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빨리’ 보다 ‘얼른’을 가르치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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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빨리’ 보다 ‘얼른’을 가르치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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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와 ‘얼른’의 오묘한 차이에서 빚어지는 기대효과

^^^▲ 연꽃 핀 연못에서 노닐던 오리새끼들이 제가 접근하자 급히 빠져 엄마 품으로 가고 있습니다. 옆에 보이는 꽃은 연꽃입니다.
ⓒ 김규환^^^


후다닭이 주는 의미는 속도 경쟁에 매몰된 사회를 반영

가장 빠른 닭을 우스개 소리로 ‘후다닭’이라 한단다. ‘후다닥’ 잽싸게 먹어 치우고 다음 모이를 찾기 위해 어디론가 날아가는 닭에 빗대 하는 말이지만 사람일과 상통하는 바가 있어 씁쓸하다. ‘게눈 감추듯’ 하지 않으면 그새 누군가 후딱 빼앗아 가버릴 지도 모른다. 그러니 ‘시간이 금’이라는 격언에 맞춰 살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나는 어떤가? 세상사 하도 ‘빨리’ 돌아가 나는 따라가지 못하겠다. 키도 작고 생각도 느리다. 손도 느려 글 하나 쓰려면 죽어라 고생한다. 급하다고 남들이 뛰어갈 때 나는 어슬렁어슬렁 기어 따라 간다. 다만 남들이 가는 길 완주하는데 의미를 둘 뿐이다. 예서까지 느림의 미학을 들먹인다는 게 낯부끄러운 일이다.

산에 오를 때 한 후배가 그랬다.

“형은 왜 그리 굼떠?”
“뭐가? 어차피 산모롱이에서 한 번 쉴 거잖아. 그러고 나서 정상에서 만나는 것 아닌가?”
“그래도 그렇지. ‘빨리’ 올라가잔말야. 이러다 늦겠어.”
“알았어. ‘얼른’ 챙겨서 올라가마.”

오래 전 산 입구에서 등산화 끈 매는 일을 두고 둘이서 나눈 대화다. 남들이 한량이라 보기에 딱 맞는 상황이다.

하지만 조금만 있으면 내가 느려터진 사람이 아니란 걸 안다. 언제나 산꼭대기에는 내가 더 이르게 도착했다. 저만치 쳐져서 올라오던 이가 신발 끈을 풀고 먼저 쉬고 있으니 이상하다 생각했을 것이다.

산에 가면 항상 나는 느림보 행세를 한다. 그러니 굼벵이가 따로 없다고 욕먹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를 정확히 볼 줄 아는 사람들은 내가 거북이 습성을 닮았다는 걸 안다. 먹이를 보면 쑥 들어간 목을 쏜살같이 쭈욱 빼서 ‘얼른’ 내 것으로 만드는 실력을 갖고 있다는 것도 안다.

작은 키 탓에 남들이 갖고 있지 않은 잇점이 나에겐 있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나무 아래 풀숲을 찬찬히 살피기에 쉽다. 이것저것 자잘한 풀과 들꽃과 땅을 짚고 무리 지어 움직이는 개미 따위의 벌레도 구경할 기회도 가진다.

사람 사이에도 높낮이가 있듯이 나무도 교목 아교목 관목으로 나뉘어 제각각 필요한 만큼 햇볕과 물과 양분을 빨아먹는데 나는 그 점을 한껏 즐기는 행운을 누리는 것이니 탓하려면 맘껏 해도 좋다.

여태 내가 서둘러서 일이 잘 된 적이 없다. 챙기고 또 확인하고 나서 길을 떠나도 허둥대기 일쑤였으니 더 느리게 가야한다. 화는 또 얼마나 자주 잘 내는지...

^^^▲ 안암어린이집 바로 앞에 범바위골 놀이터가 있는데 1시간 정도 놀고 옵니다. 해강이도 이제 제법 노래도 하고 말은 청산유수랍니다.
ⓒ 김규환^^^


해강이 솔강이에게 ‘‘빨리’’ 대신 ‘얼른’’이라고 말하는 아빠

나는 세 살짜리 해강이에게 3년 동안 ‘빨리’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두 살 솔강이에게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늦을 어린 아이에게 ‘빨리’라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 아이가 서두르면 또 얼마나 빠르겠는가? 애 엄마에게도 ‘‘빨리’’라는 말을 지양하도록 하고 있다. 대신 ‘얼른’이라는 말을 쓰도록 돕는다.

‘빨리’와 ‘얼른’이 주는 어감 차이는 크다. 뜻은 매한가지인데 ‘빨리’는 조급하게 얼른’은 완급하게 종용하는 것이니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의 쓰임새가 여기에 적당하다 하겠다.

“빨리!”라고 한 번 소리내 말해보라. 말을 내뱉는 순간 마음이 더 급해진다. 입술 한 번만 붙였다 떼면 되는 천박한 소리다. 더군다나 첫소리에 된소리가 있으므로 귀에 거슬리기까지 한다. 급한 성질에 아이에게 화낼 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얼른!” 이라고 소리내보자. 아무리 급하게 말한들 조급함은 느껴지지 않고 만사가 여유롭게 된다. 듣기에도 혀가 한 번 심하게 꼬이기 시작해 입천장에 기분 좋게 부딪히므로 귀에 울려오는 음성은 한가하기 그지없다.

아이들은 급한 줄을 모른다. 특히 아침에 어린이집에 데려다 줄 때는 시간을 다투지만 어른들의 마음을 알 리 없다. 제 할 것 다하고 옷 입자 해도 따라주지 않는다. 열 불이 나는 부모 입장에서는 당장이라도 “해강아 ‘빨리’!” “‘빨리’ 옷 입자.” “가자 ‘빨리’!”하고 싶겠지만 그런다고 될 일이 아니다.

공원에든 시장에든 연년생 한 번 데리고 나가보면 속이 터진다. 오락기라도 하나 만나면 더하다. 뻗대고 따라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잖은가? 까탈부리며 바닥을 뒹굴어도 ‘빨리’ 가자하면 오히려 화가 될 뿐이다.

나는 아빠로서 약속을 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아이들에게 ‘‘빨리’’라는 말을 쓰지 않기로. 아이들이 곰바지런하게 충실하게 크면 되지 덤벙한 아이로 키우고 싶지는 않다. 대충대충 해치워 문제투성이 만드는 사람으로 교육하지 않을 작정이다. 오늘 어린이집에서 데려올 때도 ‘얼른’ 가자고 할 것이다.

한가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으나 속는 셈치고 실천에 옮기자. 사람 사이가 한결 부드러워짐을 느낄 것이다. 연인 사이에도 적용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가끔은 하늘도 쳐다보고 땅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걷는 습관을 들여보자.

^^^▲ 아래를 쳐다보면 꿀풀도 먹을 수 있습니다. 조금만 천천히 가세요. 빨리가면 안됩니다. 얼른 서두르시기만 하면 됩니다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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