 선거를 요구하고 있다.

역사를 통틀어, 아이티인들은 심지어 총탄과 곤봉을 맞았을 때에도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시위는 아이티의 민주적 절차에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최근 몇 년간, 아이티인들은 그들의 정치적 주권을 행사하고 존엄하게 살 권리를 위해 시위를 벌여왔으며, 유엔의 점령과 모이즈 대통령의 독재 통치의 중단을 요구했다.

아이티에서 풀뿌리 동원을 통한 변화의 가능성은 어마어마하며, 일반적으로 국제 사회에서는 무시되지만, 전 세계의 흑인 운동가들에게 간과되지는 않았다.

미국에 본부를 둔 평화를 위한 흑인 동맹(Black Alliance for Peace)”의 대표인 아자무 바라카(Ajamu Baraka)는 최근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티인들이 그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만약 그들이 허락을 받는다면, 그들이 끊임없이, 이러한 외부세력의 간섭을 받지 않아도 된다면, 사실 그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힘을 내라고 말했다.

에드나 본옴므 이제는 아이티에 대한 인종 차별적인 혼돈이야기를 끝내고, 아이티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실질적이고 객관적인 표현으로 이야기할 때라고 강조했다. 외세들은 오랫동안 아이티에 불안정한 영향을 끼쳐왔고,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해 왔다.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아이티 주권을 옹호하고, 정의와 존엄성을 위한 아이티 국민들의 투쟁을 방해하지 않음으로써, 이 권력들은 기록을 바로 세울 수 있다. 아이티는 스스로 밝은 미래를 건설할 수 있는 모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늘 그래왔듯이 외세 개입이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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